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경영자의 눈으로 바라본 평범함 - 육각형의 사람
나는 축구게임을 좋아한다. 축구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알맞은 전술을 짜는 것뿐만 아니라 능력치가 높은 선수를 고르는 것이 승리하기 위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게임에서는 각 선수의 스피드, 몸싸움, 드리블, 골 결정력 등 여러 능력치를 육각형 모양의 방사형 그래프로 보여준다. 각 선수의 능력치에 따라 다양한 그래프의 모양이 나온다. 대개 어느 한 능력치가 높은 선수들은 그 능력치를 향한 뾰족한 모양의 그래프를 가지고 있다.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각 위치에 필요한 능력치가 높은 선수들을 구매해서 알맞은 위치에 배치해야 한다. 골 결정력이 높은 선수는 공격수에, 태클이 좋은 선수는 수비수에 놓는 식이다.
게임을 하고 있으면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재능 그래프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능력치에 따라 다양한 모양의 그래프. 운동에 재능이 있다면 운동 쪽으로,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면 글쓰기 쪽으로 뾰족한 그래프를 가지고 있다. 평소 다른 이들을 신경 쓰고 부러워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한 번씩 어느 한 분야에 뚜렷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비단 미술이나 음악과 같은 예체능 분야가 아니더라도, 어느 분야든 간에 자신이 그 분야에 확실한 재능이 있다고 느낄 정도의 실력이 있는 사람들은 어딜 가더라도 필요한 곳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뒤떨어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특출나지도 않은’ 평범한 정육각형의 모양의 그래프를 갖고 있다. 못하지는 않지만 특출나지도 않은 평범한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 남들보다 확실하게 뛰어난 점이 없어서 이거 하나는 자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사람.
나는 미술을 좋아하고 취미로 그림을 그리지만, SNS에 올라오는 예쁜 그림들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글을 쓸 때도 다른 사람들만큼은 쓰는 것 같은데, 어디에 내가 쓴 글을 보여주는 것은 부끄럽다. 전공인 기획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나름 멋있는 기획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면 어딘가 하나씩 틀린 부분들이 보인다.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한 재능 하나가 없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부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특별히 잘하지도 않는 3등급 정도의 학생이었다.
온도로 따지면 뜨뜻미지근한, 색깔로 따지면 이도 저도 아닌 회색이랄까. 가끔은 뜨겁거나 차갑게, 검정이나 하얀색처럼 뚜렷한 온도와 명도를 가진 사람으로 살고 싶은데. 사회가 그렇게 만든 건지 내가 원래 이런 성격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중간 그 언저리에 머물러 있는 육각형의 사람이라는 게 가끔은 지겨웠다.
어느 날 우연히 구글 코리아에 견학을 갈 기회가 생겼다. 그곳에서 직원분들과 멘토링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린 학생들은 꿈의 직장인 구글이 신기했던지 여러 가지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았는데, 그 속에서 몇 년이 지나도록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한 문장을 발견했다.
“평범한 A와 평범한 B를 섞으면 특별한 C가 나와요.”
구글 직원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고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당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은 생생하다. 이 문장은 특출난 천재들을 부러워하고 애매한 재능에 만족하지 못하던 내 생각을 바꾸어주었다. 뚜렷한 재능이 없다는 것을 바꿔 말하면 무엇이든 잘할 가능성을 가진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 조금씩이나마 재능을 가지고 있기에 더 많은 분야를 섭렵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분야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서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다.
돌이켜보니 내가 예술경영자, 기획자의 길을 걸어가기로 한 것도 여러 분야에 걸친 애매한 재능과 관심 덕분이었다. 나의 기획은 항상 나의 관심에서 비롯되었고,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두 가지가 합쳐졌을 때 새로운 시너지가 생겨났다. 무언가 큰 깨달음을 얻은 기분이었다. 이어 직원분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육각형 선수에게 중요한 것은 육각형의 크기에요.”
모든 능력을 고루 갖춘 선수를 육각형 선수라고 부르는데, 그들에게는 그래프의 크기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방사형 그래프에서 그래프의 모양은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특출난 장점이 있어도 장점의 크기가 작다면 어디에도 쓸 수 없는 선수일 뿐이다. 생각해보니 게임에서도 육각형 선수는 한 분야에 특출난 선수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그다음부터는 나의 육각형 그래프가 부끄럽지 않았다. 나는 이도 저도 못하는 어중간한 사람이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한 분야에 특출난 사람들보다 더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구글 직원의 두 문장은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문장들이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남들과 비교하며 부족한 재능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육각형의 크기를 키우고자 다짐했다.
육각형의 사람은 누구보다 더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애매한 재능이란 것을 알고 있기에 더 노력할 수 있다. 그 노력의 흔적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노력의 흔적들은 육각형의 크기를 키우고, 또 다른 방향의 재능을 발견한다. 그렇게 육각형의 크기가 커지고 육각형이 칠각형, 팔각형이 되면서 나의 재능도 발전한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기에 누구보다 특별해질 수 있다.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이 없어서, 자신이 무엇을 잘 하는지 몰라서 자신을 자책하고, 스스로를 평가절하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이 이야기를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평범한 사람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사람이다. 누구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절대 기죽지 말자. 내게 주어진 길,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걷다보면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올테니까.
제작/글: 예술도서관 TA 이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