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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티제 Aug 06. 2021

너한테 이렇게 예쁜 여친이 있다고?

동생도 연애를 한단다.

 "나 여자 친구 있어."


 처음 동생에게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제일 처음 들었던 생각은...

 뭐? 누가 너를 좋아한다고? 인간이 아닌 남자로? 


 내 동생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훈이(동생)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좋은 사람이기는 한데 누나의 눈으로 봐서 그런지 뭔가... 뭐랄까. 누군가가 정훈이를 남자로서 멋지다고 생각하고 연애를 하고... 그런다는 것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동생에게 여자 친구가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여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나에게, 정훈이는 여자 친구의 사진을 보여줬다. 


 그런데...뭐야...왜 이렇게 예뻐? 정말 여자 친구 맞아? 정훈이의 여자 친구는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 예뻤다. 무심결에 속마음이 툭 튀어나왔다.


 "얘가 너를 왜 사귀는 건데?"

 

 이런 내 반응을 보고 정훈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누나 사귀는 남자도 있는데 나 좋아하는 여친도 있겠지?" 하며 복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정훈이에게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지금은 벌써 7년쯤 흘렀고, 정훈이와 그 여자 친구는 장기 연애 중이다. 정훈이의 여자 친구 소희는, 얼굴만 예쁜 것이 아니라 배려심도 넘치는 좋은 아이였다. 둘은 어떻게 연애하고 있을까?

  



나: 너희 둘이 사귄 지 이제 정말 오래된 것 같아. 그지? 장기 연애의 비결이 있어?

동생: 장기 연애를 하고 있긴 하지만, 특별히 노력한 건 없어. 그냥 계속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좋은 사람이랑 연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편하고 안정적이고, 그렇다고 무작정 편하다기보다는 세상에 내 편이 하나 더 생겼다는 생각이 들어. 이건 누군가를 봐서 설레는 일보다 더 대단하고 뛰어난 일인 것 같아.


나: 둘이 처음에 어떻게 만났어?

동생: 군대에서 처음 만났지. 군대에 있는 교회에서 처음 봤는데, 나는 군종병 일을 하고 있었고, 소희는 군간부 딸이었어. 처음에는 그냥 오다가다 얼굴 보는 정도의 사이였어.

 걔가 낯을 굉장히 많이 가리는데, 오히려 난 그게 좋아 보였어. 어떤 사람들은 군인들한테 오빠, 오빠 하면서 친하게 지내려고 하고 엄청 말도 걸고 그랬거든.

 그러다가, 교회 행사에서 소희가 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서 나랑 오다가다 보는 일이 더 많아졌어. 그러면서 더 마주치는 날이 많아졌는데, 가끔 얘기도 해보면 낯을 가리는데 은근히 재미있게 대화하게 되고 그랬던 것 같아.


나: 상황을 들어보면 처음엔 가까워지기 어려웠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동생: 일단 처음 만났을 때 소희는 미성년자여서, 아예 관심에 두지 않았어. 그리고 그때 워낙 바빠서 내가 툴툴거리는 일들이 많았는데, 그래서인지 소희는 나를 '약간 짜증 나있는 사람' 정도로 생각했다고 하더라고.


나: 그러다가 어쩌다 가까워진 거야?

동생: 초여름이었던 것 같은데, 교회 행사 때문에 점점 더 자주 보게 되었어. 그리고 교회 일을 하다 보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소희 연락처도 알게 되었고. 근데 자주 보면서 점점 더 호감이 가더라고. 소희가 괜찮은 사람 같고.

 근데, 현실적으로 가까워지기가 쉽지가 않더라고. 지금 나이에서는 2~3살 나이 차이 나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당시 내가 성인이었고 소희는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나이가 엄청 큰 문제라고 생각했거든.

 게다가 내가 군인이니까, 이게 군인이라서 순간적으로 소희에게 끌리는 건지, 아니면 정말 알아가고 싶은 건지 이 부분에 대해서도 계속 고민이 되더라고. 현실적으로 군대를 제대하면 서로 거리가 멀어지는 것도 문제고... 다 문제라고 생각했어.


나: 그렇게 고민하다가 어떤 계기로 사귀게 된 거야?

동생: 나도 계속 고민하다가, 휴가 나가서 술 마시고 소희한테 전화를 한 거야. 근데 하필 그때 가족들이랑 같이 있다고 하더라고. 소희 아버지가 군간부시니까. 무서워서 나중에 연락한다고 하고 바로 전화를 끊었는데, 소희는 그게 배려라고 느껴졌대.

 그렇게 전화해서 별 말없이 끊긴 했지만, 그 이후로도 점점 친해지면서도 이게 맞나 싶어서 1년은 고민했어. 그러다가 결국 내가 먼저 얘기를 했지. 내 감정,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고민, 그리고 앞으로 만나면 좋을 것 같다는 그런 얘기.


나: 그런데 소희가 그 마음을 받아준 거야?

동생: 그지. 근데, 난 몰랐는데 그때 군인들이 소희한테 고백을 엄청 많이 했대. 나중에 들었는데,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도 고백한 사람들이 엄청 많더라고. 소희는 그 사람들보다 내가 더 좋은 사람 같았대. 그래서 사귀기 시작했는데, 비밀로 하고 사귀다 보니 나랑 사귀면서도 다른 사람들한테 고백을 많이 받았어.


나: 근데 왜 하필 소희가 너랑 사귀게 되었을까?

동생: 글쎄. 내가 고백하고 얼마 있다가 소희가 나한테 쪽지를 줬어. 무슨 초등학생 편지 쓴 것처럼, 8개 키워드를 정리해서 편지를 줬어.

 내용은 대충,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가, 이 마음이 정말 진심인가, 얼마나 진실한 사랑인가?, 영원할 것인가?' 이런 것들이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 웃기기도 하고, 소희도 부끄러워하는데, 소희는 고백에 대해서 즉시 답한 게 아니라 이런 쪽지로 본인이 궁금한 사항들을 적어서 줬거든.

 나도 그 쪽지에 대해서 정말 진심으로 고민해서 답장을 보냈고. 아마 그 답장에서 진심을 보지 않았을까? 그리고 당시에는 내가 사람들에게 인정을 많이 받았거든. 맡은 일도 잘하고, 사람들이랑 협조도 잘 되고. 그리고, 교회에서 일하다 보니 먹을 것들을 얻기가 쉬웠는데, 그걸 보통 다른 동료들이랑 나눠서 먹었고. 난 과자에 관심이 없어서 안 먹은 건데, 그런 것이 좋아 보였다고 하더라고.


나: 군대 안에서 연애를 시작한 거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연애했어?

동생: 의사소통을 편하게 할 수가 없으니까 일주일에 한 두 통씩 편지를 주고받았어. 지나갈 때 몰래 주거나, 아니면 약속한 장소에 넣어 뒀어. 약간 벽돌 사이나 이런 곳들. 박스 사이에 넣어 놓기도 하고. 사귀는 건 비밀로 해서, 사귀는 거 아주 나중에 오픈했는데도 아는 사람 없더라고. 그때 참 영화 찍는 것 같았어. 약간 해리포터에 나오는 9와 3/4 승강장 같은 느낌도 났던 것 같아.


나: 너무 귀엽다. 제대 한 다음에는 연애가 순탄했어?

동생: 소희의 첫 남자 친구가 나니까, 소희 입장에서는 뭔가 비교할 대상이 없잖아.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이 연애가 좋은 연애인지, 내가 좋은 남자 친구인지 그런 고민을 사귀면서도 계속했던 것 같아. 한 3~4년 정도는 그런 고민을 하는 것 같더라고. 나도 몇 년 동안 이 관계에 대해서 고민한 적도 있는데. 지금은 둘 다 이 연애가 좋은 연애라고 결론을 지은 것 같아.


나: 물론 소희도 어렸지만, 너도 어렸잖아. 그리고 벌써 7년을 사귀었으면, 다른 사람들은 만난 적 없어?

동생: 난 여자 친구가 없었던 적이 거의 없어. 근데 거의 다 6개월을 넘긴 적이 없어. 지금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도 없고. 근데 오히려 이뤄지지 않은 사람이 더 기억에 남더라고. 남자의 첫사랑 무덤까지 간다는 FT아일랜드 노래 알지?


나: 근데 왜 넌 소희를 만나기 전까지 단기 연애만 했을까?

동생: 다 내 잘못인데, 내가 너무 망나니였어. 술 마시고 노는 것을 좋아해서 여자 친구에게 신경 쓰지 못한 것 같아. 혼자 술 마시고 친구들이랑 자취방에서 놀고 그러는 걸 좋아했어. 정말 딱 한 번, 남자들이랑 노는 걸 너무 좋아하는 여자를 만난 적 있는데, 그때 빼고는 다 내 잘못이야. 소희를 그때 만났으면 빨리 헤어졌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만나서 다행이야.


나: 앞으로 둘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 같아?

동생: 소희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이야. 엄마 아빠가 빨리 결혼하라는 얘기를 하기도 하는데, 사실 얼마 전까지는 시험 준비하는 입장이어서 그런 생각 제대로 한 적은 없었어.

 근데 이제는 가끔씩 소희랑 진지하게 얘기해보기도 해. 만약 정말 결혼해야 한다면 뭘 준비해야 할까, 같이 지내게 되면 어떨까, 이런 상상을 해봐. 얘기하다 보면 결혼이라는 게 정말 어려운 것 같아서 그렇게 흐지부지 끝나긴 하지만, 아직은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있으니까. 경제적으로. 내 직업도 불안정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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