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빔-Soul Beam> 제작기 4

그걸 한 번에 하니?

by entPD
image.png 99초 릴레이 전통 놀이의 마지막 도전 테이블 보 빼기 -KBS

방송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첫 번째 미션이었던 <99초 릴레이 전통 놀이> 게임을 스키즈가 한 번에 성공해 버렸다. 그리고 매우 당황하는 나와 작가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정말 망했다는 생각뿐이었다.


1번 만에 성공한 바람에 혹시나 방송 분량이 부족할까 봐 안 뛰어본 멤버들의 도전도 녹화를 했고. 미방분 방송에 넣어서 방송에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우스꽝스럽게 실패하며 큰 웃음을 주었다. 그렇게 우당탕 실수하는 것이 제작진이 계획한 완벽한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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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가를 세워두고 하니 너무 어려워서 꽃병으로 난이도 조절을 했다

나는 무려... 15년 전에 <1박 2일>을 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게임 난이도 설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게임을 쉽게 설계하면 방송 분량도 못 뽑고 싱겁게 끝나버리고

조금만 어렵게 설계하면 지리멸렬한 반복의 덫에 빠져 분량도, 출연자 체력도, 뒷 스케줄도 다 꼬여버린다.


그래서 이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하다.


그들은 바로 "진행요원"

image.png 시뮬레이션을 돕고 있는 진행요원, 빗나가는 고무신이 보인다

큰 규모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은 PD, 작가, FD 등의 고정 인력 외에 이들을 돕는 프리랜서 진행요원을 추가 투입한다. 규모 있는 녹화물의 경우 원활한 제작을 위해 고용하는 인력이다.


경험 많고 일을 잘하는 진행요원은 인기가 많아서 프로그램마다 모셔가려고 경쟁을 펼치기도 한다.


image.png 특히 어려웠던 고무신 받기 방송과 시뮬레이션 - KBS

<설빔>은 타임슬립 콘셉트를 녹인 프로그램으로, 현재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게임을 성공해야 한다. 그래서 기획 단계에서 다양한 게임의 시뮬레이션이 필수였다.


그래서 이 분야 전문가들인 진행요원에게 그 시뮬레이션을 부탁했다. 널찍한 스튜디오에서 소품을 쌓아두고 가장 적당한 난이도를 찾아 수십 번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한겨울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찾아낸 환상의 게임 난이도와 조합.


<1박 2일>의 베테랑 진행요원들이 10회 도전 끝에 겨우 성공한 <99초 릴레이 전통게임>


9회 정도 실패하고 10회 만에 겨우 성공하면 분량도, 재미도 충분히 뽑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image.png 포효하는 필릭스 -KBS

그런데, 스키즈는 한 번에 성공해 버렸다. 한 번의 성공으로 멤버들은 고함을 지르며 환호했고 스테이 팬들은 마치 자식이 서울대 합격한 것처럼 환호했다.


제작진은 세상이 망한 것처럼 사색이 되었다.


그 당시엔 그렇게 생각했으나, 녹화를 다 마치고 나서는 게임마다 분량이 충분히 차고 넘쳐서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 게임 99초 미션에서 지지부진하게 진행됐다면 팬들도, 제작진도, 스키즈도 지치고 매우 힘들었을 테다. 역시 일이 잘되려고 그랬다.

image.png 환호하는 스테이 -KBS

<1박 2일> 베테랑 진행요원들도 10번 만에 성공한 걸, 스키즈 멤버들은 한 번에 성공했다. 운인지 실력인지 모르겠지만 아마 스테이 팬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초인적인 집중력이 생긴 것이 아닌가 싶다.


여러 번 실패해서 애를 먹이다가 성공하는 판에 박힌 스토리를 계획한 나로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결과였다. 사람들은 진짜, 리얼, 반전, 기적을 더 좋아한다.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음방 후에 직캠을 올려달라, 10시간 녹화 분량을 다 내놓으라 하는 것은 바로 요즘 팬들이 원하는 것을 잘 대변한다.


날 것을 줘라, 가공하지 말고. 제작진의 취향대로 썰어서 요리한 것이 우리 입맛에 안 맞는다.

다이아몬드 원석을 달라, 조잡하게 커팅해서 보석을 돌멩이로 만들지 말라.



콘텐츠 생산, 가공 업을 하고 있는 PD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녹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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