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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마켓 활용기

오래된 노트북 쫓아내기

by ent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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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물건들이 노후되고 중복되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집에 노트북이 두 개 있다. 레노버 노트북은 결혼하고 이듬해에 샀으니 2012년에 산 물건 같다. 너무 느려서 올해 초에 hdd를 ssd로 바꾸고 윈도 10으로 정품 업데이트해주었다. 들어간 돈만 대략 5만 원쯤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삼성 노트북이 생겼다. 이 놈도 새 놈은 아니지만 먼젓놈 보다 빠릿빠릿하기에 이 녀석을 주로 쓰기 시작했다. 애먼 돈 5만 원을 들여 개비한 레노버 노트북은 그냥 자리만 차지하며 창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게 전부였다.


그냥 갖고 있으면서 쓴다면 그 가치를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겠지만 쓰지도 않고 자리만 차지하고 연식만 늘어가면 나중에 처분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당근마켓에 한 번 올려보았다. 시세를 보니 10만 원 이상으로도 올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 생각에 10만 원이면 조금만 더 보태서 20만 원짜리 중소기업 노트북을 사고 싶어 질 것 같았다. 팔리지 않고 끌어올리기만 하고 있는 비슷한 녀석들을 보자니 시원하게 가격을 내려서 올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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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지 않지만 모든 기능이 다 되고 인터넷 서핑, 720P 영화 감상, 한글 작업 원활. 단돈 5만 원. 역시나 올리자마자 3명에게서 거래 제안이 왔다. 질문이 적고 가장 적극적인 사람에게 팔기로 했다. 질문만 많고 몇 분 단위로 채팅을 하며 미적거리는 거래는 정신을 갉아먹는다. 물건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알아본 사람은 질문이 적다. 노트북의 스펙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제대로 답변해줄 수 있을 정도로 지식도 없고. 그래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장 사러 오겠다는 사람에게 노트북을 넘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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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오후 늦게 거래하기로 하였으나 시간을 당겨 점심시간에 사러 오겠다고 한다. 나는 땡큐다. 어차피 팔기로 했으면 빨리 현금화하는 게 이득이다. 5만 원이 이자가 얼마나 되겠냐마는... 구매자는 오토바이를 타고 왔고 이런 거래를 통해 수익을 내는 전문 꾼 같았다. 한 번 켜보더니 별말 없이 이체를 해주었다. 거래를 마치고 구매자 아이디를 클릭해서 역대 거래 기록을 보았다. 잡다한 물건들을 사고팔았다. 그렇다. 전문업자였다. 급매물로 나온 저렴한 물건을 사서 제값을 받고 파는 되팔이인 것 같았다.


별로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내가 있는 곳으로 직접 와주었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거래를 진행했고 깔끔하게 이체해주었다. 아마도 그 사람은 몇만 원을 더 붙여서 노트북이 필요한 사람에게 며칠 후에 팔게 될 것이다. 제값을 받기 위해 나 대신 시간을 더 들일 것이고 창고 같은데 보관하며 공간을 차지할 것이다. 내가 쓰지 않은 시간과 공간을 이 업자가 대신 써주는 것이다. 그리고 일일이 응대하는 귀찮음까지.


집에서 쓸데없이 공간만 차지하고 쓰지 않은 물건을 팔아보려고 한다. 가끔 나눔도 하면서. 특히 아이 물건은 아이가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찾지 않는 것들이 많아진다. 짧게는 한두 번, 길게는 몇 개월만 필요한 유아 물품이 많다. 언젠간 다시 쓰겠지 언젠간 아무개네 아기한테 물려주는 게 낫겠지 언젠간 둘째가 생길 수도 있겠지...


언젠간...이라는 말로 버리지 못하고 고이고이 쟁여두었다. 비싼 전셋집에 임대료 한 푼 안 내고 그들이(?) 함께 살고 있다. 어서 떨쳐 없애야겠다. 가볍게 살림살이를 줄이면 집도 깔끔해질 것이고 기분도 홀가분해질 것이다. 꼭 필요한 게 아니면 팔자. 꼭 필요한 게 아니면 사지 말자. 객식구들을 다 쫓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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