한국은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출생률이 가장 낮은 나라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힘든 나라가 되었다고 할 수도 있지요. 우리나라는 일자리와 사회적 기회에 비해 사람이 많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인들은 그간 교육을 통해 경쟁력을 키우고 한정된 사회적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한계가 찾아왔고, 부모들은 아이를 적게 낳기 시작했지요. 이제는 아예 낳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태어난 아이들은 경쟁에 지쳐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도 늘어났습니다. 언제부터, 그리고 왜 이렇게 된 걸까요? 과잉경쟁이라는 사회문화적 특성 속에서 자살률이 높아지는 이유를 경제적 문제와 정신건강 문제의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Joiner는 자살에 이르는 사람의 심리를 사회적인 측면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Joiner의 대인관계 심리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이 자살을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자신이 남들에게 짐이 된다고 느끼거나,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는 경우입니다. 한국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아진 데에도 이 두 가지 요인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가 '자살대국'이 된 것은 1997년 IMF 경제 위기 때부터입니다. 이때 많은 노인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면서 자살률이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그전까지 노인들은 대부분 가정 내에서 존중받고 부양과 보호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경제력이 없는 노인들은 자신들이 자녀들에게 짐이 된다고 느꼈고, 가정의 보호에서 벗어나 혼자 살게 되면서 사회적으로 고립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노인 자살률이 급증했고, 그때부터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게 됐습니다. 다행히도 최근 노인 자살률은 2018년 소폭 증가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정부가 노인들을 도와주기 위해 마련한 여러 가지 지원 정책 덕택에 노인의 경제적 여건이 좀 더 나아졌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요양원이 늘어나고, 연금도 받게 되면서 삶이 조금씩 나아진 것이지요. 하지만 여전히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노인 자살률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아쉬운 점입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점은 노인 자살률이 감소하는 동안, 젊은 층의 자살률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기간 동안 젊은 세대는 장년층에 비해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적 고통을 더 많이 겪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와 학교 휴교령이 청소년의 정신 건강을 악화시켰고, 격리 조치로 인해 일상 및 경제 활동에 제한이 생기면서 젊은이들에게 더 큰 심리적 압박을 주었리라 봅니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우울감과 자살생각을 하는 젊은 사람이 계속 증가했습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려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습니다. 이는 청년 실업 문제와 학업, 직장 내 경쟁이 심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회는 학교에서부터 직장까지 과잉경쟁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학생들은 높은 성적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직장인들도 과도한 업무와 성과 압박에 시달립니다. 이런 환경은 개인에게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압박을 가하게 되어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청소년과 청년층에서 이러한 압박감은 자살 충동을 유발할 수 있지요.
지난 6월, 우리나라 정부는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하고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여기에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정신건강 검진의 확대, 직장 내 정신건강 지원의 강화, 전 국민 심리 상담 지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정신응급 상황의 대응 체계 강화, 정신질환의 편견 해소를 통해 더 많은 국민들이 정신질환의 치료를 받게 하는 다양한 내용도 있습니다. 정부의 목표는 앞으로 우리나라 자살률을 절반으로 낮춰서, OECD의 평균 수준에 도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책의 방향은 대체적으로는 옳습니다. 주로 경제적 문제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노인층의 자살률은 최근 줄어들고 있지만, 정신건강 문제에 영향을 많이 받는 젊은 사람들의 자살률은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통계에 따르면 자살의 원인 가운데 정신과적인 문제는 2012년 27.7%에서 2022년 39.4%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그래서 자살률을 줄이려면 국민의 정신건강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해결해야 합니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정신건강 문제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근본 원인인 과잉경쟁을 해결하지 않으면 자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과잉 경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 문화가 정착해야 합니다. 먼저, 남들과 비교하는 문화를 바꾸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가치를 인정받고, 경제력이나 성취에 상관없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육 시스템에서도 성적 경쟁보다는 협력과 상호 존중을 강조하는 방향으로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직장에서는 업무 성과보다 직원들의 정신건강과 행복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도입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 사회나 학교, 직장 등에서 정기적으로 정신건강 교육과 전문적인 치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마음을 모아 함께 노력하면, 우리 사회는 더 건강하고 행복한 곳이 될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자살률을 줄이기 위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더 자주 표현하는 것입니다. 친구나 가족, 동료들에게 가볍게 안부를 묻고, 그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관심과 배려는 상대방에게 사회적 지지감을 주고, 고립감을 줄여줍니다. 또한,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서 제공하는 생명지킴이 교육을 통해 자살 위험 신호를 인식하고,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만약 주변에서 자살을 암시하는 말을 듣거나 누군가 힘들어 보인다면, 따뜻하게 다가가며 그들이 정신과 진료를 받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작은 실천이 소중한 생명을 구하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안유석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국립교통재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조교수
* 위 글은 헬스조선의 연재 <당신의 오늘이 안녕하길>의 ['자살률'세계 최고 한국...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힘들까요?]를 통해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