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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날영화 Jun 10. 2022

긴 하루…

그런날이 있다..

어제저녁

안방앞에

물고기가 떨어져 있는걸 발견했다.

수조에서 굉장히 먼 거리에

커브(?)까지 해야

떨어질수 있는 위치였다.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다행히 숨이 붙어 있어

다시 물속에 넣어주었다.


오늘 아침 일찍

흉부 복부 CT검사를 하고

진료까지 6시간이나

남아 있어서

밥도 먹을겸

신촌 거리를 둘러보고 있었다.


어떤 남자가

무언가로 내 머리를

세게 때리고 갔다.


뭘로 때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부피가 크고 가벼운

무언가 였던것 같다.

예를 들면 빈 페트병 같은…


물리적 충격이 크진 않았지만

소리가 퍽. 하고

워낙 크게 나고

예상없이 당해서

순간 얼이 빠졌다가


아무일없다는듯 가는

그 사람을 붙잡고

왜 때렸냐고 물었더니

파리가 있어서

잡으려고 했다고 답했다.

조선족 말투 같은걸 쓰고 있었다.


또라이 인가

또라이 인척 하는 놈인가

잠시 고민했다가

태도가 매우 꽤씸하고

약자 상대로

장난하는 놈일까봐

붙잡아놓고 경찰에 신고 했다.


무려 네 분의 경찰이 왔는데

그들은 매우 친절했고

성의껏 사건을 조사했다.


또라이는 한결같이

파리를 잡으려 했다는 말로

일관했고

말이 길어지니 이하생략…


결론은

훈방조치 하라 했다.

깜빵에 넣을수 있다고

나 보고 선택하라는데

이 정도로 진짜

저 인생이 나락이 될까 싶으니

고민이 되었다.


차라리 진짜 또라이면

기분도 안나쁠것 같은데…

또라이인척 하는거였음

겁이라도 먹었겠지.


경찰들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다.

그들은 성실하고 든든한

민중의 지팡이 맞구나.


쫄아서

외식은 개뿔

바로 병원식당으로

소라게처럼 쏙 들어가서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신경쓰지 않기로

결정하고 룰루랄라

커뮤니티에 글도 쓰고

노닥거리다

진료를 보고

항암을 하고

또 피가 부족하다고 해서

수혈도 했다.


수혈이 끝나가는 즈음에

갑자기

겨드랑이가

간지러워서

드디어 날개가 나려나

했는데

조금 지나니

팔 안쪽, 손목까지

두드러기 같은것이

우두두두 올라오더니

가렵기 시작했다.


수혈 부작용 중의 하나로

면역반응이다.

그동안 숱하게

수혈을 받아왔는데

이런적은 처음이었다.


간호사가 부작용 처치제

주사를 놓아주고

상태를 지켜보며


무심결에 카톡을 둘러보다가

남동생이 프사를

두부(강아지이름)로 바꿨길래

내가 찍은 두부 동영상을 보내줬더니

“착했지…”

라는 과거형으로 대답한다.


???


무슨소리야

지금도 착해


누나 아직 집 아니구나

엄마가 말 안했나보네


무슨소리?


두부 아까 4:20에

무지개다리 건넜어…



????



너무 황당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컨디션에

악영향 있을까봐

병원 보냈다고

둘러대려 하셨단다.


뭐야..

오늘 아침에도

알짱알짱 하는거

보고 왔는데…?


이렇게 갑자기??


두부가 요즘

종종 콜록거리는데

나이먹어서

그렇겠거니 했는데

심장이 안좋았나보다.


오늘 유독

컨디션 안좋아보여

쌔해서 병원에 데려갔는데

도착 15분만에

순식간에 떠났단다.


아니 뭐 이렇게

순식간에?


다만 3일이라도

앓다가 갔으면

맘의 준비라도 하지


허무하다

너무 순식간이다.

원래 그런거란걸

알았지만…


11살

우리 딸과 동갑이다.

강아지는 사람나이x7살이라는데

77세로 간건가

그래도 아쉬운 나이다

15년도 살고 그런다는데


딸아이가 뱃속에 있었던

7개월 임신부때

내가 직접 두부를 데려왔다.

배는 불룩해서

종이박스에 두부를 넣고

지하철을 타고

친정집으로 데려왔다.


그때 나는

노약자석에 앉아있었는데

애기 두부가

상자 뚜껑을 열고

코를 내미는 바람에

내 핸드폰이

지하철 좌석과 벽면 틈으로

쏙 빠져버렸고

사람 손으로 꺼낼수 없는 위치였다.


결국

사람 빽빽한

그 퇴근길 지하철은

민폐녀와 민폐견때문에

잠시 멈춰 섰고

역무원 분들께서

의자를 들어

(그것은 조립식처럼 되어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주셨다.


핸드폰을 꺼내자

아줌마 할머니들이

와 하고 박수쳐줬던

어이없는 기억이 떠오른다.


두부를 데려온 계기는

엄마가 놀러갔다

주워온 어미잃고

아픈 고라니 새끼.


그녀석이 며칠 인연을

친정집에서 지어가다가 죽었고


그에 오래 슬퍼하는 엄마를 보고

강아지 한번 알아봐라,

하는 아버지의 씀으로

지어진게 두부와의 인연이다.


작년 4기 진단을 받고

나는 종종 두부를 보며

네가 먼저 갈까 내가 먼저 갈까

하고 묻곤 했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서

마지막 모습을 전해 들으며

많이 울고

엄마도 울었다.


사람과의 소통이 서투르고

두부와 시간을

제일 많이 보낸

아버지가 걱정이다.


긴 하루였다.


내일 새벽차로

여수에 돌아간다.

딸아이에게 설명해줄 말들을

고르고 있다.


두부는 지금

동물병원 냉동실에 있고

내일 아침 8시에

화성으로 데려가서

화장시킨단다.


두부 키우기 전에는

아버지도 남동생도

개 장례치른다 하면

지랄하네 하던 스타일였는데


이제는 슬퍼하며

응당 그러자 한다.


인연은

진심을 다한 인연은

그렇게

우리 삶에 흔적을 남긴다.


두부 우리집에 처음 온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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