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태어나서
쌀가게 점원이던 한 소년이 세계 최고의 조선소를 세운다.
한때 나의 자부심이었던 하동 정 씨 동성동본 고 정주영 회장
가슴이 웅장해지는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드는 첫 생각은 “나도 기성세대였으면, 나도 옛날에 태어났으면 누구보다 잘 살았을 거야” 하며 현실을 부정하는 구질구질한 변명들을 짓거렸던 나의 어린 날이다.
강원도 통천 가난한 농부의 아들, 그가 잘 될 수 있었던 밑거름은 GRIT에서도 나왔던 본인을 믿어주고 사랑해 준 부모님과 장남으로서 어깨에 짊어진 책임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난함의 타성에 젖어있는 아버지의 의지를 걷어 낸 몇 차례의 가출, 농사일이 싫어서가 아닌 단지 도회지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하나였다.
막일 꾼, 쌀가게 직원, 쌀가게 사장, 화물차 운전수, 아도서비스, 현대자동차공업사, 현대토건사, 현대건설주식회사, 아산재단 등 발전을 거듭하여
고령교, 경부고속도로, 울산조선소, 자동차 포니, 사우디 주베일 항만 공사 수주, 서울올림픽, 금강산 개발 등 한 나라의 산업화를 이끈 거인이자 대한민국의 척추를 바로세운 인물이 정주영이다.
(오백 원 지폐를 꺼내 들며) “이것을 보시오. 이것이 우리의 거북선이오. 우리는 벌써 1500년대에 이런 철갑선을 만들어 일본을 혼낸 민족이오. “ 조선소 건설 차관을 위해 영국 은행에서 한 말
느껴지는가? 이 말은 단순한 유머가 아니라 현실을 바꾸기 위한 정주영 회장의 담대한 상상력과 자신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어머니, 저게 조선총독부예요. 저는 장안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어서 저것보다 더 큰 집에서 살 거예요.” 그는 유년시절 이미 확언했다.
“고령교 공사 부채로 온 가족이 판잣집에 들어갔을 때도, 공부한 셈 치자 마음을 다스리니 상황만큼 절망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했다.” 첫 파산에도 긍정 유지
“몸 건강히 살아만 있다면 잠시의 시련은 있을지언정 완전한 실패란 없다.”
불치하문 - 내가 모르는 것을 물어 배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모험이 없으면 큰 발전도 없다. 보다 큰 발전을 희망한 모험에는 또 그만큼의 대가도 치러야 한다.”
“방법은 한 가지뿐, 우선 빨리 만들어놓고 일해가면서 고쳐 쓸 수밖에 없었다.” 울산조선소 건립 당시
“우거짓국 먹고 살 각오를 해둬라. 죽으면 맨몸으로 가는 게 인생인데 망한다고 해도 아까울 것 없다.” 1992년 대선에 나갈 당시
일제 치하 아래 태어나 동족상잔의 비극 한국전쟁을 겪고 전두환 정권 기업 탄압 같은 무수한 갈등 앞에서도 큰 기업을 일구고 대한민국의 위상을 알린 이 인물이 존경스럽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존경스러울 수 있는가?
통화 단위가 책 초반에 땅 값 800원을 운운하는데 책 막바지엔 공사 수주로 몇 십억 달러를 운운하는 게 어이없으면서 대단한 포인트
“하루하루 발전하지 않는 삶은 의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