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인문극장 2025 LOCAL:지역
연극 '엔들링스'는 사라지는 고향에 대한 이야기이자, 동시에 사라지는 소속감에 대한 이야기다. 이것은 단순히 특정 장소나 사람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상실과 변화,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아일랜드 오브 만재, 만재도에는 세 명의 엔들링스가 존재하는데, 그들은 바로 마지막 해녀들이다. '엔들링(Endling)'은 한 종의 마지막 생존 개체를 의미하며, '최후의 생존자'로 이해된다. 세계 최후의 해녀 3인방과 지구 반대편 맨하탄 섬의 극작가 셀린 송의 이야기가 공존하며, 이 극은 지역의 정체성과 '누가 우리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 이야기는 이민자들에게 이민의 나라가 얼마나 친절하지 않은지를 보여준다. 이민을 가면 개인이 만들고 지녀온 요소들이 거부당하고, 자신의 정체성, 언어, 습관들이 고쳐야 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변모한다. 그곳에서 얼마나 오래 살아왔어도 피부색으로 소속 유무를 판단하고, 숨길 수 없는 요인으로 인해 낯선 사람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세상의 문제들은 하영을 통해 드러난다. 자신의 피부색을 팔고서라도 인정받고 소속되려는 욕망은 타인에게 인정받아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하영을 보여주며, 이 이야기가 생존의 문제임을 강조한다.
"다들 대가를 내고 이 공연을 보러 왔죠. 이건 일종의 이민이죠."
극 속 대사처럼, 사실 이민은 우리 삶에 만연해 있다. 우리는 이민이라는 것을 낯설고 생소하며 쉽지 않은 것으로 여기지만, 우리는 한 번쯤 이민의 경험을 지니고 살아간다. 이사, 전학, 유학, 이직 등 그 모양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다만 이 생경한 감각은 시간이 지나 무뎌지곤 한다. 반면에 이는 나를 둘러싼 문화권과 인종 다양성이 달라지면 평생을 그 속에서 공전해야 한다. 그렇기에 이민자는 소외되고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삶을 살며 언제나, 어쩌면 평생을 소속되지 못할 삶을 산다. 그렇게 이민자가 된다는 것은 소속의 비용을 지불하게 됨과 유사하다. 이 말은 동시에 우리가 평생을 이민자로서 살아간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이 이야기는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이민자’라고 말하고 있다.
이야기는 결국 해녀 한솔의 영혼이 하영에게 자신을 데려가라고 액자를 넘기며 마무리된다. 그들의 기억은 하영의 또 다른 고향으로 남겨지고 우리의 고향으로 확장된다. 그들이 섬 도시를 떠나 넓은 세상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들을 기억해 줄 사람은 이제 없다며 말하지만, 관객이 그들을 본다. 관객은 이 순간과 만재도, 그리고 그 위에 쌓인 삶들을 기억할 것이다. 관객은 극장 속 만재도라는 지역에 신체를 닿게 했다. 이 경우뿐만 아니라 지역의 모든 순간은 신체에 남는다. 지역은 그곳에 머무르는 존재들에게 뿌리내리며 인간은 그 지역 자체가 된다. 그렇기에 이민은 지역의 확장과 같다. 지역의 일부인 사람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며 원래 지역으로부터 얻은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이러한 확장은 대체가 아닌 조화와 결합의 모양을 만든다. 결국 이 극은 우리 속 나는 누구이며 나는 어떤 '우리'인가 고민하게 만드는 극이다. 이 공연으로부터 생산되는 고민은 세상의 변화가 빨라지는 속에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으며, 고민의 기포는 많아지고 소란스러운 소리를 낸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와 생명을 알리고 있다. 지금 여기 분명히 존재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연극 '엔들링스'는 연출적인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공연 시작 전, 무대감독 역할을 맡은 인물들이 영어로 안내사항을 전달하는데, 이때 관객은 낯선 감각을 체험하게 된다. 이는 마치 이민자가 새로운 환경에서 처음 생활하며 느끼는 생소함을 관객도 느끼게 하는 듯했다. 극장 밖에서 일상생활을 하던 관객을 극 속으로 잠시 '이민' 오게 만드는 연출 기법이다.
이 공연은 배리어프리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시도를 한다. 음성소개, 휠체어석, 안내보행, 문자 소통 등 접근성 강화를 운영한다. 그중 문자 소통은 나머지 사항과 달리 추가 요청 없이 극 중 요소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 이러한 접근성 강화는 극 속 인물들을 위로하며, 외부 세상 속 시선 밖에 놓여진 존재와 나아가는 순간을 제공한다. 그들의 목소리를 더 명확하게 전달하게 하며, 연극의 말이 가지는 특유의 감각을 이미지로 제공한다. 이 연출은 인물과 연극의 메시지, 그리고 기억들을 더욱 극대화한다. 또한 인물들이 세상을 점유하는 정도를 글자 크기로 나타내기도 한다. 다양한 글씨체와 크기, 색깔은 관객이 놓치기 쉽거나 구분하기 어려워하는 묘한 말의 느낌을 구체화하며, 바닷가 소리, 복잡한 도시의 소리 등을 간단한 이미지로 치환해서 화면에 그려내는 요소들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전달하는 중요한 장치였다.
물질 연출도 인상적이다. 해녀들이 입수할 때, '풍당' 소리와 함께 흰 배경을 쏘는 조명이 푸른색으로 바뀌고, 이어지는 배경음향은 먹먹한 물속 소리가 사용된다. 해산물을 손 인형으로 만들어 해산물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디테일도 있었다. 배우의 움직임으로 물속을 연출하고 동선을 길게 잡아 장소의 전환을 보여주는 방식도 사용되었다.
정감 있는 해녀 할머니들의 대화는 극 속 리얼리즘을 강조하며, 관객은 이 극이 다른 차원의 현실이라 믿게 된다. 하지만 연출은 이 이야기가 우리와 상관없는 '외딴' 공간이 아님을 낯설게 하기를 통해 표현한다. 고립된 한국 시골의 해녀인 한솔이 '할리우드는 영원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환상성을 강조하는 연출이다. 테이프 감는 소리와 뒷배경에 나타나는 '빨리 감기' 글자, 그리고 배우들의 빠른 움직임으로 빨리 감기를 연출하는 방식도 흥미로웠다. 세 배우가 동시에 리모컨을 들거나 약을 먹는 동작들을 하여 세 해녀의 일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깜박이는 불빛으로 텔레비전을 표현하는 방식도 사용되었다. 한국의 할머니인 '고민'이 나와서 나를 맨하탄으로 데려가라고 말하며 어색함을 만들고, 이어도 노래를 들려주어 관객이 한 문화를 체험하게 하는 시도도 있었다. 배경음향은 극 속 상황을 구체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타 인종을 글자로 나타내는 연출도 있었는데, 백인 남편의 경우 팻말을 이용해 표현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유색인종은 옷 색깔의 유무로 표현했다. 세 할머니와 하영은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등 색깔을 지닌 옷을 입지만, 하영의 색은 주황 양말로만 드러난다. 무채색 옷을 입는 하영이 주황 양말을 신는 것은 그가 세계 안에 온전히 소속되지 않음을 나타내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세 해녀를 닮은 인형들을 배우가 조종하기도 했다.
뉴욕으로의 전환 연출도 흥미로웠다. 해녀들이 모두 퇴장한 후 뉴욕을 떠올리게 하는 팝 노래가 나오고, 파도를 나타내는 소품을 제거하고 해녀들의 물건들도 치운다. 집을 나타내던 대가구를 뒤집어 뒤에 있는 판을 펼치고 올려서 고정하는 식으로 공간을 변모시킨다. 양 기둥에 도시 불빛을 형상화한 조명이 사용되고, 무대 위 조명은 무채색으로만 구성되었다. 그리고 공연을 시작하며 치워놓았던 검정 커튼을 다시 치면서 공간의 구성을 지우는 듯한 연출이 있었다.
백인 연극 장면의 연출 또한 강렬했다. 객석 불이 꺼지고 하영과 그의 남편만이 주황빛으로 강조된다. 포그가 나오고 하얀 조명을 쏜 후, 백인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등장한다. 대부분의 관객은 하영을 보지 못하고 계속 호응을 유도하며 백인들을 표상하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인물에 집중한다. 무채색의 조명은 하영의 시점에서 아무런 감흥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보여주며, 편향된 입장에서 보게 해 관객이 백인 다수자의 입장이 되게 유도한다. 하지만 하영을 비추는 강렬한 주황빛은 자신이 존재함을 강조한다. 다만, 모든 상황은 하영의 움직임과 눈빛을 보지 못하게 만들어 관객이 별거 아닌 것에 웃고 박수를 치도록 유도한다. 두 무대 위 배우들의 역동적인 행위는 관객에게 빈 감정과 거짓된 감정의 허황을 느끼게 하며, 감정과 사유가 아닌 의미 없는 말을 반복하는 텅 빈 공허한 소리침으로만 들린다. 대부분의 단어를 '하얀, 백인'으로 말하며 백인 중심적인 사회에서 유색인종으로서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연출이었다. 하영을 비추는 주황색 조명은 정적이고 느리지만 뜨거운 감정을 뿜어냈고, 관객은 이 극장 속 하영이 소수자이며 외톨이임을 깨닫는다.
무대 자체도 중요한 연출 요소였다. 앞쪽에는 큰 두 개의 기둥이 있어 인물들이 기대거나 숨을 수 있었고, 사각기둥과 중앙에는 해변의 바위를 떠올리게 하는 구조체인 단이 있었다. 나중에 이 단들 사이에 끼워져 있던 파도 모양의 소품을 치우면 색채란 존재치 않는 도시를 표상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이 단들은 상당히 각져 있어 날카로워 보였지만, 세 해녀 3인방이 있을 때는 그렇지 않아 보였다. 둥근 인간미 있는 마모된 도구들이 그 자리를 채웠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둥근 인간의 생명력이 이곳을 채운 것이다. 그것들이 걷어지니 더 공허해 보이고 외로워 보이며 날카롭고 인정없어 보였다. 무대, 앞 무대가 있고, 객석으로 들어오는 통로도 무대가 되며, 나중에는 객석조차 객석에 들어오는 인물을 위한 무대가 된다. 무대가 공간 전체인 것이 기억에 남았다. 객석을 두르는 철망은 그물을 연상시키는 무대 디자인 요소였다. 이곳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공간으로, 우리는 바다가 되기도 하고 객석이 되기도 하며 도시의 불빛이 되고, 백인 대중이 되고, 지하철의 시민이 되기도 한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대중을 상징하며, 우리 관객이 스스로를 공연의 창조자가 되며 공연의 일부로 만들게 한다. 그 모든 것이 관객이 되는 것이다. 관객이 바라보는 객체가 아닌 존재로 공연을 완성하는 주체가 되게 하는 연출이었다.
이것은 나에게 사라지는 고향에 대한 이야기이자, 사라지는 소속감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특히 나의 경우 이사를 많이 다닌 탓에 고향이 많아 더욱 그렇다. 해녀들의 일상적 행위인 '물질'을 준비하는 장면을 보며, 하영이 '해녀들'과 그들의 역사, 그리고 물질 도구를 소개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 도구 중 기억에 남는 것은 테왁이었는데,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사용하며 옛날에는 박으로 만들었다가 현재는 스티로폼을 사용한다는 설명이 있었다. 고립된 섬에서 생명력을 뿜어내는 해녀들을 상징하는 물건처럼 보였다. 그들의 작업복도 소개했는데, 예전에는 얇은 천이 다였지만 이제는 잠수복을 입는다고 했다. 이 설명이 나오며 해녀들이 작업복을 입는 모습이 내 눈앞에 펼쳐졌고, 서로를 도우며 옷 위에 옷을 덧입는 모습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하영이 지하철에 앉고 해녀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한솔은 생선을 빠르게 손질하고 고민은 숨을 길게 참으며 순자는 춤을 춘다. 그리고 돌아다니며 돈을 받는데, 관객인 나도 지하철 속 시민이 되어 통에 돈을 넣는 움직임을 하는 장면에 참여하게 되었다. 매일 일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돈이 없었던 그들을 위로하는 장면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뉴욕 지하철 속 자유로운 영혼들에 빙의하여 자유로운 삶을 누렸고, 노래하고 박수받으며 그들의 능력을 인정받는 모습이 나에게는 그들이 박수받을 만하고 충분히 그러하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느껴졌다. 남들과 다름이 결함이 아닌 장점으로 느껴지도록 유도하는 극의 방식이 좋았다.
문화가 그렇듯 정체성도 변화하며 고정적이지 않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정체성이란 쌓아가는 것이고, 복합적이며 선별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미국에 사는 하영처럼 정체성은 여러 경험과 시간, 장소가 모여 만들어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정체성은 여러 기억을 재결합하고 선택하며 정체성의 성장을 이끈다. 뇌는 경험을 선택하고 몸은 기억을 담으며, 그렇게 우리에겐 지역이 남는다. 그리고 그 지역은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도 우리 안에 남아있다. 지역의 상실은 정체성을 구성하는 골조의 무너짐과 같다는 비유가 생각난다. 지역은 삶을 이어주는 뼈대와 같으며 단일된 기억들을 이어주기 때문이다. 지역을 잃는다는 것은 자신의 서사를 설명해 주는 안내서를 잃어버린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다만 지역은 복합적이다. 항상 좋은 감정만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세 해녀들의 모습과 일상에서도 드러났다. 벗어나고 싶고 구속된 감정을 느끼게 하며 고통을 겪는 장소, 익숙함으로부터 오는 공포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 극의 작가인 셀린 송이 어린 시절 이민을 경험하고 한국 이름 '하영'에서 영어권 이름 '셀린'으로 바꾼 이야기가 극 속 하영의 모습과 연결되며 더욱 와닿았다. 극 속 하영이 관객에게 말을 건넬 때, 나는 내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 혼란을 겪으며 이 이야기가 환상인지 아니면 현실의 이야기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백인 연극 장면에서는 불편함과 내적 웃음이 동시에 일어났다. 하영과 남편이 1열에 앉아 백인 배우들이 백인 찬양 내용으로 보이는 연극을 하는 것을 보며, 뉴욕 평론단의 좋은 평가 때문에 '좋은 연극'일 것이라 말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권위에 맹목적인 사람들을 비판하는 극의 의도를 읽었다. 베이컨이 말한 '극장의 우상'이 떠오르는 지점으로, 수정과 비판을 필요로 하는 권위와 사상에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행태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결국 이 극은 나에게 우리 속 나는 누구이며 나는 어떤 '우리'인가 고민하게 만드는 극이었다. 다양한 이주를 경험했고 앞으로 경험할 어린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 극이기도 했다. 수많은 지역을 담아 갈 나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이외에도 공연으로부터 생산되는 정체성과 이민, 소속감, 지역과 고립 등 다양한 고민들은 세상의 변화가 빨라지는 속에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으며, 이런 고민의 기포는 많아지고 소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와 생명을 알리고 있다. 지금 여기 분명히 존재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나 역시 깊이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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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획: 예술도서관 아카데미
글쓴이: 예술도서관 온라인청바지
뮤지컬로 공연 세계에 빠졌다가 지금은 연극 속을 유영하고 있다. 뮤지컬, 연극 뿐만 아니라 공연예술 전반에 관심이 있으며 공연으로부터 시작된 상상은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관객이 '오늘'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싶고 이 마음이 오늘의 자신을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