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희곡읽기 시리즈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지금까지 희곡의 외적 요소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는데 잘 따라오고 계신가요? 1편에서는 희곡의 얼굴인 <제목>의 역할과 기능을 살펴보았습니다. 2편에서는 <등장인물>과의 첫만남에서 알 수 있는 정보들에 관해 다뤘습니다. 3편에서는 <막과 장>의 개념과 함께 가장 보편적인 극구조인 ‘3막 구성’이 무엇인지 훑어보았습니다. 4편에서는 연극의 <대사>를 일상의 ‘말’과 비교해서 살펴본 뒤 ‘서브텍스트’ 개념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무대지시문 -연출가와 디자이너, 배우들을 위한 길잡이”
희곡에서 지난 시간까지 다룬 기본 요소들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이 무엇일까요? 인물의 행동이나 무대 묘사 등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제외한 모든 부분을 우리는 ‘무대지시문’이라고 부릅니다. 첫 대사가 나오기 직전,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에 대해서, 혹은 날씨나 조명처럼 그 순간의 분위기에 대해서 설명해놓은 부분을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무대지시문은 극의 시공간과 분위기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연출가나 디자이너들은 그런 설명을 읽으면서 어떤 식으로 무대를 만들지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한편 대사 사이사이 ( ) 표시 속에서 인물의 행동이나 변화를 설명하는 부분도 익숙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무대지시문은 배우들이 인물의 감정 변화나 서브텍스트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힌트가 되어줍니다. 때로는 작은 행동이 백 마디의 말보다 많은 것을 드러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작은 무대지시문도 놓치지 말고 단서로 활용해보세요!
이렇게 대사와는 다른 종류의 정보를 주는 중요한 무대지시문. 그러나 희곡의 장르나 집필 시기에 따라 무대지시문의 양과 질은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사실주의 희곡은 인물의 작은 행동부터 무대의 사소한 소품까지 모두 지시해놓은 반면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는 세부적인 무대지시문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을 통해 그 차이를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후자는 창작자들이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만 전자는 희곡에서 이미 정해놓은 부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작품은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대지시문이 담고 있는 정보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무작정 나만의 새로운 해석부터 시작하는 것은 희곡을 잘못 이해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무대지시문을 대하는 3가지 방법 –공간을 중심으로”
그렇다면 어떤 자세로 무대지시문을 읽어야 할까요? 특히 희곡 초반에 무대배경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기술해놓은 경우에는 작가의 설명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까요? 살짝 아래로 내려가서 미니워크샵의 예시를 보고 옵시다! 예시와 같은 자세한 무대지시문을 접할 때는 세부 설명 하나하나를 모두 구현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신, 그 안에서 ‘중요한 의미’를 찾아내야 합니다. 즉 각 세부사항들을 하나로 모아줄 수 있는 공간의 핵심 의미를 뽑아내는 것입니다. 예시에서 나열된 디테일한 집 구조와 수많은 서적들에서는, ‘부유하고 지적인 집안의 분위기’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뽑아내서 간결하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희곡에 따라 날씨, 빛 묘사 등을 통해 시공간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중요 정보를 간결하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공간 자체에 대한 핵심 의미와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누가 이곳에 살았는가(과거)’와 ‘누가 이곳에 살고 있는가(현재)’입니다. 공간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특성에 따라 변화합니다. 곳곳에 사치스러운 가구들이 가득하지만 먼지가 쌓이고 낡은 공간에서는 무엇을 유추할 수 있을까요? 아마 과거에는 돈이 많고 꾸미기를 좋아하고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사람이 살았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에는 아마 집 관리에 무관심하거나 가난해서 관리할만한 능력이 없는 사람이 살고 있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일지, 혹은 서로 관련 없는 사람들일지는 대본을 끝까지 읽으며 채워나갈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극이 진행되며 이 공간이 어떻게 변화할지 상상해보는 것입니다. 희곡을 읽어나가며 시공간을 따라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머릿속에 그려보세요. 끝까지 완독한 후에는 첫 장면의 무대지시문을 다시 읽으며 마지막 장면과 비교해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입니다. 모든 시공간의 변화는 인물의 변화와 함께한다는 것도 염두에 두세요! 똑같은 공간이지만 인물의 관계가 달라지며 완전 새로운 의미의 공간으로 변화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공간은 달라졌지만 인물의 관계는 더 굳건해지며 주제를 드러낼 수도 있습니다.
여기까지 희곡의 5가지 외적 요소를 알아보았습니다. 희곡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감을 잡으셨나요? 그렇다면 이제는 더 심층적인 분석을 시작할 단계입니다. 희곡을 파고들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재미를 여러분들도 느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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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워크샵>
*아래는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 제1막의 무대지시문 중 일부입니다.
1. 내용을 찬찬히 읽으며 내가 뽑아낼 수 있는 중요한 ‘의미’는 무엇일지 정리해봅니다.
ex) 이 공간은 00한 특징이 있다. 이 공간에는 00한 사람들이 드나들 것이다. 이 공간의 주인은 00한 사람(들)일 것이다.
2.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소품이나 설명을 정리해봅니다.
ex) 셰익스피어의 초상화 등
3. 위의 2가지를 결합해서 어떤 무대를 만들면 좋을지 상상해봅니다. 간단한 스케치를 해봐도 좋습니다.
[막] 제1막
티론 집안 여름별장의 거실. 1912년 8월 어느 날 아침.
정면에 커튼 달린 더블도어 2개. 오른쪽의 더블도어는 바깥방으로 통한다. 이 방은 별로 쓰지 않는 방으로서 격식에 치우쳐 딱딱한 맛이 난다. 또 하나의 문은 창이 없는 어두운 뒷방으로 통한다. 이 방은 거실에서 식당으로 가는 통로로만 쓰인다. 두 개의 더블도어 사이 벽에는 조그만 책상이 하나 있고, 그 위에 셰익스피어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책장에는 발작. 졸라. 스탕달의 소설, 쇼펜하우어. 니체. 마르크스. 엥겔스. 크로포트킨. 막스 스테르테르의 철학 서적과 사회학 서적, 입센. 버나드 쇼. 스트린드베리의 희곡, 스윈버언. 로세티. 와일드. 어네스트 다우슨. 키플링 등의 시집이 꽂혀 있다.
정면 오른쪽 벽에는 방충망덧문이 있어 현관 베란다로 통하는데. 이 베란다는 이 집의 절반을 두르고 있다. 오른쪽 훨씬 앞으로 창이 3개 있으며 앞뜰 저쪽으로는 항구가 내다보이고 부둣가의 거리도 보인다. 고리버들로 만든 조그만 탁자 하나와 참나무로 만든 보통 책상 하나가 창 옆을 따라 벽에 기대어 있다. 왼쪽 벽에도 창문이 셋 있어 이 집 뒤에 있는 정원 등이 보인다. 창 아래 고리버들 긴 의자가 하나 있으며 머리를 뒤쪽으로 두고 쿠션이 놓여 있다. 훨씬 뒤쪽으로 유리문이 달린 커다란 책장 하나. 뒤마, 뒤토르 위고, 차알스 리버의 전집, 셰익스피어 전집 3권, 50권으로 된 대형 세계 문학 걸작집, 훔의 <영국사>, 티에르의 <프랑스 집정 정치 시대와 제 1제국>, 스몰레트의 <영국사>, 기본의 <로마 제국사>, 그밖에 고전 희곡집, 시집, <아일랜드 역사> 몇 권. 이 책들에서 눈에 띄는 사실은 책마다 여러 차례 읽은 흔적이 있다는 점이다.
딱딱한 나무로 만든 마루에는 모양과 색깔이 부드러운 융단을 깔았다. 중앙에 둥근 탁자가 하나 있고 녹색 갓을 씌운 전기 스탠드가 있다. 그 코드는 천장의 샹들리에에 붙은 4개의 소켓 중 하나에 끼워져 있다. 스탠드의 불빛이 닿은 곳에 의자 4개가 탁자 둘레에 놓여 있다. 그 중 셋은 고리버들 안락의자이며 또 하나는 탁자의 오른쪽 앞, 니스칠을 한 참나무 흔들의자로서 자리에 가죽을 씌웠다.
8시 반쯤. 오른쪽 창으로부터 햇볕이 들어온다. (후략)
***‘희곡읽기1~5’ 참고문헌***
김미혜 (2008). 대본분석. 서울: 연극과인간.
제작/글: 열대오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