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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응급실에서 첫 만남

해당 내용은 다음의 카드뉴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죽고 싶은 충동이 들 때 응급실에 가도 될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정신과 의사 이승우입니다. 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어젯밤에 응급실에 오셨는데 이 공간이 아무래도 편안할 수 없는 환경이고, 또 검사하고 치료하면서 지금까지 기다리는 과정이 힘드시죠. 현재 OO 님은 몸과 마음이 좀 어떠신가요?”    

 

항상 응급실에서 환자분들과 첫 시작은 긴장이 되고 조심스럽습니다. 여느 진료실과의 첫 만남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인데요. 외래 진료실에서는 조용하고 다소 편안한 공간에 앉아서 문 열고 들어오는 환자분들에게 인사를 건네지만, 응급실은 쉬지 않는 기계음과 의료진의 다급한 목소리, 옆 환자의 앓는 소리가 귀에 맴돌 수밖에 없는 곳이죠. 삶과 죽음이 오고 가는 응급실은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곳이지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이 가장 냉정한 곳이기도 해요. 의학적인 중증도에 따라 우선순위가 정해지는 곳, 우리는 당연히 이해해야 하지만 내 마음의 상처는 가려지기 쉬워요, 잠깐만 있어도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이 장소에 누워있게 되면 지치고 예민해지기 마련입니다. 가끔은 스스로가 부끄럽거나 당당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분도 계셔요.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은 마음에, 아니면 아직도 남아있는 주변의 편견으로 정신과 의사는 만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있는 응급실에서는 정신과 면담을 원하지 않더라도 자살사고 및 의도가 있는 분이라면 대부분 협진 의뢰가 되기 때문에 꽁꽁 얼어붙은 벽의 틈을 찾아 노크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은 너무 빨라서도 일방적이어도 안되기에, 특히나 삶의 문턱에 있는 분들에게 다시 한번 삶의 끈을 잡을 수 있는 시발점은 어떤 대화의 내용보다도 조금은 기다려주고 진정성과 친절함을 가진 태도가 아닐까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사실 이 역할은 꼭 제가 아니어도 됩니다. 독자 여러분 누구나 그 존재가 될 수 있어요. 주변에 도움을 거부하는 분에게 어떠한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해결책을 제시해 주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늘 그 자리에서 따뜻함을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도움이 아닐까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또 정신응급을 담당하는 전문의로서 면담 끝에 가서는 안전 확보 및 집중적인 치료를 위해 입원을 제안해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역시나 돌아오는 질문도 이렇습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좋아져요?” “입원하면 뭐가 달라져요?”라고 묻는 환자 및 보호자를 설득하는 일은 그만큼 긴 시간이 걸릴 때가 있죠. 물론 정신과적 응급상황에서 자살 위험성이 높고 상황이 매우 급박하여 다른 입원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의사가 경찰관 동의를 받아 정신의료기관에 응급입원을 의뢰할 수 있지만, 이는 결국 다른 입원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3일의 입원 기간 만료로 퇴원하게 됩니다. 결국 환자 혹은 보호자가 동의하지 않은 형태에서 진행하는 입원치료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환자 및 보호자가 입원에 대해 꺼려하고 있다면, 입원 절차나 치료방법 등 궁금한 점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설명하면서 충분한 기간의 치료가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마음이 쉽게 바뀌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입원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거나 반대로 과도한 기대감이 생기면 독이 될까 걱정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치료 목표를 명확하게, 원하는 만큼의 증상 호전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도 반드시 설명합니다. 


그리고 향후 안전 관리와 위기 대응 계획을 설명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동안 해왔던 여러 시도와 아픔을 공감해 주는 것인데요. 삶의 괴로움 앞에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는 수동적인 위치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해왔던 것은 무엇일까요?”를 통해서 앞으로 삶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죠. 이는 결국 응급실에서 최종적으로 입원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것과 상관없이 “당신이 지금 고민하는 이 시간과 선택이 자살 행동에 대한 관점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어요”라며 심리적 변화를 위한 노력 그 자체를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물론 입원치료가 중요할 수 있지만, 입원치료뿐만 아니라 자살예방을 위한 다른 대처기술도 있다는 것을 함께 설명해 주면 꽤 도움이 되고 만족도가 높습니다. 나는 쓸모가 없고 무기력하고 사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우니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분들에게 그래도 해볼 수 있는 무언가를 함께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충분한 면담을 통해 자살 사고 및 의도가 감소하거나 보호 요인(삶에 대한 애착, 가족이나 반려동물 등에 대한 책임감, 사회적 지지 또는 치료자 등과의 좋은 유대관계, 자살 및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이 있다면 입원치료 외에도 연고지와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서 빠르게 진료를 볼 수 있도록 설명합니다. 또한,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에서는 자살시도자의 자살 재시도 예방을 위해 사례관리팀이 정신건강복지센터 등 지역사회와 연계하여 심리상담 및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응급실 퇴원 후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함께 안내합니다.


이렇듯 어쩌면 제가 응급실에서 줄곧 드리는 말씀은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계획을 거부하고 자의퇴원 하는 분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언제나 불편합니다. 한번 왔다가 지나가기도 하는 응급실에서의 만남은 짧은 순간일 수도 있지만, 그 한 번이 삶에서 가장 아슬아슬한 순간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 만남은 저에게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글을 적다 보니, 퇴원 후에도 어디선가 삶을 이어나가길 기도했던 분들이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계실지 궁금해지고 그분들과 조심스러웠던 첫 만남이 스쳐가네요. 그때도 오늘도 제가 최선을 다했는지 스스로 반성하게 됩니다.


“지금은 안녕하신지요?”


이승우 서울특별시 보라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위 글은 헬스조선의 연재 <당신의 오늘이 안녕하길>의 ['삶 vs 죽음' 경계의 응급실에서... 자살 시도 환자와의 첫만남]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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