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뱃속부터 친구였던 은규가 근처 공단 인턴으로 오게 되면서 거리가 가까워졌다.
지난 9월인가 같이 밥 먹으면서 장난처럼 이야기했던 아이디어를 11월부터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처음엔 진지하지 않았고 그냥 해보자란 느낌으로 시작했다.
서울고속터미널 도매상가와 대전 도매상가에서 레퍼런스를 얻고, 사진을 찍고, 마케팅 소스와 방향성을 설정했다.
당근, 블로그, 스레드로 온라인 마케팅을 준비하고 오프라인 마케팅을 위해 명함을 주문했다. 명함이 만드는 건 생각보다 쌌다(200장에 10,000원). 은규랑 나 둘 다 어느 정도 온라인 마케팅에는 경험이 있어서 이 부분은 수월했다.
그렇게 블로그로 유입된 첫 거래가 성사되었다.
처음부터 마진을 높여 판매할 생각으로 알리, 테무 등 중국발 해외직구 제품으로 소싱을 했다.
거래일 한 주 전부터 집을 창고 삼아 프로토타입을 제작했다. 우리 눈에는 흡족한 결과물이 나와서 기뻤다.
거래 다음날 거래처에서 cs가 들어왔다. 만족할 만한 품질이 아니라고 실망스럽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때 깨달은 교훈은 마진율을 높이는 게 중요한 게 아닌 고객의 만족이 우선이라는 점이었다.
우리 눈에는 흡족한 결과물이 타인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cs를 접수하고 보완점을 상의했다.
그 이후로 계속 들어올 것만 같던 주문은 끊겼고, 1주간 공백기가 찾아왔다.
미리 주문했던 제품들을 반품했다. 호기롭게 시작했던 첫 비즈니스를 접으려 했으나 고작 하나 팔아보고 접는다면 나중에 뭘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정신을 각성시켰다.
토스, APR 등의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업의 앞길을 막는 법률과 규제를 뚫어 나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진율을 낮추더라도 좋은 품질과 결과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돈 보다 경험을 초점으로 잡아 제품을 소싱했다.
고객이 만족하기 시작했다.
기술도 없던 우리에게 좋아진 품질이 마련 됐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이 바닥 고인물들은 얼마에 제품을 파는지 궁금해졌다. 규모가 큰 2개 업체를 조사해 보니 우리 제품보다 터무니없이 비싸게 팔고 있었다.
이 가격을 유지한다는 건 분명 수요가 있다는 뜻이었고 우리는 시장의 파이를 더 가져가기 위해 품질은 유지하되 타 업체 가격에서 20만 원 이상 할인 된 가격으로 고객과 협상했다.
미리캔버스로 가격테이블을 만들고 제미나이로 고객을 사로잡는 백만 불짜리 세일즈피치를 제작했다.
기성세대는 잘 사용하지 못하는 도구들을 사용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복지관, 관공서에서 주문이 들어왔고 우리는 이 고객들을 대어라고 불렀다.
왜냐면 공공기관 같은 경우 납부금이 개인의 지출이 아니기 때문에 제품에 대한 기준이 높지 않았고 대부분 수월하게 계약이 성사됐다.
개인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납부금이 본인 지출이기 때문에 기준이 굉장히 높았다.
고객과 대화할 때 느낀 점은
규모가 큰 가게나 빌딩의 소유자인 고객에게는 말에 여유가 있고, 미소가 있고, 유머가 있다. 전체적으로 계약 및 판매가 매끄럽게 진행된다.
소규모 영세 자영업자가 고객인 경우, 여유가 없는 게 느껴지고 전체적으로 잡음과 cs가 많다.
돈이 미소를 만드는 게 아니고 미소가 돈을 만든다.
결국 돈은 사람의 그릇에서 비롯된다.
혼자였으면 절대 못 했을 거 같은데 은규가 있어서 가능했다. 은규가 보유한 사업자를 이용할 수 있었고 혼자 감수했어야 할 위험을 분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하면서 부딪히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처리할 때 개인의 생각보다 둘의 생각이 더 큰 시너지를 냈다.
마진이 높아질수록 탐욕도 함께 상승함을 느꼈다. 탐욕을 경계하자.
역시 세상은 도전한 사람의 것이다.
레드오션, 블루오션 따지지 말고 전망 있는 시장에 문을 두드려보는 행위가 중요하다. 일단 시작하고 계속 보정해 나가는 것. 그걸 경험했다는 것으로 이번 사업은 대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