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생애 - 셰익스피어는 실존인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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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실존인물이 아니다? - 셰익스피어의 생애


썸네일 셰익스피어.jpg 공연연출&예술경영 교육채널 <예술도서관>


“인도는 내줄지언정 셰익스피어는 내줄 수 없다.”



햄릿을 비롯한 비극은 물론, 로미오와 줄리엣, 한 여름밤의 꿈, 베니스의 상인 등

우리가 익히 들어봤을 작품을 써낸 영국의 위대한 작가 셰익스피어.


예술도서관에서 소개하는 예술가, 첫 번째 시간은 셰익스피어입니다


곧 있으면 국립극장 NT LIVE를 통해서 영국

로얄셰익스피어컴퍼니의 <한여름 밤의 꿈>과 <리어왕>을 만나보실 수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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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사망한지 400년이 지난 지금도 그가 남긴 희곡과 시는


여전히 공연되고 있으며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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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맥베스, 리어왕, 오셀로 등 4대 비극 외에도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광대>입니다. 셰익스피어는 광대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였을까요?


광대는 인물들에게 뼈를 때리는 조언을 하면서 작품의 주제나 주요한 메시지가 되는 대사들을 내뱉죠.

또 말장난을 통해 비극이라는 장르에 희극성을 더해 작품의 환기를 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비극 작품에서 광대가 등장하는 것은 고전적인 문법에서 벗어난 독창적인 시도였습니다.

셰익스피어는 비극속에 희극적인 요소를, 희극속에 비극적인 요소를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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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이러한 문체는 그가 활동했던 르네상스 시대 이후 그리스, 로마 시대의 전통과 규칙으로 돌아가서


비극과 희극을 분명히 나누는 ’신고전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비난받기도 하였습니다.


광대는 관객과 배우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는데요. 등장인물로서 인물에게 대사를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관객이 인물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생각과 감정을 대사로 대신 내뱉어주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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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광대 짓도 못 하겠어. 저렇게 잘난 것들이 서로 바보 노릇을 하려고 하니”

셰익스피어 <리어왕> 中



<리어왕>에서 두 딸에게 모든 재산과 권력을 뺏기고 매몰차게 버림받은 늙은 리어왕에게 광대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죠.


<리어왕>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광대의 명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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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고 다 보여주지 말고,
안다고 다 말하지 말고,
가졌다고 다 주지 말고,
들었다고 다 믿지 말라


셰익스피어 <리어왕> 中



광대의 이러한 대사는 리어왕에게 하는 대사지만 동시대를 살고있는 사람들에게도 큰 영감을주어

’셰익스피어 명언집‘이 따로 출간될 정도죠. 이처럼 ’광대‘와 같은 셰익스피어 희곡의 특징은 지금까지도

그의 작품이 사랑받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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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작품이 위대한 가장 큰 이유는 ’보편성‘에 있습니다.

그의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겪는 일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며 모두가 작품 속 인물들처럼

고민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기 때문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대표적인 작품 <햄릿>을 보면 ’유령‘이라는 초현실적인 존재가 등장하지만

그로 인해 햄릿이 복수를 갈등하는 모습은 단순히 복수에 대한 갈등을 넘어 ’삶과 죽음‘이라는 인류 보편적인 갈등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햄릿>의 이야기는 디즈니의 대표작 <라이온 킹>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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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죽이고 왕좌를 꾀찬 숙부에게 복수하는 왕자”


심바는 아버지 무파사의 복수를 하기 위해 삼촌 스카와 대립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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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역시 이루어질 수 없는 두 가문의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 지금까지도 많은 이야기의 소재가 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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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역사극, 희극 그리고 비극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훌륭한 작품을 썼으며

지금까지 가장 많이 공연되고 있는 공연의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에 대한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아

’셰익스피어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는 주장들까지 나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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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1세가 통치하던 16세기 중반 영국 남부의 마을 스트래트어폰에이번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장갑제조업자로 제법 부를 축적한 인물이었으며 18세가 되던 1582년


여덟 살 연상의 앤 헤서웨이와 결혼하여 1583년에 딸을, 1585년에 아들과 딸 쌍둥이를 낳았다는 기록만 전해질 뿐입니다.


이 후 1585년부터 1592년 까지에 대한 기록이 없어 학자들은 이 시기를 ‘잃어버린 시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후 셰익스피어는 1580년대 말 런던에서 극작가 겸 단역 배우로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후 시종장관 극단의 일원이 되며, 1599년에는 글로브 극장의 공동 소유주가 되기도 합니다.

그는 왕가의 적극적인 후원을 배경으로 극작가로 승승장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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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출세한 까마귀(upstart crwo)”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등 유망 대학 출신의 극작가들은 셰익스피어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하며 시기 어린 질투를 표현했는데요.


대학도 나오지 않은 극작가가 역사극, 비극, 희극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작품을 써내다 보니

당시의 귀족들과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이런 질투가 당연시해 보이기도 합니다.


극작가 벤 존슨은 ‘라틴어도 못하고, 그리스어는 더 못하는’(small latin, less Greek)라고 셰익스피어를 평가했습니다.


이는 셰익스피어에 대한 조롱이라기보다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작품들을 써낸 그에게 보내는 찬사와 같은 표현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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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질투는 셰익스피어 사망 이후 ‘셰익스피어는 실존인물이 아니다’는 음모론으로 5000종 이상의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시골 출신에 대학 교육도 못 받은 그의 작품의 완성도가 너무나 뛰어나다.


엄청난 유명인사지만 그의 삶에 대한 기록이 거의 전무하다.


37개의 희곡과 154편의 시를 남겼지만 2개를 제외하고는 사망 후에 출간되었으며 친필 원고조차도 단 한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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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근거를 든 음모론은 문학계 유명인사들이 셰익스피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 영향력을 키워나갑니다.

먼저 <크리스마스 캐럴>로 잘 알려진 찰스 디킨스가 그의 진위여부를 밝혀내야 한다고 이야기하였으며,

영국내의 유명인사 287명이 공식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여습니다.


이 외에도 볼테르, 톨스토이, 버나드 쇼 같은 저명한 작가들 역시 셰익스피얼르 비난하였습니다.

특히 버나드쇼는 “셰익스피어는 다른 사람이 이미 쓴 내용을 뒤따라 썼을 때에만 진정으로 훌륭한 극작가”라고 이야기했는데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전무하던 당시에는 전해지는 이야기 또는 소설, 수필, 에세이 등을 작품의 모티브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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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또한 ‘아버지를 독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 숙부에게 복수를 한다는 이야기는 |

이미 중세시기부터 구전으로 전해져 덴마크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이야기였다고 합니다.

12세기 덴마크의 역사학자 삭소 그라마티쿠스는 이 중세 구전설화를 ’왕자암렛의 이야기‘로 자신의 저서


<덴마크의 역사>에 기록합니다. 또 1599년,

토마스 키드라는 극작가가 쓴 <스페인의 비극>은 당시에 작품이 흥행했을 뿐만아니라 햄릿의 원작이라고 불릴 만큼 비슷한 내용을 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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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진짜 셰익스피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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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셰익스피어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양한데요 그 중에서도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두 인물,


셰익스피어와 동갑이자 가까운 동료였던 크리스토퍼 말로와 당시 최고의 지식인 중 한명인 프란시스 베이컨입니다.


크리스토퍼 말로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석사를 취득하고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의 중산층 자제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교육을 통해 배출한 문필가였습니다. 괴테보다 먼저 ’파우스트 박사‘의 이야기를 극화시킨 인물입니다. 당시 지식층의 사람들은 자신들과 같은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를 나온 지식인인 크리스토퍼 말로가 셰익스피어 이기를 바랬던 것이었죠.


다음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는 프란시스 베이컨, 당시 대법관을 할 만큼 최상위 지식인 이었는데요, 정치, 경제, 문화, 과학, 문학 등 다양한 방면에서 방대한 지식을 가졌던 프란시스 베이컨이야 말로 셰익스피어의 왕실의 이야기부터 귀족, 시장 잡패들 때로는 요정과 괴물들이 등장하기도 하는 방대한 작품을 쓸 수 있었다고 주장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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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만 아니라 엘리자베스여왕이 셰익스피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런 셰익스피어의 생에 대한 각종 추측은 지금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작가 T.S엘리엇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갖가지 틀에 맞춰 해석하려는 시도가 워낙 많았으므로,

이제 유일하게 시도되지 않은 방법은 그의 작품을 ‘있는 그대로’ 보는 방법뿐이라고 꼬집은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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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후대의 사람들에게 예술적으로 큰 영감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셰익스피어를 하나의 장르이자 산업으로 만들어 냈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를 연구하고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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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위대한 극작가 셰익스피어, 그의 희곡들을 읽으면서 희곡을 읽는 즐거움에 빠져보는건 어떨까요?



글/제작: ⓒ 예술도서관


https://youtu.be/L2bjsmZUl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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