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경영가의 눈으로 바라본 시선
사라질 존재를 불멸의 존재로 만드는 사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도 볼라르만큼 자신의 초상화를 많이 갖지는 못했다. 화가들은 그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었다.”_피카소
세잔, 피카소, 마티스는 현대미술의 3대 거장이라 불리는 유명한 화가들입니다. 이 셋을 빼놓고는 현대 미술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굵직한 작품들을 남겼죠. 지금에서야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로 평가받지만, 당시에는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위험한 그림을 그리는 이상한 사람들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미술계는 대상의 형태를 얼마나 이상적으로 재현하느냐가 그림의 완성도와 가치를 좌우했기 때문에 인상주의, 입체파, 야수파와 같이 작가의 주관대로 대상을 재해석하여 그리는 새로운 실험들은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그들의 그림은 너무 파격적이었고 가치가 없는 미완성에 불과했습니다. 이랬던 이들이 지금의 위상을 갖게 된 데에는 당시 유럽 최고의 화상이었던 앙부르아즈 볼라르(1867~1939)의 역할이 큽니다.
세간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볼라르는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꾸준히 사들입니다. 좋은 그림을 알아보는 안목을 갖고 있었던 것이죠. 동료 화상이나 수집가, 화가들에게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비교적 싼 값에 사들인 후, 이를 대범하고 안목 있는 고객을 찾아 이를 비싼 값에 되팔았습니다. 덕분에 볼라르가 관리하는 화가들은 그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에 예술활동에 몰두할 수 있었고 인상파 화가들은 명성을 얻기 시작합니다.
볼라르는 당시 무명의 화가였던 세잔, 피카소, 마티스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그들의 첫 개인전을 열어주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전시회가 호평을 얻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그림은 시대를 앞서간 것이었기에 비평가들의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결국 미술사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습니다. 볼라르의 지속적인 후원 덕분에 세잔의 두 번째 전시는 현대미술의 전환점이자 젊은 작가들의 영감의 대상이 되었고, 세잔의 뒤를 이어 피카소라는 천재 화가를 발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볼라르의 역할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가망 있는 화가의 작품을 구매하고 후원하여 그들이 작품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만약 볼라르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세잔, 마티스, 피카소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지금처럼 유명한 화가로 남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예술경영은 예술가가 관객과 만나도록 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예술 시장의 공급과 수요를 연계해주어야 합니다. 에술경영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용호성 선생님의 <예술경영>이라는 책에는 예술경영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 예술작품의 창작자와 수용자 혹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예술경영인이 주체적 역할로 등장한 것이다. 예술시장에서 예술경영인이 맡은 해석자의 역할은 곧 예술가를 곧 예술가를 발굴하고, 돋보이게 하며, 사장시킬 수 있는 권한을 의미했다. 작품 선택과 작품 전달 방법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해석자가 예술가 이상으로 예술 창작과 수용에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공연 분야의 흥행사, 전시회의 기획자, 도서관 사서, 연극이나 오페라의 프로듀서 등 다양한 사람들이 더욱 적극적인 해석자의 역할을 하면서 전면으로 나서게 되었다. 이런 해석자의 역할은 20세기에 들어와 더욱 커졌고, 이제는 확장된 예술가의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위 책에서는 예술경영자의 역할을 ‘적극적인 해석자’로 보고 있습니다. 예술작품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극대화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것이죠. 정리해보면 예술경영은 좋은 작품을 발굴하고 이를 부각함으로써 (해석자) 관객들에게 전달해주는 (매개자)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좋은 안목을 기르는 것입니다. 만약 좋은 예술작품을 만나도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거나, 작품의 본래 가치보다 훨씬 큰돈을 투자하게 된다면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볼라르와 피카소가 처음 만났을 당시 피카소의 나이는 겨우 19살이었다고 하니, 볼라르의 안목과 기획력이 더욱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볼라르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볼라르는 파리에서 열린 살롱 도톤느(가을 전시회)에서 앙드레 드랭(1880-1954)의 그림에 이끌립니다. 드랭의 천재성을 알아본 볼라르는 드랭에게 런던의 풍경을 그림으로 남겨달라는 의뢰를 합니다. 단, 단순한 풍경화가 아닌 새로운 시대를 그려달라는 조건을 걸었죠. 볼라르의 의뢰를 받은 드랭은 자신만의 시각으로 20세기의 시작을 알리는 <빅벤>을 완성합니다. 속도를 내며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현재와 미래의 찬란한 기대가 녹아 있는 이 작품은 야수파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여태껏 런던은 많은 화가들이 예쁜 그림을 그리기에 제격인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드랭에게 ‘새로운 시대’를 그려달라는 주문을 했다. 무섭게 변해가던 런던의 모습이 드랭의 손으로는 어떻게 표현될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_앙부르아즈 볼라르
예술은 시대를 반영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어야 합니다.그리고 예술경영자는 그런 예술의 방향성을 제시해야 합니다. 예술경영자는 예술이 올바른 시대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주어야 하죠. 만약 볼라르가 ‘새로운 시대’라는 방향성을 제시해주지 않았다면 20세기의 시대상을 담은 걸작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볼라르는 마케터이자, 사업가이자. 예술가들을 케어하는 관리자이자, 기획자였습니다. 비록 예술경영이라는 단어가 없던 시절에 활동했지만, 최고의 예술경영자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 예술경영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온 사람입니다. 그가 이와 같은 업적들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예술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예술가들을 향한 애정과 관심에 대한 보답으로 화가들은 그의 초상화를 그려주었고, 덕분에 그는 어느 어여쁜 여인보다도 가장 많은 초상화를 갖게 되었죠. 그는 화가와 작품을 사람들의 기억에서 영원히 잊히지 않을 불멸의 존재로 거듭나게 했고, 화가들은 그를 그림 속에 담음으로써 볼라르를 불멸의 존재로 남겼습니다.
만약 볼라르가 미술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없이 상업적으로 접근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자그마한 어려움이 생겼을 때 쉽게 포기해버렸을 것입니다. 세잔의 첫 번째 전시가 실패로 끝났을 때도 볼라르는 미술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천재 화가를 어떻게든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욕망과 애정 때문에 두 번째 전시를 기획할 수 있었습니다.결국 예술에 대한 사랑,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한 관심이야말로 예술경영의 본질이자 원동력이 아닐까요.
제작/글: 예술도서관 이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