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아베상
요즘 나는 주식 재미에 흠뻑 빠졌다. 코로나19 사태에 푹 꺼진 코스피, 코스닥 지수가 연일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역대급으로 돈을 벌기 쉬운 장이다. 잃기도 쉽다는 점이 함정. 하여간 별다른 게임이나 스포츠를 하지 않는 내게는 주식으로 돈을 벌어도 재미있고 잃어도 재미있다. 요새 나의 새로운 취미인 셈이다. 나는 요새 자기 전에 마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듯이 뉴스와 여러 정보 등을 바탕으로 내일 어떤 종목을 살지 혹은 팔지 계획을 세운다. 변동폭이 큰 주식이 주로 물망에 오르는데 주로 테마주라고 하는 주식들이다.
반일 정서가 커지면 상승하는 반일 테마주는 모나미와 신성통상이 있다. 모나미는 모두가 아는 볼펜을 만드는 문구 회사이고 신성통상은 유니클로와 비슷한 탑텐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회사이다. 한국과 일본이 충돌하여 두 나라 간 긴장감이 커지면 모나미와 신성통상은 크게 오른다. 일본과 한국의 사이가 나빠지면 국민 정서상 일제 문구, 의류를 사지 않는다는 심리적인 계산이다. 실제로 모나미와 탑텐으로 수익이 이어지는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냥 오른다.
아베가 기자회견을 앞둔 당일. 나는 생각을 해보았다. 1. 아베가 유임된다 2. 아베가 해임된다 선택지는 이 두 가지뿐이다. 공동 총리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1번의 시나리오를 보자. 아베가 총리 욕심을 부리고 자기 건강은 이상이 없고 끝까지 성실히 해낸다고 말한다 치자. 그럼 한일 관계는 변함없이 안 좋다는 합리적 예상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모나미, 신성통상 같은 류의 테마주는 상승한다.
2번의 시나리오로 아베가 퇴임하면 극우 성향의 아베가 물러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는 걸까? 정답을 알려면 일본의 정치제도를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이 퇴임한다면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기 전까지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국정을 지휘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대통령 후보가 난립하고 그야말로 새로운 판이 짜이는 것이다. A당에서 B당으로 정권 교체도 가능하다. 국내, 외교적인 방향이 정반대로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의 총리는 중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의 대표를 임명한다. 따라서 총리를 국민들이 별도로 선출하는 지명 선거는 없다. 그저 다수당의 전당대회를 통해서 총리가 지명되는 것이다. 다수당인 자민당의 아베 신조 총리가 퇴임하면 그저 자민당의 다른 인사가 신임 총리가 되는 것이다.
2번의 시나리오로 아베가 퇴임해도 자민당 내에서만 인재가 등용되기 때문에 그 나물에 그 밥인 셈이다. 물론 개인적 성향으로 한국에 아베보다는 우호적인 후보가 있을 수 있으나 자민당이라는 당의 색깔 때문에 대외 정책이 크게 바뀔 리 만무하다. 그러므로 아베가 퇴임하더라도 한일 관계는 드라마틱하게 나아지지 않는다... 는 결론에 도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1, 2번 모두 결론은 한일 관계는 당장 좋아질 리 없다. 아베가 사임하든 안 하든 무조건 모나미와 신성통상은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미리 한 사람은 전날 혹은 전전날 저렴한 가격으로 주식을 매수했을 것이고 2번의 생각까지 깊게 하지 못했으면 아베 총리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었을 것이다.
나는 깜빡하고 전날 미리 매수하지 못했다. ㅡㅜ 일을 하다가 연합뉴스 속보 알림에 부리나케 들어가 보니 이미 모나미 주식은 급상승 중이었다. 너무 많이 올라서 살까 말까 고민하는데 또 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소심하게 100만 원 정도를 주당 7,760원에 주문했다. 그리고 아슬아슬 끄트머리를 잡고 7,800원에 매도했다. 수수료를 제하고 수익은 0.25% 2,515원. 아베가 내게 2,515원을 주었다.
9월 15일쯤 임명될 다음 일본 총리는 내게 얼마를 줄까? 더 많이 뜯어내야겠다.
*이 글은 종목 추천이 아니며 종목 선정 및 투자 손실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다들 이런 거 쓰길래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