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배우는 인문학 : 페르소나

연출가의 눈으로 바라보는 인문학


“저기 저 사람 대체 무슨 인물이야?”


수천 석 규모의 거대한 그리스 극장. 천장도 조명도 없는 넓은 야외극장에서도 제일 끝줄에 앉아있는 관객에게 감정이입을 해봅시다. 과연 이 관객은 무대 위의 배우들이 각각 어떤 배역을 맡아서 연기하고 있는지 일일이 구분할 수 있을까요? 배우의 연기가 아무리 뛰어나도 무대와 좌석 간의 물리적인 거리를 고려하면 쉽지 않아 보입니다.


클로즈업 기능이 있는 카메라나 멀리서도 섬세한 연기를 관찰할 수 있는 오페라글래스가 발명되기 전, 그리스 시대의 비극 배우들은 커다란 가면을 쓰고 연기를 했습니다. 극장의 모든 사람들에게 무대에 어떤 인물이 등장해 있는지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얼굴보다 훨씬 커다란 가면과 온몸을 덮는 망토, 굽 높은 신발 때문에 관객들은 배우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덕에 배우들은 가면을 바꿔가며 자유자재로 1인 다역을 연기할 수 있었습니다.


“평생 가면을 쓰고 산다고?”


당시 배우들이 착용했던 바로 이 가면의 이름은 ‘페르소나’입니다. 그리스 비극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오늘날 영화나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각기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중 우리가 살펴볼 것은 심리학 개념으로서의 ‘페르소나’입니다.


모든 사람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변형시킵니다. 학교에 적응하기 위해서 학생으로서의 나, 반장로서의 나를 적당히 연출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방에서 혼자 뒹굴거릴 때의 모습을 그대로 학교 교무실에서 보여준다면 아마 큰일이 나겠죠? 이처럼 심리학 개념으로서의 ‘페르소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쓰는 보이지 않는 가면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상황에 따라 수천 수백 개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라면, 과연 ‘진짜 얼굴’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이 인물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배우와 연출을 막론하고, 인물을 분석할 때 우리는 위와 같은 어려운 고민에 빠집니다. 그러나 연출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희곡 속 대사와 지문 뿐입니다. 즉, 한 인물이 다른 인물들에게 보여주는 수많은 ‘페르소나’들을 이리저리 파헤쳐 그 속에 숨어있는 ‘진짜 얼굴’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연출입시를 준비하면서 반드시 공부해야 할 작품 <햄릿>속 햄릿은 페르소나와 진짜 얼굴을 구분하지 못하고 오해 속에서 괴로워하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햄릿은 죽은 남편의 동생과 결혼한 뒤 공식적인 자리에서 미소를 띠고 있는 어머니를 보며 분노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 모습이 어머니 거투르트의 진짜 모습이었을까요? 바로 이 지점에서 배우와 연출가의 상상력이 시작됩니다.


“보이는 것을 믿지 마세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이는 것을 믿지 마세요.’ 인물의 진짜 얼굴은 겉으로 보여지는 대사와 지문 이면에 있습니다. 인물이 보여주는 수많은 ‘페르소나’는 견고한 가면이 아니라 살짝살짝 본모습을 드러내는 얇은 커튼과 같습니다. 그 속을 파고 들어가는 것이 배우와 연출가의 일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진짜 얼굴’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마치 내가 누구냐는 질문에 한 마디로 정답을 말할 수 없는 것처럼요. 하지만 늘 염두에 두세요.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 꼭 거짓말은 아닐 수 있지만,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요.




글/제작 예술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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