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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날영화 Sep 14. 2020

유년시절 미완의 사랑에 대한 동경

유한한 삶, 생식의 운명


어느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
가사도 멜로디도 참 예쁜 노래인 데다
10대 시절 좋아라 했던 곡

이 곡을 듣고 나면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가 떠오른다.
아마 태어나서 처음 읽은 비극적 러브스토리가
그것이 아니었을까 (교과서에 실렸기에 ㅎ)
마지막 대사에 가슴이 오래도록 먹먹했던 건
나뿐만 아녔으리라




이루어지지 못한 유년시절 미완의 사랑은
문학적으로 예술적으로 아름답게 그려지곤 한다.
미완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는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서로 손 한번 못 잡아보고 끝나거나 몸을 통했다 하더라도 온전히 누리지 못한 채 끝나는 그즈음 어딘가 되겠지.


잔망스런 그녀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고결하고 아름답다 하여도
나 같은 일반인은
아니 치킨이 먹고 싶은데 머릿속으로만 뜯고 씹고 맛보고 즐겨야 한다니
이런 닭같은 경우가...!라고 할터.

그럼에도 그것이 주는 안타까움과 맑음, 고결함에 대한 동경은 일반인도 느끼는 공통의 감정 이리라.
왤까,
우리들도 한때 지니고 있었지만 어른이 되어가며
잃고 훼손당했던 순수에 대한 아련함, 그리움 일지도...


-

아멜리 노통브의 살인자의 건강법에서는 천재적 대문호인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촌 누이가 초경을 겪었을 때 그녀를 살해한다.
늘 두 사람은 끔찍하고 타락한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먹는 것, 자는 것, 수중 생활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살았으나 그럼에도 ‘살아있는 한’ 어른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어른의 징표(초경)를 가지게 되었을 때, 그녀가 부패되는 걸 막기 위해, 망가지는걸 막기 위해 주인공은 사랑하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살인한다.
이쯤 되면 태어난게 죄고 살아있는게 죄다 ㅡㅡ;

성경의 아담과 이브는 원죄의 아이콘 선악과를 따 먹고 ‘부끄러움’을(성을 의식) 알게 되며 나뭇잎을 엮어 몸을 가린다.
그때부터 여자는 출산의 고통, 즉 임신을 하게 된다.

성경에서 읽히는 남자와 여자의 성에 대한 각성으로 인한 일종의 죄책감은 유한한 생명을 가졌기에 생식이 필수인 우리들에게 어찌 보면 ‘한’ 같아 보인다.


Max Beckmann: Adam and Eve인간이 똑똑해져서 내쫒았겠나? 생식하는 자들에겐 영원한 생명(신)이 필요 없다.


남과 여로 존재하는 것은 우리가 미치고 파치고 팔딱 뛰며 발악을 해도 언젠가는 늙어 죽기 때문이다.


죽기 전에 빨리 서로 의기투합해서 뭐라도 - 그것이 덜 떨어진 자식새끼라 할지라도- 남겨야 하는 쫓기고 졸리는 운명.

순수한 영을 지닌 아이의 상태에서의 사랑,
그것은 무한한 존재인 신의 영역인지도 모르겠다.



-


어느산골소년의 사랑이야기 _ 예민 1992年


풀잎새 따다가 엮었어요

예쁜 꽃송이도 넣었구요

그대 노을빛에 머리 곱게 물들면

예쁜 꽃모자 씌워주고파


냇가에 고무신 벗어놓고

흐르는 냇물에 발담그고

언제쯤 그애가 징검다리를 건널까

하며 가슴은 두근거렸죠


흐르는 냇물위에 노을이 분홍빛 물들이고

어느새 구름사이로 저녁달이 빛나고있네

노을빛 냇물위엔 예쁜 꽃모자떠가는데


어느작은 산골소년의 슬픈 사랑얘기


https://youtu.be/IfKOn79yH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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