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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을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을 브랜드의 '핵심가치'

예술경영 함께 공부할까요? 17화

예술경영 함께 공부할까요? 17화. 4줄 요약



✦ 브랜드가 성장을 거듭하다보면 언젠가 한계나 위기가 찾아온다

✦ 처음 브랜드가 내세웠던 초심, 가장 '나다운' 핵심이 무엇인지에 기반하여 한계와 위기를 극복하기

✦ 일반경영 사례. 'Back to the Brick', 레고 (LEGO)

✦ 예술경영 사례. '문화보국(文化保國·문화로 나라를 지킨다)'의 정신을 대중과 세계로, 간송미술관(Kansong Art Museum)




❍ 1p 세상에 풍화되기 마련인 브랜드의 핵심가치


SE-8f206d43-cfaf-4851-89fe-835de11bfc4c.jpg 우리 브랜드의 핵심적인 가치는?




모든 브랜드는 각자만의 핵심가치(Core Value)를 품고 있다.


처음 브랜드와 회사를 세웠을 때 갖고 있던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가치.

그것은 세상의 특정한 불편함을 해소하거나, 더 나은 삶을 영위하는 데 도움을 주거나,

사람들을 즐겁게 하거나,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들거나 하는 등의 커다란 목표를 향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지속적인 브랜딩과 사업확대를 통해 브랜드가 성장하고,

브랜드가 출시하는 서비스와 제품이 다양해진다면 대부분의 브랜드는 혼란에 휩싸이기 쉽다.


지나치게 커진 사업의 규모, 지나치게 다양해진 서비스와 제품의 종류,

현실적인 사업과 사회에서의 제약 등 여러 이유로 기존의 브랜드와 회사가 가졌던

큰 목표와 핵심적인 가치는 약간씩 수정되거나 변용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지속된다면, 핵심가치를 잃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또한 세상의 변화가 오늘날처럼 빨라진 시기,

사업 초창기에 굳건히 믿었던 특정 가치나 상황이 급격하게 변화한 상황에서

브랜드가 세상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다 원래의 가치를 잃어버린 경우도 허다하다.


우리가 지난 시간 함께 공부해봤던 '트로피카나'의 사례도 정확히 그와 부합한다.

'트로피카나' 오렌지 주스는 기존의 깨끗하고 싱싱한 오렌지에 꽂은 빨대를 통해서

어느 오렌지 주스보다 신선하고 100% 함량을 자랑하는 훌륭한 음료를 제공한다는

확실하고 굳건한 가치를 가지고 있던 제품이었다.


하지만 세상의 디자인 흐름에 맞춰 지나치게 많은 변화를 만들어내다가

원래의 '신선한 오렌지주스'라는 가치를 잃어버려 역사에 남을만한 실패를 겪고

다시 기존의 가치를 강조해주던 디자인으로 회귀했다.


트로피카나 뿐 아니라 수많은 브랜드들이 이와 같은 압박을 겪는다.

세상의 변화가 빠르게 이뤄지기에 그에 적응하여

소비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럼에도 모든 브랜드는 기존의 소비자들이 브랜드의 '핵심가치'에 공감하고 그에 매력을 느껴 브랜드를 지지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2p '어머니(母)'를 잊지 않으면 위태로워지지 않는다


노자.jpeg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천하유시 이위천하모

천하(天下)에는 시초(始初)가 있으니 그것을 천하(天下)의 어미로 삼는다.


旣得其母 復知其子

기득기모 부지기자

이미 그 어미를 얻었으니 다시 그 자식(子息)을 안다.


旣知其子 復守其母

기지기자 부수기모

이미 그 자식(子息)을 알았으니 다시 그 어미를 지킨다면


歿身不殆

몰신불태

죽을 때까지 위태(危殆)롭지 않다.

- 노자 <도덕경> 제 52장




노자의 도덕경 제 52장에는 '천하'의 이치에 대해서 논한 문구가 나온다.

천하의 모든 구성요소들에 통용이 될만한 노자의 이 문구의 핵심은

천하의 모든 일에 '시초'가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모든 일에는 시초가 있듯,

어머니를 보면 그 자식을 알 수 있고

자식을 보면 그 어머니를 알 수 있다.


어떤 위태로움 앞에서도 자식이 그 어머니, 즉 시초를 지킨다면

다시금 중심을 잡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결국 모든 일의 '초심'을 찾고 그에 충실한 이들만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도 단단하게 나아갈 수 있다는 이 말은

우리가 그동안 공부했던 '브랜딩'에도 충분히 통용이 되는 말이다.


세상이 변화함에 따라 브랜드가 사회 내에서 해야 할 역할도,

소비자들이 브랜드에 요구하는 바도 지속적으로 달라지겠지만

브랜드가 추구하던 기존의 가치와 방향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순간

브랜드만의 핵심가치와 '나다움'이 사라진다.


따라서 브랜드는 우선적으로 기존에 추구해왔던 '브랜드다운' 핵심가치와 방향을 고려한 후,

브랜드만의 특성에 맞도록 세상의 변화와 트렌드를 변용하여 적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은 브랜드가 갖고 있는 특성과 핵심가치가 뚜렷해야만 수월히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따라서 오늘은 세상이 급격히 변하고 그에 따른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도

각 브랜드만의 핵심가치를 뚜렷하게 내세워 위기를 극복하고 오히려 더 큰 성장을 바라보고 있는

'레고'와 '간송미술관'의 사례를 함께 공부할 것이다.





3p 일반경영 사례로 보는 브랜드의 '핵심가치' : 레고 (LEGO)



'Back to the Brick', 레고 (Lego)

레고2.jpeg 레고스토어 영등포 타임스퀘어점



외국의 한 틱톡 영상이 큰 인기를 끈 적이 있다.


대형몰을 딸과 함께 거닐던 아빠가 눈 앞의 어떠한 공간에 크게 놀라더니

딸의 눈을 가리고 그 앞을 황급히 지나친다.

아빠가 빨리 지나치고자 했던 그 공간은 바로 '레고'의 매장이었다.

딸이 그 신나는 장난감 세계에 빠질까봐 두려웠던 아빠의 마음을 유쾌하게 짚어낸 영상은 세계의 부모님의 공감을 샀다.


아주 작고 간단한 블록 몇 개로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세상의 어떠한 공간이나 구조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레고'는 어린이들에게 절대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브랜드이다. 단순한 재미 뿐 아니라 성장기 어린이들의 창의력이 문제해결력 등에도 좋다는 연구와 체험사례 덕에

부모님들 역시 아이들에게 권장하는 놀이도구이기도 하다.


레고는 유아,아동기 팬층 뿐 아니라 성인팬층도 탄탄한 브랜드이기도 하다.

어린시절 갖고 놀던 레고를 성인이 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조립하는 이들이 많은데

레고는 이러한 성인팬층을 타겟으로 한 고난도의 제품을 다량 출시하여

수많은 연령대의 팬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현재까지 출시된 레고의 제품 수는 무려 2만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소재는 백악관, 에펠탑, 구겐하임 미술관 등 세계의 유명 건축물(레고 아키텍쳐)부터 시작해서

중세의 성을 본따 만든 '레고 캐슬', 오리지널 레고 캐릭터와 세계관을 나타내는 '레고 클래식',

디즈니 동화와 영화 <아바타>, 슈퍼 마리오 등 세계의 유명 IP를 레고에 맞게 디자인한 제품까지 그 종류가 무궁무진하다.


레고의 팬들은 이미 디자인된 완성품을 넘어 자신만의 레고 디자인을 새로 해내어 공유하는 경우도 많을 정도이니 레고 특유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표현의 범위는 대단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듯 지금까지 큰 성공을 거둬오고 있는 레고 역시 역사 속으로 살아질 위험을 겪고,

그를 효과적으로 극복해낸 경험이 있다. 레고는 어떠한 위기를 겪었으며 그를 어떤 식으로 극복했을까?



레고.png 레고의 로고


21세기, '재미있게 놀아라'라는 슬로건 아래 탄생한 '레고'는 몇 차례의 위기를 겪는다.

무엇보다도 정보통신의 발달로 PC, 게임기 등 기존의 장난감을 위협할만한 강력한 경쟁자들이 나타난 것이

레고의 입장에서는 큰 충격이었다. 또한 출산율이 떨어지며 레고의 주요 고객인 아이들의 수가 급감하는

인구 구조상의 문제도 레고는 고심해야 했다.


1998년, 레고는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하여 1000여명을 해고하며 구조조정을 실시했고

이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의류, 테마파크 등의 다른 사업을 시도했지만 모두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2004년에는 파산 직전까지 이를 정도였다.


이후 레고는 가족 경영에서 벗어나 전문경영인 경영으로 바꾸기로 결정,

덴마크 출신이자 30대 중반의 예르겐 크누스토르프를 대표로 영입했다.

그는 레고가 벌여놨던 새로운 사업이 아니라 레고가 가장 잘해왔고 레고의 정체성을 가장 잘 담아낸

기존의 블록 사업으로의 회귀를 결정했다.




Back to the Brick




을 선언한 것이다.


예르겐 크누스토르프가 생각한 레고의 본질은 '블록조립'이었으며

레고가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서는 기존의 블록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본것이다.

이후 레고는 신사업을 정리하고 블록산업에 집중한채 수익성을 높이려고 시도했다.


통용성이 낮은 특수블록의 비중을 줄이고 표준 블록 사용률을 70%까지 높여

모든 레고의 블록이 서로 호환되도록 설정했다.

물류센터를 통합하고 원재료 거래 업체도 기존의 20%로 줄여 비용을 절감했다.


주 고객층이었던 아이들이 사라지는 현황을 고려, 레고의 고객층을 한층 넓히는 시도도 더욱 활발히 진행됐다. 워너브라더스, 디즈니 등 콘텐츠가 탄탄한 회사들과 계약하여 유명한 IP와 결합한 제품을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기존에 큰 성공을 거뒀던 레고의 스타워즈(1999년), 해리포터(2001년) 시리즈가

상당한 금액을 브랜드 수수료로 지불해야 했던 현실을 고려, 일본의 닌자를 차용한 ‘닌자고’ 등

레고만의 독자적인 시리즈의 개발도 병행했다.


이러한 시도에 힘입어 레고는 가장 기본이 되는 블록산업을 더욱 탄탄히 하며 새로운 성인소비층을 사로잡았다. 레고의 2007년부터의 매출은 12년 연속 증가했으며 2012년에는 ‘해즈브로’를 제치고

바비인형 제조사 ‘마텔’에 이어 세계 2위 완구 업체로 등극했다.



레고_블록_2.jpg 크누스토르프 대표가 생각한 레고의 본질, '블록'



레고는 2017년 스마트폰의 발달로 다시 한 번 위기를 맞았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의 동영상 콘텐츠는 아이들의 장난감에 대한 수요를 크게 낮췄으며

당연히 레고도 큰 타격을 받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레고가 더이상 아이들의 마음을 끌어당기지 못한다는

직설적인 기사를 내며 레고의 전망을 어둡게 바라봤다.


미국의 토이저러스, 마텔 등 유명한 완구와 장난감 회사들도 매출에 큰 타격을 입는 상황에서,

레고는 다시 한 번 반등할 기회를 고심하며 새로운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레고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믿기로 결정했다.

'블록'에 집중하는 대신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기술을 블록에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2019년 닐스 크리스티안센 대표이사는 레고에 증강현실을 접목한 새 시리즈,

'레고 히든사이드'를 출시했다.


'레고 히든사이드'는 레고 조립을 완성한 후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시작하면

조립된 완성품을 기반으로 한 세계에서 일종의 스마트폰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시리즈다.

블록에 집중하되 새로운 기술을 블록의 세계에 맞게 반영한 이 시리즈는 큰 호평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레고는 고객들이 신제품 개발에 직접 참여하는 ‘레고 아이디어스’,

레고의 세계관을 창조하는 ‘레고 월드 빌더’를 만들면서 기존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며

온라인 플랫폼의 강화에도 힘썼다. 이는 코로나 시대를 맞아 소비자들이 실내 놀거리로 레고를 선택한 기조와 맞아 떨어지며 레고의 매출 확대를 다시 한 번 이끌었다.


레고는 이처럼 '블록'이라는 자사만의 핵심적인 가치를 잊지 않고

위기 때마다 그에 맞게 슬기롭게 변형하며 브랜드의 가치와 지속성을 높이는

훌륭한 모범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 4p 예술경영 사례로 보는 브랜드의 '핵심가치' : 간송미술관 (Kansong Art Museum)



'문화보국(文化保國·문화로 나라를 지킨다)'의 정신을 대중과 세계로, 간송미술관(Kansong Art Museum)

스크린샷_2023-03-25_오후_4.01.25.png 간송미술관 (출처: 빅이슈)



서울의 3대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 리움미술관, 호암박물관 중 가장 먼저 설립된 곳은

간송미술관이다. 무려 1938년에 개관하였으며 그 오랜 역사만큼 한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대중의 인지도가 가장 크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는 미술관의 설립자인 간송 전형필 선생의

극적인 삶의 궤도와 무관하지 않다.


간송 전형필 선생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부자 전영기의 장남으로 1906년 태어났다.

전영기는 현재의 종로와 왕십리 등의 서울 일대, 황해도 연안, 경기도 일대, 충남 공주 등의 부지를 소유한

어마어마한 부자였고, 따라서 전형필 선생은 매우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직계 가족들의 죽음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며 여러 책을 모으고 학문을 익히는데 주력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며 이는 이후 '문화재 수집가'로서의 정체성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됐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수탈하던 시기, 전형필 선생은 사재를 털어서 외국으로 유출될 뻔한 우리나라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사들였다. 당시 기와집 20채의 가격을 주고 일본인 수장가로부터 국보 제 68호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사들인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이 외에도 <훈민정음 해례본>을 일제보다 먼저 발견하여 보관하고, 한국전쟁 때도 주요 유물들을 챙기며 피란을 가고 휴전 후에는 후진을 양성하는 데 힘쓰며 우리나라의 문화를 지켜내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전형필 선생은 '서화 전적과 미술품은 조선의 자존심'이기 때문에 수집한다는 뜻을 주변에 밝혔으며

이는 문화를 통해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문화보국'의 정신에 입각한 것이다.

일제가 한국에서 물러나고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문화재를 소중히 여기다 사망한 후에는

그의 후진들이 문화재를 관리하며 '간송미술관'에서 전시와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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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png
청자상감운학문매병과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미술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문화재의 가치는 실로 대단하다.

10점이 넘는 국보급 문화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성을 세계에 알린 <훈민정음 해례본>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 신윤복의 <미인도>

한국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이 소중한 문화유산이 개인의 노력이 아니었으면 지켜지지 못했을 것이다.


대중들도 이 유명세를 익히 알기 때문에 봄과 가을 연 2회마다 2주씩 밖에 열리지 않는 전시 때가 되면

전국에서 몰려든 관람객들로 주변이 북적였다. 애초에 간송미술관은 전시를 목적으로 하는 '미술관'이 아니었으며 (2019년에 미술관 정식등록)

1938년에 개관된 매우 오래되고 규모가 작은 건물이기에 많은 관람객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또한 유물의 훼손을 우려하여 타 전시로 반출하지 않고 내부에서 연구가 지속되다보니

간송미술관의 이미지는 다소 신비주의적인 감이 있었다.


간송미술관 역시 이러한 인식을 깨닫고, '문화보국'의 정신을 대중과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결심을 실천하기 위한 행보를 시작했다. '신비주의를 벗고 대중에 좀 더 가까이, 편안하게 다가가자'라는 목표 아래 2016년 간송미술관은 여러 사업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간송미술관 일대를 '간송문화공원'으로 재개발하고, 상설미술관을 기존의 간송미술관 건물인 '보화각' 옆에 지어 관람객이 간송미술관의 문화유산을 상시 관람할 수 있게 계획한 것이다.


또한 대구에 <대구간송미술관>을 짓기로 결정, 지하 1층에서 지상 3층까지의 규모를 가진 건물을 신설해

전시실 3개, 어린이 미술관, 수장고를 갖춘 전천후 미술관을 새롭게 짓기로 했다.


당시 간송미술관 측은 미술관 확장의 방점을 '해외, 미래 세대 투자'에 찍었다.

전인건 간송미술문화재단 사무국장은 "간송이 주창했던 '문화보국(文化保國·문화로 나라를 지킨다)' 정신은 과거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며 "교육과 경험을 통해서 우리 문화에 대한 사랑을 키우고 정보화 흐름에 맞춰 세계로 우리 문화재를 알리는 게 이 시대의 문화보국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23년 현재 이러한 계획은 여러 수정을 거쳤을지언정 지속적으로 이행되고 있다.

간송미술관은 우선 성북구의 기존 미술관의 수장고 신축으로 오래 전시를 진행하지 못하다가

2022년에 7년만의 정기전시회를 열었으며 이번 전시를 마지막으로 보화각을 개축하여 보강한다.

대구간송미술관은 2023년 하반기 개관을 목표로 현재 공사 중이다.



대구간.jpeg 대구간송미술관 설계공모당선 당시 조감도(출처: 매일신문)



간송미술관은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를 굳건히 지켜낸 훌륭하고도 뜻깊은 미술관이다.

연구와 보존을 중심으로 문화재를 지켜내는 목표를 넘어 우리의 후세를 교육하고

외국으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적극적으로 알리고자 하는 간송미술관의 진취적인 행보가 가능한 것은,

간송 전형필 선생의 '문화보국'의 정신이 단단한 핵심가치이자 정체성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작/기획: 예술도서관 아카데미

글쓴이: YEDO Teaching Artist. SE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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