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tPD Nov 16. 2020

너의 이름은?

휘발성 메모리의 저주

https://img.kr.news.samsung.com/kr/wp-content/uploads/2017/08/%EA%B8%B0%EC%96%B5-%ED%8A%B9%EC%84%B1%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정도로 기억력이 약하다. 어머니 증언에 따르면 나는 어린 시절에 연탄가스를 마신 일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기억력이 나쁠 거라고 나 스스로 위로하고 추정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본 직후여도 주인공의 이름이 생각 안 나고 주인공이 다닌 회사 이름이라든지 살았던 동네 이름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다만 스토리 라인만 기억에 남는다. 작년에 휴가 갔던 리조트 이름이라든지 지난주 다녀온 식당의 이름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에겐 기억을 잘 못 하는 병이 있든지 기억하기를 싫어하는 심리가 있든지 하여간 문제가 있다.

https://img.insight.co.kr/static/2018/10/19/700/so0f5n598kaaxs9gmz86.jpg


무언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것이 특별하다거나 그것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그 사람에 호기심이 생겼거나 다시 꼭 봐야 할 사람일 경우다. 직업 특성상 여러 프로그램으로 옮겨 다니며 새로운 팀원들과 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많게는 스무 명에서 작게는 네댓 명. 이때 나를 곤욕스럽게 하는 것이 스태프들의 이름 외우기다. 반드시 빠른 시간 내에 외워야 하는데 현장에서 이름을 불러야 내가 일을 원활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277E563A548ABF2303

또 내가 못 견뎌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만 빼고 모두가 서로 잘 아는 사이이고 서로 호형호제하는 그룹에 내가 녹아들어야 하는 경우다. 다분히 아웃사이더 기질이다. 다 같이 공평하게 이름을 외워야 하는 경우가 아니고 나만 숙제 더미를 껴안은 느낌이랄까? 다분히 반사회적 기질이다.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264DE204CCCAFE126

결국 나에게 문제가 있다. 학창 시절에도 암기과목이 죽도록 싫었다. 국사 과목이 그렇게도 싫었다. 선생님은 스토리를 얘기해주지 않고 주인공 이름과 사건 사고의 증거, 장소만 주야장천 외우라고 시켰다. 스토리는 설명해주지 않고 사람, 사물, 사건 이름만 외우라고 하니 나에겐 치명적이었다. 스토리만 기억하는 나에게 말이다.


그래서 나는 기억을 끄집어내기 위해 한 두 단계를 더 거쳐야 한다.

"우리 작년에 갔던 00 리조트 말이야!" 

이렇게 명료하게 색인을 찾을 수가 없다. 연관 검색어를 곁들여야 한다. 

"그 왜~ 우리가 체크인하려고 했더니 1시간 뒤부터라고 해서 짐만 맡기고 밖에 나와서 숲길 산책했는데 다람쥐 한 마리 보고 다윤이가 엄청 좋아했던 거기 말이야"

나보다 기억력 좋은 아내의 데이터 센터(?)와 검색 엔진을 활용하는 셈이다. 아내는 혀를 끌끌 차며 왜 그런 디테일 한 건 기억하면서 리조트 이름 하나 기억 못 하냐고 야단친다.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25371E3C570643023D

어디 가서 아는 척하기도 힘들다. 제목이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아서 영화 추천도 잘 못 하고 맛있게 마신 와인 이름도 까먹어서 혹시 찍어뒀나 핸드폰을 뒤지다가 얘기도 못 꺼내고 엄청 비싼 초밥집에 가보고도 자랑도 잘 못 한다. 모두 이름을 기억 못 해서다. 그래서 훌륭한 레퍼런스를 줄줄이 대며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을 보면 묘한 질투 마저 느낀다. 


"도대체 저걸 어떻게 다 기억하는 걸까? 일부러 외우는 걸까?"


https://img.insight.co.kr/static/2019/04/21/700/v7kh9a92ue82vi6t9215.jpg

사람마다 뇌 활동이 다르다. 공부 머리가 잘 서있는 사람은 색인을 만들어 사진 찍듯이 기억한다고 한다. 나에겐 이 능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한 만큼 성과가 나지 않았던 것 아닌가 싶다. 앉아있는 시간만 길었지 암기 효율성은 떨어졌던 셈이다. 


게다가 요새는 스마트폰으로 찍어두고 메모해두고 캘린더에 입력해두면 절대 까먹을 일 없는 세상이라 기억하는 고통을 피할 수 있다. 연락처도 저장해두면 카카오톡 프로필로 사진이며 번호며 sns까지 뜨기 때문에 일단 저장해 두고 나중에 이름 외우지 뭐~ 하는 생각이 크다. 그러다가 정작 앞에 마주치면 앗~ 이름이~ 식은땀이 줄줄 난다.


https://lh3.googleusercontent.com/proxy/_8OjiSqoxpxtlWhqQfT0I12RNLJI5DYLkls1BW2j8GmY3NKTj9oeOpt8WmEn

그러고 보니 친한 친구 번호는 열개고 스무 개고 외웠던 시절이 있다. 스마트폰이 몸의 일부처럼 여겨지는 지금에 와서 나의 기억력은 퇴화되고 있다. 워낙에도 남들보다 뭔가 외우는데 능력이 떨어졌는데 스마트폰 덕분에(?) 지금은 더욱더 바닥을 친 상태 같다. 아내의 기억력에 의존하고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비루한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독립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유튜브를 잘 찾아봐야겠다.


"그 왜.... 기억력 떨어지는 증상을 뭐라고 하지?"



 













작가의 이전글 당근마켓 활용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