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의 눈으로 바라보는 인문학
연출가의 눈으로 바라보는 <인문학 : 하마르티아(hamartia)>
하마르티아는 비극적 결함을 뜻하는 단어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사용된 용어로 ‘과녁을 빗나가다’(hamartanein)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비극에 있어 모든 면에서 뛰어난 주인공이 지닌 결함 또는 과오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작품을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을 들 수 있습니다. 오이디푸스왕은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를 아내로 취할 것’이라는 신탁을 통해 듣게되는 운명을 피하기 위해 오이디푸스왕의 부모들은 이를 피하려 노력했지만 그들과 오이디피푸스는 그 운명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즉 자신의 의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들이 아버지와 어머니인지 모르는 ‘무지’의 상태에서 비롯된 도덕적인 과오가 하마르티아 입니다. 이로 인해 주인공이 의도치 않은 악행을 통해서 관객들은 연민과 공포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됩니다.
“모르고 행하였다가 행한 뒤에야 알게 되는 경우” 쉽게 말해 “알고보니 00이었다.”의 효과인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오이디푸스의 급한 성격적 결함이 그런 운명을 초래한 것이 아니냐는 물음도 있습니다. 가령 세갈래 길에서 끝까지 화를 참고 도적단과 아버지(죽일 당시에는 아버지 임을 몰랐던)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운명을 피해갈 수도 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그러한 오이디푸스의 성격 또한 하마르티아를 만들어 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며 모든 것은 그렇게 되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오이디푸스가 세갈래 길에서 아버지를 죽일 수 없을 만큼 약한 인물이고 스핑크스의 문제를 풀지 못할 만큼 지혜로운 인물이 아니었다면 모든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하마르티아에 도달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재미없는 글’이 되는 것입니다
현대의 작품들 중에서 이러한 하마르티아 ‘플롯’을 살려 만들어낸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박찬욱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입니다.
------------ 여기서부터는 영화 <올드보이>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구냐 넌?”이라는 명대사로 유명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김우진(유지태)가 주인공 오대수(최민식)에게 학창시절 당했던 복수를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오대수를 15년동안 감금합니다. 대수는 우진에게서 풀려난 후 자신을 납치한 사람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추적을 합니다. 이 때 한 일식당에서 ‘미도(강혜정)’을 만나게 되고 둘은 사랑에 빠집니다. 우진은 일부러 대수의 앞에 나타나고 사실은 대수가 사랑한 미도가 대수의 친딸이었음을 밝힙니다. 대수는 이 사실을 미도에게 말하지 않기 위해 결국 자신의 혀를 가위로 스스로 자르게 됩니다. (자르게 되는 것 역시 하마르티아의 일부라 생각하기 때문에 ‘자르게 된다’는 수동적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이 내용을 보면 <오이디푸스왕>과 여러 부분에서 닮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비극과 고전을 통해서 얻어낸 스토리를 기반으로 현대적으로 해석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기에 비극과 고전을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글/제작 예술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