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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과학자」 : 국립극단 온라인극장 리뷰

문을 열고 나가자. 비는 내리지만

국립극단 온라인극장 <보존과학자>



왜 보존과학자일까?



부끄럽지만 보존과학자라는 직업을 이 공연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처음 작품 제목을 들었을 때는 작가가 만들어낸 새로운 직업인 줄 알았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원래 보존과학자는 ‘문화재보존과학자’라는 직업에서 영감을 얻었다. 문화재보존과학자는 유물이 창작되고 전수된 역사를 역추적해 원형을 복원하고, 복원된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보존 처리하는 일을 한다. 최근 경복궁 담벼락 낙서 사건으로 인해 문화재보존과학자라는 직업이 주목받기도 했다. 작가는 왜 보존과학자를 선택했을까? 보존과학자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우선 제목이 생소해서 관객들의 호기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같은 해 공연된 <몬순>과 <스고파라갈>역시 생소한 제목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한 작품들이라 판단된다. 바야흐로 스토리와 콘텐츠의 시대에 관객들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늘 새로움이 필요하다. 사람들에게 생소한 보존과학자를 통해서 보존과 복원의 가치, 생산과 파괴의 가치를 논한다는 지점이 흥미로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작가의 창작 과정을 역추적해 본다면 로그라인을 ‘세계의 대재앙 이후 유일하게 살아남은 보존과학자가 유일하게 남은 텔레비전을 복원해가는 과정’으로 정하고 창작을 시작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로그라인 만으로도 춘분이 관객의 관심을 받을 만한 작품이다. 여기에 적절한 사회적 풍자와 미래 세계에 대한 SF 적 상상, 백남준의 미디어아트로 대표되는 예술에 대한 사유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관객들 특히 청년들에게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는 작품을 풍성하고 가치 있게 만들어 준다.


국립극단 창작공감 '작가'시리즈 <보존과학자>리뷰 ⓒ예술도서관



의미의 세계로 향하는 문. 혹은 텔레비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中


공연은 김춘수 시인의 <꽃>을 연상하게 만든다. 그 이유는 아마 이 작품에서 계속해서 언급하는 ‘의미’때문일 것이다. 작품 속 보존과학자는 준비 중인 기획 전시에 출품할 텔레비전이 백남준의 미디어아트의 텔레비전이 아닌 평범한 가정집의 텔레비전이란 사실에 크게 실망한다. 그녀가 원했던 의미가 있는 예술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텔레비전에는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 텔레비전에는 이야기가 있다. 세 딸을 위해서 50년 넘게 일만 해오던 남자는 아내가 죽자 10년 넘게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아내를 찾기 위해 스스로 텔레비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작품의 도입부 부서진 문이 복원되며 작품은 시작된다. 작품의 끝에 가서야 문의 복원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다른 세계와 연결되는 문, 아버지는 어머니와 텔레비전이라는 문으로 연결되었고, 보존과학자와 둘째는 그 텔레비전을 통해 연결되었다. 또 세 딸은 이제 각자의 문을 열고 나아갈 것처럼 보인다. 연극은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지 말고 세상 밖으로 좀 나와라’는 고리타분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텔레비전이라는 문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과 연결될 수 있었다. 흔히들 ‘바보상자’라 부르던 텔레비전은 이제 우리 삶에서 때어놓을 수 없는 물건이다. 곧 모두가 개인 디바이스로 미디어를 시청하는 시대가 도래한다면 이 텔레비전의 보존 여부를 따져야 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을 수 있다. 텔레비전은 우리의 삶에 아주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작품 속 가족처럼 온 가족이 모두 텔레비전 앞에 둘러앉아있던 시절도 있었다. 우리를 울고 웃기는 드라마부터 작품 속 등장하는 ‘걸어서 세계속으로’와 같은 프로그램은 우리를 미지의 다른 공간과 연결시킨다. 텔레비전은 이러한 역할만으로도 그 의미를 가지게 된다.


남자와 세 딸의 삶은 얼핏 보면 실패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좌절스럽기까지 하다. 아버지는 아내를 잃고 계속해서 텔레비전만 보고 있다. 세 딸은 모두 하고 싶은 것이 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서 좌절하는 인물들이다. 특히 첫째는 ‘한번 미끄러진’생활을 다시 일으키고자 아버지에게 손을 벌리러 찾아왔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녀를 만나 주지 않지만 아버지가 남긴 집을 복원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가진다. 대학에서 공부도 오래 하고 현재는 예술을 하고 있는 듯 보이는 둘째는 경제적 현실에 부딪혀 굼을 포기하기 직전인 인물이다. 셋째는 한 번도 오랜 기간 여행을 가본 적이 없고 4수를 해서 겨우 대학에 들어가 일만 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첫째~셋째 순으로 사업가, 예술가, 노동자를 대표하고 있는 인물들처럼 보인다. 우리 주변에 있는 지극히 평범한 세 자매의 고뇌와 고민은 즉각적으로 관객의 그것과 연결된다. 특히 대부분의 연기를 관객석이 있는 정면을 바라보며 함으로써 관객들 개개인의 고민과 인물의 상황을 연결시킨다.


국립극단 창작공감 '작가'시리즈 <보존과학자>리뷰 ⓒ예술도서관



때로는 무겁게, 때로는 가볍게 


작품은 추상적이고 해석이 필요한 무거운 대사와 상대적으로 가볍고 직관적인 대사를 적절히 사용하였다. 보존과학자와 세 전문가들의 대사는 관객이 능동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영역이 반면 세 딸의 대화, 세 딸이 사람들을 만나서 하는 대사들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직관적이다. 이러한 희곡을 연출은 충실히 연출하기 위해 노력한다.


창작공감 ‘작가’시리즈로 선정된 이 작품은 희곡이 무대보다 앞선 공연이다. 그러니 희곡을 무대에서 잘 풀어내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정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이인수 연출은 특유의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연출을 통해서 이 작품을 풀어냈다. 텔레비전의 컬러에서 모티브 한 텔레토비의 색인 노랑, 초록, 빨강, 보라색 옷을 입은 존재들의 움직임은 작품을 역동적으로 만들었다. 또 크게 네 인물씩(1그룹 : 보존과학자, 세 전문가, 2그룹 : 네 가족)으로 이루어진 구성의 장면 배치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조화를 이루었다.


철, 알루미늄, 유리 전문가의 호흡은 작품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대사를 적절히 분배하여 대사의 역동성을 살려주었다. 그리고 여기서 유일하게 인간 존재로 있는 보존과학자는 그 안에서 감정을 풍부히 느끼는 인간 존재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세 딸의 연기 또한 인상 깊었다. 터프하고 강인해 보이지만 때로는 나약해 보이는 첫째와 차분하고 단단해 보였지만 누구보다 방황하고 있던 둘째, 그리고 감정적이면서 행동파인 셋째까지 적절한 밸런스로 작품의 리듬감을 극대화한다. 또 첫째가 붉은 조명을 받으며 마이크에 대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장면과 관객들에게 강조하여 전하고 싶은 대사를 배우들이 조금 더 힘을 주어 강하게 발화하는 방법을 통해 작품은 주요한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텔레비전이 노래를 부르고 다 함께 추는 춤은 연극의 상상력이 가장 극대화되는 장면이자 해소를 위한 의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간혹 연극계의 트렌드라는 이유로 랩 도는 노래를 목적 없이 무대에 투입하는 경우가 있고, 대게 그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보존과학자>는 비바람과 모래폭풍의 대재앙의 시대에서도 의미를 찾아 나서기로 결정한 사람들에 대한 응원과 그들의 희망찬 앞날을 밝혀주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국립극단 창작공감 '작가'시리즈 <보존과학자>리뷰 ⓒ예술도서관



파괴 뒤에는 새로운 시작이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소위 과잉의 시대이다. 재화도 데이터도 과잉된 사회에 우리는 이제 줄여나갈 필요를 체감하는 시대이다. 한때 ‘미니멀라이프’기 유행하기도 했다. 필요 없는 물건들을 없애고 정말로 내 삶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재화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작품 속 아버지처럼 아버지 세대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어갔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처럼 편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거기에 따른 부작용도 있었다. 이제는 우리 차례다.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부술지 선택해야 한다. 무엇을 보존하고 무엇을 파괴할지에 대한 가치판단의 시기이다.


작품에서는 계속해서 ‘오늘’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도대체 그들은 어떤 특정한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그날은 또다시 재앙이 다가오는 날이었다. 아마도 이 이 반복되는 오늘에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 다가올 대재앙, 그리고 매일 반복되고 있는 재앙들이 있다. 환경은 점점 더 파괴되고 전쟁과 내전 속에서 세계는 점점 황폐해져간다. 당장 오늘이라도 찾아올지 모르는 재앙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작품은 여기에 대한 답으로 당장 문을 열고 나가라고 이야기한다. 둘째의 손에 의해 아버지의 방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진 텔레비전은 보존과학자들에 의해 천년 가까이 보존된다. ‘문을 열고 나가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라’ 이야기는 자원도 에너지도 들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를 계속해서 의미들로 채우라고 얘기하는 것 같다. 엄청 대단하지 않더라도 아주 작은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작은 이야기는 결국 다른 사람들의 해석으로 인해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종합해 보자면 이 작품은 희곡 자체로도 훌륭하였으며 감각적인 연출을 통해 제대로 무대에 살아난 연극이다. 또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기후 위기를 비롯한 여러 재앙으로 인해 언제 사라져버릴지 모르는 물건들과 나아가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모든 것이 사라져도 남게 될 의미는 무엇일까?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비바람이 부는 문밖을 열고 나가 사람들을 만나자. 서로가 있어야 의미도 생기는 것이니깐.




제작/기획: 예술도서관 아카데미 

글쓴이: 예술도서관 DO 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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