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연출 입시생이 바로 지금, 3월부터 시작해야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연극연출 입시는 인성면접부터 글쓰기 시험, 단체 워크샵 등 학교마다 시험방식이 굉장히 다릅니다. 그래서 아직 지원할 학교가 완벽히 정해지지 않은 이 시기가 되면 많은 학생들 무엇부터 준비해야 할지 고민을 겪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 전형과 무관히 연극연출을 준비하는 모든 입시생이 필수적으로 해야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희곡 읽기’입니다.
“희곡이 뭐야?”
이제 갓 연극을 접하는 학생들이라면 아마 희곡을 한 편 펼쳐놓고 당황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흔히 접해온 소설책과는 전혀 다른 형식으로 쓰여있기 때문이죠. 어떤 희곡에는 첫장부터 거실의 장식품까지 상세하게 알려주는 한편, 어떤 희곡은 시공간에 대한 별다른 설명 없이 바로 등장인물의 대사가 시작되기도 합니다. 둘 중 하나가 잘못된 걸까요?
희곡의 외적인 형식이 이렇게 다양한 이유는, 희곡의 본질이 ‘공연을 위한 대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희곡은 독자가 아닌 ‘관객’을 대상으로 하며, 공연화되어 무대에서 표현될 때 비로소 완전해집니다. 단적으로 어떤 희곡은 오로지 작가의 상상만으로 적은 것이 아니라 연극의 초연 대본을 활자로 정리해놓은 버전이기도 합니다.
한편 희곡은 그 자체로는 미스터리 투성이일 수도 있습니다. 인물의 세세한 감정선부터 핵심 주제까지 희곡에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부분은 연출가의 상상력을 통해 채워나가야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는 희곡을 있는 그대로 공연하지 않고 고전 희곡의 배경을 현대로 바꾸거나 원작의 등장인물만 차용하는 등 색다른 재해석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희곡을 요리하든, 원작 희곡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만큼은 동일합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작품을 분석하기 전, 희곡의 외적인 구성 요소는 무엇일지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합니다. 첫 시작은 ‘제목’입니다.
“제목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어?”
많은 입시생들이 희곡을 분석하거나 자신의 스토리를 창작할 때 간과하는 부분이 제목입니다. 하지만 제목은 작품의 얼굴로서, (1) 관객의 호기심을 끄는 동시에 (2) 작가가 의도한 핵심 주제를 암시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따라서 작가의 의도가 무엇일지 잘 풀리지 않을 때에는 제목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서 대표적인 입시 희곡인 <세일즈맨의 죽음>을 한 번 살펴봅시다. 마지막에 죽은 주인공 이름은 ‘윌리 로먼’인데 왜 제목은 ‘세일즈맨’의 죽음일까요? 작가 아서 밀러는 이 제목을 통해 어떤 상징과 함의를 드러내려고 한 것일까요?
이처럼 제목은 극의 핵심적인 주제를 드러내거나, 작품의 전체적 줄거리를 알려주거나, 중요한 상징성이 있는 물건이나 인물을 강조하거나, 속담 혹은 격언 등을 활용해 호기심을 끌고 풍자적인 의도를 내포하는 역할을 합니다. 아래 알려드리는 워크샵을 혼자 해보면서 희곡/연극의 제목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어보길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는 등장인물, 막과 장면 등 다른 희곡의 구성요소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본 공연, 최근 읽은 희곡의 제목을 내 입맛에 맞게 바꿔보자.
2) 무슨 내용일까?
-아래의 제목을 보고 어떤 내용과 주제의 작품일지 상상해보자.
-실제 내용과 주제를 검색해보고 나의 추측과 비교해보자.
<말괄량이 길들이기> <생일파티> <인생은 꿈> <상상병 환자> <정의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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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희곡의 외적 요소 중 ‘제목’의 역할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작품의 얼굴인 제목을 만났으니 이제 첫 페이지를 한번 넘겨볼까요?
희곡에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두 번째 정보는 바로 ‘등장인물’입니다.
안톤 체홉의 작품처럼 외국 희곡을 접할 때면 등장인물 소개 페이지에 나열된 길고 어려운 이름들을 보고 살짝 당황한 경험을 다들 한 번쯤 해봤으리라 생각합니다. 희곡의 외적 요소 중 두 번째로 만나게 되는 ‘등장인물’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줄까요?
어떤 희곡에서는 등장인물의 이름과 직업 등만 간단히 알려주는 반면 어떤 희곡은 인물의 과거부터 성격은 물론 생김새까지 상세하게 설명해 놓기도 합니다. 아래 두 개의 예시가 대표적입니다.
< 한여름 밤의 꿈/ 등장인물 >
시시어스 (아테네의 공작)
히폴리타 (아마존의 여왕, 시시어스의 약혼녀)
이지어스 (노인, 허미아의 아버지)
라이센더 (허미아를 사랑하는 남자)
(후략)
<유리동물원/ 등장인물>
아만다 윙필드 (어머니)
-기력은 왕성한데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마구 쏟아내는,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에 광적으로 연연하는 작은 체구의 여인. 그녀의 성격묘사는 어떤 유형에 매이지 않아야 하고 신중을 기한 창조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녀의 성격이 본래 그런 건 아니지만 생활은 과대망상증에 걸린 것 같다. 그래도 아만다에게는 칭찬받을 만한 장점이 많다. 우스꽝스러운 면도 있지만, 사랑스럽고 동정할 만한 점도 많다. 확실히 그녀는 참을성과 일종의 영웅적 자질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비록 그녀의 어리석음이 때론 그녀를 무심결에 비정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가냘픈 자태에는 부드러움이 있다.
(후략)
두 작품은 각각 중앙대 연극연출 시험과 한예종 연극연출 시험에서 지정희곡으로 수도 없이 출제 된
<한여름 밤의 꿈>과 <유리동물원>의 인물소개 페이지입니다. 한눈에 봐도 인물에 대해 알려주는 정보량에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차이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실주의나 표현주의처럼 극의 양식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극작가의 마음입니다!!
<유리동물원>처럼 인물소개가 상세하게 되어있는 경우에는 비교적 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이야기를 읽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여름 밤의 꿈>처럼 자세한 설명이 없는 경우라면, 연출가가 희곡을 읽으면서 성격과 외형 등 빈 부분을 유추해내야 합니다. 때로는 극의 장르나 특성에 따라서 등장인물이 이름조차 없이 ‘여자’ 혹은 ‘남자’로만 표현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럼 인물에 대한 그림을 명확하게 가지고 읽기 시작할 수는 없지만, 연출가가 훨씬 더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 수 있겠죠! 그때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추후에 살펴볼 ‘대사’와 ‘무대지시문’입니다.
물론 희곡을 아무리 읽어도 한 인물을 완성하기 위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정보가 충분히 주어지더라도 연출가가 자신의 컨셉에 맞게 인물을 수정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수록 연출가는 인물에 대한 그림을 더욱더 구체적으로 구상하고 설정해야 합니다. 그 과정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인물 분석 및 구축’ 과정입니다. 즉 막연하고 어렴풋한 글자 속 등장인물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한 명의 독특한 사람/인간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희곡을 접하면, 희곡에서 제시해주는 등장인물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때에도 당황하지 않고 차근차근 빈칸을 채워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의 워크샵은 인물과 관련해서 어떤 빈칸을 채워야 할지 희곡을 읽기 전 미리 정리해보는 것입니다. 어떻게 희곡에 처음 접근하면 좋을지 고민이 많을 수험생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는 또다른 희곡의 외적 요소로 돌아오겠습니다.
<등장인물 미니워크샵>
-위의 예시로 나온 <한여름 밤의 꿈>의 인물소개 페이지 전체를 찾아서 펼친다.
-인물소개 페이지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희곡을 읽으며 찾아야 하는 정보의 리스트를 종이에 ‘질문 형식’으로 적어본다.
(나이는? 외모는? 성격은? 서로 간의 관계는? 라이센더는 허미아를 언제부터 사랑한 걸까? 등 인물소개 페이지를 보고 떠오르는 대로 자유롭게)
-희곡을 끝까지 읽어보며 질문에 답해본다.
제작/글: 열대오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