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봄의 기록.
처음 영화를 봤을 때, 보는 내내 은수를 욕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뭐 사랑이 변할 순 있어도 저건 아니지.
두번 째 봤을 때, 친구가 보였다. 상우를 강릉까지 데려다주는 친구. 나는 저런 친구가 될 자신이 없었다.
친구의 기름값을 결국 보람 없게 만든 상우처럼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꽤 시간이 지나고 세번 째 봤을때, 그 멍청하던 상우가 이해가 갔다.
상대방에게 선사해야할 가장 옳은 태도는 꾸준함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래서 매일같이 할머니를 집으로
모셔오고, 매번 바보같이 은수의 부름에 응했을까?
바보같다는 표현은, 그저 내 질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할머니 품에 안겨 울음을 터트리는 상우를 보며 깨달았다.
그리고 어제 영화를 보면서 난, 그렇게도 이해하기 싫었던 은수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그저, 상우의 꾸준함과 은수의 꾸준함은 그 모양이 달랐을 뿐이라고, 둘은 각자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했을
뿐이고, 상우가 은수에게 화분을 돌려주는 것이 조금 늦었던 것 뿐이라고.
봄날은 간다. 결국 돌아서 봄은 다시 오겠지만, 그 봄은 분명 지나간 봄과는 다르다.
다만, 봄이 지나갔다 해서, 그 지난 봄을 겨울이었다 부르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