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앉아서’
바쁘지 않은 카페에 앉아있는 것은 모두의 낭만과도 같지만, 카페 사장의 낭만은 아니다. 아니. ‘아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카페가 고요한 날은, 지갑은 타들어 가고 마음은 피어난다. 이 순간이 이어지면 좋겠다. 비라도 내리는 날은 마음 놓고 의자 깊숙이 몸을 묻는다. 곧 망할지도 모르는 카페 사장은 현실의 줄과 마음의 줄을 통시에 탄다. 생각을 고쳐먹은 우산 장수와 부채 장수의 어머니처럼. 마음에 좋은 쪽을 향해 줄에서 떨어진다. 오늘 하루도 조용했다. 나는 커피를 5잔 마셨고, 단지 손님들보다 한 잔을 덜 마셨다. 누군가가 나에게 물어본다. ‘카페는 왜 시작하셨어요?’ 음, 지금으로서는. ‘커피를 원가에 마시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카페를 하며 카페에 대해서 글을 쓰라는 권유를 많이 받는다. 오래 했으니, 할 말도 많을 것 아니야?
맞다. 할 말은 아주 많다. 하지만 그 할 말이라는 것의 70%는 곤란한 손님들의 이야기. 20% 정도는 레시피와 재료 이야기. 나머지 10%는 ‘어휴 장사 안 돼요’가 될 것 같은데. 그래도 할 이야기가 많아 보이는지. 카페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레시피에는 관심 없을 것이고. 배달의 민족 리뷰란을 열면 인류애를 초월한 손님들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장사 안 되는 카페인 것은 당장 우리 카페에 30분만 앉아있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창의력과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인 탓에, 카페에 관해 쓸 이야기는 많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뭔가를 써내는 것이 작가의 소양 아니겠는가. 멋지고 훌륭한 작가들을 아주 비싼 에스프레소 머신에 비유하고 싶다. 2천만 원에서, 비싸게는 4천만 원 하는 에스프레소 머신. 어쩌면 한 대에 380만 원 가격표가 붙는 하이엔드 그라인더에 비유해도 좋겠다. 원두를 아주 균일하고 곱게 갈아낸다. 주문이 몰리는 시간에도 무리 없이 균일한 에스프레소를 추출해 낸다. 세상의 많은, 훌륭한 작가들이 나에게 그렇다. 나? 나는 에어로 프레스 정도는 될까? 어쩌면 경품으로 받은 핸드밀 정도라 한다면 적당한 비유일까. 원두를 갈아내는 것이 수고스럽고, 요령이 없으면 커피 한 잔 만들어내기도 쉽지 않지만. 그래도 한 잔의 커피는 나온다.
그리고 어쩌면. 누군가는 그 커피를 맛있게 마실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