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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TO Apr 08. 2023

3. 실수와의 싸움.

'카페에 앉아서'

 지난 3일 동안, 나는 카페를 마감한 뒤 자리에 남아 청귤을 10kg씩 썰었다. 썰고, 썰고, 썰었다. 

나를 알고 청귤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걱정하며 비웃었다.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가족. 살짝 올라간 입꼬리를 애써 가리지 않는 친구. 그 많은 청 다 만들면 둘 곳도 없으니 나눠 받아주겠다는 무임승차객. 

그래도 3일 동안 열심히 썰고 또 썰어 전부 청으로 만들었다. 나는 내심 뿌듯했으나, 산처럼 쌓인 청귤 청 앞에서 감히 웃진 못했다. 이걸 1년 안에 다 팔 수 있을까? 어쩌면 내년에는 청귤을 주문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냉장고에 넣어둔 수박으로 주스를 만들어 마시려다 시큼한 냄새에 놀랐다. 넣어둔 지 오래됐다고 생각해서 내가 마시려고 한 것인데. 세상은 언제나 내 생각보다 한 발 앞서간다. 꽤 많은 양의 수박을 그냥 버렸다. 이제 수박철은 지났다. 수박은 냉동실에 넣어뒀어야 했다. 혹은 내가 후련하고 맛있게 갈아 마시고 치웠거나. 수박주스의 메뉴 은퇴는 너무나 초라했다.


카페를 운영한 경험치가 꽤 쌓였다고 생각했다. 삶의 경험치는 그보다 더 쌓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삶에서도, 카페 운영에 있어서도 여전히 실수가 잦다. 때때로 치르는 대가들은 때론 수고스럽고, 때론 쓰디쓰다. 살면서 아주 많은 실수를 했는데. 아직도 실수를 해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대단하다. 나는 어쩌면 아주 유능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실수도 하나의 분야라면, ‘탁월하게 같은 실수는 반복하는 사람’ 정도의 타이틀을 달고 박수를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아지는’ 사람이 있고 ‘나아가는’ 사람이 있다. 보통은 두 가지를 같이 해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라서. 누군가는 나아지기 위해 잠시 멈춰 서고, 누군가는 나아가는 것에만 집중한다. 둘 다 내려놓고 잠시 멈추는 사람도 있다. 화살을 나에게 돌려보자면. 나는 어떻게든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에 속하는 듯하다. 하지만 꼼꼼하진 못해서 좀처럼 나아지진 않고. 그래서 털어내지 못하는 무지와  참아내지 못하고 저지르는 실수에 늘 시달린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되려 안도하고 싶어서 이렇게 구구절절 늘어놓는다. 어찌 되었건 나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안심. 그 위에 조금 나아지는 요령만 추가하면 꽤 그럴 듯 한 카페 사장이 될 것 같다는 기대감을 되새기고 싶어서 말이다. 

무언가를 하고 있기 때문에 시달리고 있다. 어쨌건 청귤은 다 처리했고 수박은 다행히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못했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인심 쓰듯 청을 나눌 것이다. 내년 여름에는 수박 관리를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나이로 40살이 되었다. 그 나이에 걸맞은 실수를 연발하며 살아왔고, 살아간다. 삶에도, 일에도. 모쪼록 좀 더 요령이 생기길.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길. 눈앞의, 산처럼 쌓인 청귤 통을 바라보며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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