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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tPD Jan 07. 2021

청개구리 인생

엄마 말도 안 듣는 녀석

난 남의 이야기를 잘 안 듣는다. 특히 조언이나 지시를 하는 경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내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도 그렇다. 당시로선 다 잔소리로 들린다. 그리고 어느 중학생의 말대로 충고는 더 듣기 싫다. 민낯을 까인 느낌이랄까...


희한하게 주식은 예외다. 주식은 누가 좋다면 샀다가 물려서 6년째 갖고 있는 종목도 있다. 아직 상폐가 안된 것도 신기하다. 주식 앞에선 한 없이 얇은 피 만두 같은 귀. 그 외에는 평양식 두터운 만두 귀다. 주식은 팔랑귄데 진짜 중요한 집 테크는 또 안 그렇다.


2014년 5월. 마포 전셋집으로 이사 올 때 회사 선배가 그랬다.


"전세로 하지 말고 그냥 대출받아서 사. 내가 마포 토박이잖아. 지금이 바닥이야"


3번의 전세 연장을 하며 2020년 현재 어떻게 되었겠나? 


딱 2배가 올랐다. 


그 당시 매매가 5억~6억이던 지금 전셋집은 10억~12억을 호가한다. 그 선배는 나를 볼 때마다 타박한다.


"내 말 좀 듣지 바보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잔소리에 나의 대답은...


"내가 울 엄마 얘기도 안 듣는데. 형 말을 들을 거 같아요!?"


어이없어하며 


"너 잘났다~!"


그렇다. 나는 엄마 말도 안 듣는다. 그런데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의 이야기를 듣겠는가?  결과론적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얄밉게도 그 말들이 다 맞다. 인생 선배들이 조언한 것들. 지나고 보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였다.


"편집실에만 있지 말고 좀 나가서 걷고 그래"

"넌 술이 약해 술 좀 마시지 마'

"평소에 운동 좀 해"

"엘리베이터 말고 계단으로 좀 다녀 버릇 해"

"짜게 좀 먹지 마"

"건강검진 결과 혈압이 다소 높게 나왔습니다. 추가 검사를 받아보시기를 권장합니다"

"쓸데없는 짓 좀 하지 마"

"물건 좀 싼 거 사지 마"

"늦게까지 폰 좀 보지 마"

"아침에 수영 좀 배워보지 그래"

"다 못 하겠으면 못 한다고 해"

"만족 좀 하고 살아라"

"집에서 스스로 연습하시면 좋아요"

.

.

.

수도 없이 많은 이야기들. 조언, 충고, 걱정... 모두 잔소리로 들리는 개썅마이웨이 성격. 그래서 나는 헬스장을 안 다닌다. 트레이너가 자꾸 일해라절해라 고나리 하니까.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고... 

그렇다. 내 성격의 핵심은 참견을 싫어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를 걱정하는 진심이어도 말이다. 못돼 쳐 먹었다기보다는 못 들어 쳐 먹었다랄까...


그런데 나이가 들어 쳐 먹을수록 나도 똑같이 잔소리를 해댄다. 고작 1~2년 선배인 주제에 후배들에게 일해라절해라 내가 다 해봤다... 너는 그러지 말아라.... 너는 꼭 뭐뭐 해라.... 아주 숨 쉴 틈을 주지 않는다.


내가 얘기하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값진 조언이고 남이 하면 잔소리.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 그렇게 나도 또 꼰대가 되어간다. 꼴에 예능 피디라서 순간 리액션을 잘 캐치한다. 예능 편집을 하다 보면 액션에 대해 리액션을 붙이는데 가장 좋은 리액션을 찾아서 바꿔치기한다. 조작을 한다. 흔히들 한다. 듣고 있는 후배가 한눈팔기 시작한다. 폰을 만지작 거린다. 초롱초롱 듣던 눈은 0.1mm 작아졌다. 그래 언제 밥이나 먹자 하며 자리를 파한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 책이나 말로만 안다는 것이 얼마나 가벼운 일인가. 고작 몇 년 먼저 살아봤다고 그 지혜를 후배에게 5분~10분 이야기한다고 전수가 될까? 


그래서 요새 되도록이면 젊은이(?)들에게 잔소리를 안 하려고 노력한다. 대신 가수 요조 씨가 몇 년 전 했던 어록을 이야기해준다. 젊을 땐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졸라 놀아라... 

https://youtu.be/IU9oPHhZif8


그런데 그 후배가 너무 충실하게 놀기만 하면 또 일해라절해라 한다. 


"야~ 노는 건 좋은데 일은 해놓고 놀아야지. 나이가 몇 갠데 내가 너한테 이런...."


어쩔 수 없다. 누군가는 꼰대 역할을 해야 한다. 아마 그 후배도 꼰대가 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꼰대 보존의 법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야 맘이 편하다. 꼰대는 인류 역사와 함께 해왔다. BC 1700년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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