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 예술경영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 예술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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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주는 선물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 델프트(Delft)에서 태어난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를 대표하는 화가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 알려진 정보는 제한적이다. 평생 겨우 35점의 작품만을 남겼으며, 베르메르의 작품 중에는 자화상이 한 점도 없다. 이마저도 원본 확정이 덜 된 상태다. 한 작품을 오랫동안 그리는 그의 그림 스타일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렘브란트가 2,000 여 점의 그림을 그린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적은 숫자다. 심지어. 다만 그의 다른 그림들에 그려진 화가의 모습을 보며 그의 모습을 추측할 뿐이다.


델프트의 스핑크스라고 불리는 베르메르이지만, 오히려 그의 수수께끼를 통해서 예술적 상상력은 팽창된다. 사람들은 얼마 안 되는 베르메르의 그림들을 보며 숨겨진 그의 일생을 상상한다. 비밀에 싸인 그의 인생처럼 베르메르의 그림들도 무한한 신비로움과 수수께끼를 지니고 있는데, 특히 북유럽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수많은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알 듯 말 듯한 미소, 화가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눈, 수수한 옷차림과 대비되는 진주 귀걸이, 어둠으로 가득 찬 배경까지 무엇 하나 평범한 곳이 없다. 평범하지 않은 그의 그림을 보며 궁금해하고, 질문을 던지고, 말을 지어내는 과정에서 우리의 예술적 상상력이 극대화된다. 동명의 소설과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도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원작 소설의 작가인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자신의 방에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포스터를 16년 동안 붙여놓고 계속해서 관찰했다고 한다. 1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림 속 소녀와 작가 사이에 얼마나 많은 상상과 질문들이 오고 갔을까? 비록 그림 속 소녀도, 화가의 정체도 알 수 없지만 검은색 배경에서 고고하게 빛나는 작품은 또 다른 세계를 열어주었다. 그렇게 소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세상에 나와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


예술은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우리는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만났다. 소설과 영화로 재구성된 상상의 세계다. 그리고 우리는 그림과 소설, 영화를 감상하며 또 다른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림을 통해 만들어진 상상의 세계를 감상하며 또 다른 세상을 엿보고 구축한다. 이렇게 예술은 우리의 생각의 저변을 넓혀주고, 세계의 한계를 무너트린다. 당신은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그저 예쁘고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고상한 무언가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이제는 예술을 대하는 태도를 달리 해야 한다.


예술은 상상의 세계로 가는 문을 아무에게나 허락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문을 열고 더 넓은 세계로 나가기를 꿈꾸지만 정작 문을 넘어간 사람은 드물다. 그 문을 열 수 있는 조건은 정해져 있다. 거창한 미학적 지식이나 철학, 예술적 재능이 아니다. 물론 그런 것들이 예술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은 될 수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작품에 대한 애정과 관찰이다. 관찰이 선행되어야 애정이 생기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품을 자유롭게 느낄 수 있다. 그때야 비로소 임계점을 넘어 예술이 주는 상상의 세계를 맛볼 수 있다


나는 미술 전시를 보러 가면 작품을 4번 감상한다. 전시회의 전체적인 성격과 느낌을 파악하기 위해 한번,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한번, 설명을 듣고 난 후 새로 알게 된 지식을 토대로 한번, 마지막으로 나만의 감상으로 작품을 오롯이 느끼며 한번. 이렇게 전시회를 4번을 돌면 보통 3~4시간이 소요된다. 점심 먹고 들어가서 저녁 시간에 나오는 셈이다. 분명 적지 않은 시간이다. 전시회를 나오면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다. 그러나 감상한다는 것, 관찰한다는 것은 오랜 시간을 전제로 하기에 절대 대충 보고 나올 수 없다.


이것은 비단 나와 작품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 간의 관계에서도 적용된다. 깊은 관계는 오랜 시간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깊은 속마음까지 털어놓기는 어렵다. 몇 번 만나면서 얼굴을 익히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에 대한 배경지식을 쌓아야 비로소 깊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작품도 마찬가지다. 작품을 전시장에서 처음 마주했을 때의 첫 느낌과 4번을 보고 난 후의 느낌은 다르다.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들여야 애정이 생겨난다. 애정은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해준다. 그렇게 애정 어린 눈으로 작품을 바라볼 때 작품은 더 넓은 세계로 가는 초대장을 건넨다. 소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도 이렇게 탄생했다.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무려 16년 동안 관심의 시간을 쏟고, 애정 어린 궁금증을 보냈을 때, 검은 배경 속 의문의 소녀가 응답했다.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그랬듯이, 현실의 세계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문 앞에 가만히 앉아있는다면 문은 열리지 않는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예술이 주는 선물을 만끽해보자.





제작/글: 예술도서관TA 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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