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로먼 비긴즈>는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연극이다. 연극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연극의 형식과 내용은 원작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잘나가던 세일즈맨이었던 윌리는 나이가 들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하루하루 불안에 떨며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윌리는 성공하지 못한 자신과 두 아들의 불안정한 미래로 인해 괴로움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선택한다. 원작에서는 불안정한 윌리의 심리가 현실과 허상을 넘나드는 형식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윌리로먼 비긴즈>에서는 윌리의 상상 속 세계가 주된 배경이다. 내용적으로는 원작 속 아들 비프와의 찬란했던 순간, 다이아몬드 광산으로 가자는 형 벤,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에게 유혹을 당한 순간, 아들에게 불륜을 들킨 순간 등등 찬란하고도 치욕스러웠던 윌리의 기억들은 자동차를 타고 질주하는 윌리가 마주하는 과거의 파편들로 재구성되어 있다.
바뀐 제목이 꽤나 흥미롭다. ‘세일즈맨’이라는 단어는 주인공의 이름 ‘윌리로먼’으로 특정되어 있고, ‘끝’을 의미하는 ‘죽음’이 ‘시작’을 의미하는 ‘비긴즈’로 바뀌었다. ‘세일즈맨’은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는 20세기 초중반 미국의 남성상을 의미한다. 윌리는 세일즈맨 말고도 아버지, 남편, 형제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정체성은 모두 사회문화적 요구에 의해 형성되었다. 미래의 성공에 대한 윌리의 부푼 희망은 미국 자본주의 사회의 성장 신화에 예속된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새로운 제목은 ‘세일즈맨으로서의 윌리’가 아닌 ‘윌리로서의 윌리’를 제시한다. 즉, ‘윌리 로먼’을 다른 존재로 규정짓지 않고 고유한 개인으로 취급함으로써 사회와 관계 맺는 개인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그만큼 연극은 윌리로먼이라는 인물의 생애와 내면세계를 중점적으로 그려내고 있으며, 윌리의 죽음을 아름다운 순간으로 승화시킨다. 이러한 맥락에서 ‘윌리로먼 비긴즈’라는 제목은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세일즈맨’으로서의 삶을 끝내고 ‘윌리 로먼’으로서의 자유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의미를 전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월리 로먼’은 확장된 의미를 갖게 된다. 현시대의 윌리는 사회의 요구하는 기준을 따라잡고, 또 더 앞서가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들을 상징한다. 우리는 윌리의 여정을 함께하며 타자지향성에서 벗어난, 내 삶의 궁극적 의미와 방향성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된다.
인생은 질주하는 자동차처럼!
극 초반, 윌리와 찰리의 대화가 끝난 후 의자, 책상, 등불, 히터 등등 집 안의 가구들로 한 대의 자동차가 만들어진다. 윌리는 이 자동차를 타고 달려나가는 과정에서 과거의 기억들을 마주한다. 한 사람의 생애를 무대에 올린다고 했을 때 아마 우리는 그 사람이 자신의 삶을 대한 태도를 가장 많이 염두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동차는 윌리로먼의 가치관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소재가 아니었을까. 자동차에겐 의무가 있다. 항상 ‘앞으로’ 달려야 하는 것. 윌리 로먼에게도 목표가 있다. 남들보다 앞서 나가 성공을 쟁취하는 것. 계속해서 페달을 밟아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은 결국 끊임없이 이상을 꿈꾸고 바라는 윌리의 내적 욕망을 형상화한 행위였다. 빠른 속도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숨 가쁘게 질주하던 윌리의 앞에 ‘slow’ 표지판이 다가와 말한다. 표지판은 “때로는 후퇴가 좋을 수도 있답니다.”라고 말하지만, 윌리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원작에서는 버나드가 성공에 집착하는 윌리에게 “하지만 아저씨, 어떤 때는 그냥 벗어나버리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어요”라고 말한 장면에 해당한다.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경쟁주의적인 윌리의 가치관이 잘 드러난 부분이었다.
참을 수 없는 윌리의 열등감
윌리의 모습에는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득바득 살아가는 현대인이 보이기도 한다. 경쟁을 다른 말로 하면 ‘비교를 통한 우열 정리’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비교에는 열등감이라는 감정이 수반된다. 원작에서 윌리는 사장 하워드에게 열등감을 느낀다. 본인은 하워드가 태어났을 때부터 세일즈 일을 했으며, 하워드의 이름을 지어준 것도 바로 자신이라고 말한다. 연극에서는 이 장면이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빌 게이츠 가면을 쓴 세 사람이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씽씽 돌아다니며 윌리를 농락하는 식으로 연출되었다. 너네가 태어났을 때 난 일을 하고 있었다는 윌리의 말에 ceo 삼총사는 시대가 바뀌었다며 코웃음을 치며 약을 올린다. 자동차에 앉아 이도 저도 못하는 윌리의 처지와 이리저리 자유롭게 배회하는 ceo 삼총사의 움직임이 대비되는 이미지를 통해 윌리의 무력함이 효과적으로 부각된다. 이 장면의 이면에는 좁힐 수 없는 빈부의 간극, 출발선이 달라 발생하는 사회적 불평등 문제와 같이 자본주의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가 담겨있다. 출발선의 차이를 극복해낼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시선과 반응이 윌리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조금 더 나아가, 현대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는 운이 좋게 화제에 올라 인플루언서가 되어 떼돈을 버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 ceo를 바라보는 윌리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
기억과 희망의 굴레에서 살아간다는 것
이 지점에서 ‘도대체 돈이 뭐길래, 성공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살까’라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곤 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 존재일까?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과 그 행복을 다시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이 삶의 페달을 움직이는 것이 아닐까. 이는 윌리가 순탄치 않은 현실 속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윌리는 사람들에게 박수갈채를 받으며 성공의 기쁨을 만끽했던 그 순간을 간직했기에 또 다른 성공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공중에 몸을 맡기고 죽음을 맞는 순간, 윌리는 고깔들의 배웅을 받으며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윌리는 죽음을 통해 치욕스럽고 괴로웠던 기억에서 벗어나 현실 저 너머의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 이러한 죽음은 환상동화에 나오는 노래가 나오며 아름답고 신비롭게 표현된다. 또한 연극은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모두 윌리가 환호를 받으며 기뻐하는 수미상관적인 구조를 취한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사람은 가장 빛나던 순간의 모습을 죽을 때까지 회상하고 간직하며 살아간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덧붙여, <윌리로먼 비긴즈>는 앞뒤가 바뀐 연극이다. 첫 장면이 커튼콜이고, 연극이 끝나고 아무도 나와서 인사하지 않는다. 환호 갈채를 받고 빛나는 순간이 있어도 그 끝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삶의 무상감을 느낀 부분이었다.
극단 '성북동 비둘기'와, 고전의 재해석
극단 ‘성북동 비둘기’는 고전 작품을 동시대적인 감각으로 해체하여 새로운 형식으로 표현하는 실험적인 연극을 만드는 단체이다. 김현탁 연출은 내용적 각색보다 새롭고 도발적인 형식의 창조가 고전을 재해석하는 일의 핵심이라 말한다. 이러한 비전은 <윌리로먼 비긴즈>에 등장하는 독특하고 참신한 이미지들로 드러난다. 윌리의 내면 속 인물과 사물들은 검정 쫄쫄이를 입은 배우들의 다양한 변신으로 탄생한다. 빨강, 파랑, 노란색의 캉캉 치마 의상과 춤으로 신호등을 표현하고, 암전 속에서 핸드폰 플래쉬를 키고 돌아다니는 움직임을 통해 어둠 가운데 빛나는 보석을 연상시킨 것, 비프의 축구 경기 중 공의 동선을 배우들의 움직임으로 나타낸 것 등등 귀엽고 흥미로운 연출이 돋보였다. 또한, 관객이 서로 마주 보는 형태의 극장, 스탭이 프리셋을 점검하는 과정이 연극의 한 장면으로 붙어있던 점을 통해 일반 연극과는 달리 실험적인 측면이 강한 특징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가장 센세이셔널했던 연출은 마지막 윌리의 죽음 장면이었다. 와글거리는 고깔들의 배웅을 받으며 하늘로 승천하는 환상 속의 천사 같은 윌리의 모습은 기괴하면서도 신비롭고 아름다운 정서를 전달한다. 죽음을 쓸쓸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등장시키기 않는 연출을 통해 ‘세일즈맨의 죽음’은 ‘윌리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메시지가 잘 전달되었던 것 같다.
<윌리로먼 비긴즈>는 원작<세일즈맨의 죽음>과는 다른 결의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에 원작과 연극을 비교하며 이 작품만의 묘미를 찾아가는 감상을 추천한다. 줄거리만 알아도 연극을 이해하고 즐기는 데에 큰 무리는 없지만, 좀 더 여운이 남는 관람을 하고 싶다면 원작을 읽어보고 가는 것이 좋다.
글: 얘술도서관 에디터 토토
공연만이 가진 매력에 빠져 연극인의 꿈을 꾸게 되었다. 인간과 세계에 대해 맹렬한 비판과 풍자를 던지면서도, 그 세계 속의 인간을 보듬어주고 싶어 하는 따스한 마음을 품고 있다. 다양한 공연과 희곡을 접하고 작품의 의미를 곱씹어 보는 과정을 통해 '어떤 연극을 만들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