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로 인해 미래에 다가올 세상과 변화에 대해 생각하며 보내는 지금, 동시대의 가장 화두가 되고있는 인공지능에 대한 화두를 빼놓을 수가 없다. 공연예술계 종사자로서 과연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여 예술활동을 어떻게 하고 있으며 그 미래는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았다.
그림 그리는 AI ‘아이다(Ai-Da)는 2019년 2월 처음 세상에 공개되었다. 생체 공학적으로 설계된 팔과 내장된 카메라로 그림을 그리는 최초의 인공지능 로봇으로 눈과 몸에 내장된 카메라로 주변을 인식하고 물체의 특징을 파악한다. 물체가 접근하면 뒤로 물러서가나 눈을 깜빠이며 놀란 표정을 지을 수도 있다. 또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따라 경로를 계산하고 좌표를 해석해 작품을 만든다. 2019년 6월에는 아이다의 첫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는데, 이 전시회의 큐레이터 루시 실은 ’담보할 수 없는 미래‘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회가 관객들에게 많은 논쟁거리를 던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녀는 ’로봇의 예술적 잠재력이 미래에 대한 영감과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를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처: 서울신문 나우뉴스] 권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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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지난 3월 AI아트갤러리에서 <엔지니어전>이 열렸다. 국내 최초 AI화가 ‘이매진AI’와 인간화가가 협력하여 작품들을 만들어 전시한 이 전시는 자율주행과 블록체인을 개발하는 공대출신 엔지니어 등 세 명의 엔지니어가 참여하여 이매진AI에 제주 바다, 독도,소녀, 개 등 수십만개의 이미지를 입력시켜 학습시키고 학습된 모델에서 생성한 이미지를 붓터치의 느낌을 살려 전시했다.
미국에서는 글쓰는 AI작가가 ‘인간보다 더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글을쓴다.’는 이유로 출시하지 못하고 폐기되기도 했다. 연구진들은 공익 차원에서 개발한 GTP-2(글쓰는 인공지능)이 가짜 뉴스 생산이나 학생들의 과제 논문 등에 악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폐기한다고 말했다. GTP-2는 80만개의 인터넷 페이지를 검색하고 15억개의 단어를 학슴했다. 이를 바탕으로 인간 보다 더 뛰어나고 논리적인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공익을 위한 개발’로 부터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SF공상과학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인간의 어려움을 덜고자 개발한 AI가 인간보다 더 뛰어난 지능과 성능으로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한층 다가왔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미 전 세계는 기술혁명으로 대다수의 산업현장에서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여 어려운 일들을 해내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9시뉴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자동차 공장의 모습을 보면 큰 뼈대를 조립하는 것은 기계의 몫이다. 사람은 잘 조립이 되었는지 확인하고 간단하게 볼트와 너트 몇 개를 확인할 뿐이다.
그렇다면 공연예술은 어떠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연예술 만큼은 아직 인공지능에게 내어주지 못할 인간 고유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인공지능 연극은 공연되고 있다.
국내에서 ‘과하가는 마음’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유명 극작가 겸 연출가 ‘히라타 오리자(hirata oriza)’는 세계적인 로봇 전문가인 일본 오사카대학의 ‘이시구로 히토시’박사 와 함께 손을 잡고 인공지능 연극 프로젝트를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 ‘안드로이드 휴먼 씨어터는’ 2010년 안드로이드 로봇 ‘휴머노이드F’를 개발하였는데 그녀는 65가지의 표정 연기가 가능하고 입을 움직여 말을 하거나 노래르 부를 수도 있다. 히라타 오리자는 이 안드로이드 로봇과 인간 여배우를 주연으로 한 2인극 <사요나라>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2013년에는 국내에서 공연 되기도 했는데, 당시 국내 연극 팬들은 물론 로봇 과학자들의 높은 관심을 끌었다. 이 작품은 몇 년뒤 일본에서 영화로 제작되어 전 세계 영화제에 잇단 초청을 받기도 했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이 공연의 영상을 보면 어두운 조명아래 사방이 검정색인 무대에서 처음에는 누가 사람이고 누가 로봇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두 여서으이 대화 소리가 들리고 그들은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교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보통의 사람들이 대사를 주고받을 때 받는 느낌과 전혀 다를것이 없다. 하지만 공연이 진행되고 사람 배우가 움직여서 로봇 배우에게 다가간다. 이 때 우리는 로봇 배우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아 차릴 수 있고 그 순간 여러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로봇이 하는 연기를 보며 신기한 감정과 함께 한편으로 ‘연극도 로봇이 대체하게 되는 거야?’라는 섬뜩한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 완전히 사람을 흉내낼 수 없는 로봇의 모습을 보면서 로봇 연극의 한계를 확인하고 안도의 마음을 가지기도 한다.
<사요나라>가 공연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히라타 오리자가 추구하는 ‘조용한 연극’의 형식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주의적 연출로 배우들이 크게 동선을 사용하지 않으며 일상생활에서 오고가는 대화들을 통해서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는 전하는 것이 히라타 오리자의 ‘조용한 연극’적 형식이다.
그렇다면 이런 형식이 아닌 여러명의 배우들이 등장하고 때로는 춤을 추기도 음식을 먹기도 하고 왈츠를 추고 싸우고 밀치는 연기를 할 수 있는 인공지능 연극은 가능할까? 분명히 언젠가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공연을 관객들이 보러 갈 것인지는 짐작할 수 없다. 또 공연을 하는 로봇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만드는 의도가 어떠한가에 따라 그 가치는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태껏 그래왔듯 인간의 어려움과 수고를 덜어주고자 개발 되었던 로봇들처럼 공연예술에서 필요한 로봇들이 많이 존재할 수도 있다. ‘조명을 알아서 달아주는 로봇’, ‘배우들의 동선을 기억하고 음향을 틀어주는 오퍼로봇’, ‘관객의 체형에 따라 시트를 조절해주는 편한 객석 로봇’등 공연게에도 필요한 로봇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작, 연출가의 창작과 배우들의 혼신의 연기는 말그대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혼’이 담긴채로 언제까지나 인간의 고유의 영역이였으면 하는 어쩌면 이기적일 수 도 있는 생각을 해본다.
제작/글: 예술도서관TA 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