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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t Apr 15. 2017

지극히 주관적인 스타트업 회고록

서울프라이스와 함께한 2016년 - 1편, 봄

#야망

모든 미친 듯한 얘기들과 진솔한 얘기들은 새벽 2시 술자리에서 시작된다. 벤처경영학과 술자리에서 2차를 간 우리는 자연스레 서로의 꿈에 대해 물었다. 나는 평소에 가지고 있던 나의 생각을 말했고, 그것이 김건영군에게는 일반적인 꿈보다는 야망으로 비춰졌나 보다. 다음 날, 김건영 군에게 전화가 왔고 야망이 큰 사람들끼리 한번 모여보자는 얘기에 그러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건영 군이 소집한 소위 '야망 연합’에서 이원준 군과 이세종 군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알던 정치외교학과 친구들과는 사뭇 다르게 이 친구들은 새로운 것을 사업화하고, 그것을 scale하는데 매우 관심이 많아보였고,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과 꿈을 이야기했다. 나도 그날 평소에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를 얘기했는데, 밥먹고 집에 돌아가기도 전에 아이디어의 사업화 가능성을 확인하는 모습들을 보고 실행력에 감탄했다.


#아이템

그렇게 몇 번을 만나며, 누가 사업을 하자 라는 말도 없이 자연스럽게 각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정치, 부동산, 드론, 족보, 교육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문제점을 살폈다. 그때는 왜 모이는 지에 대한 이유도 딱히 없었던 것 같은데 그냥 만나고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그렇게 카페를 전전하던 중 돈도 없는데 서울대입구 상권 가격이 너무 올랐고, 싼 곳으로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정작 우리 중 어디가 얼만큼 싼지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꽤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 우리는 로봇과 AI가 뛰어노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정작 길 건너편 가게 가격도 모른단 말인가. 이 문제를 더 파보니 그 누구도 제대로 이뤄놓은게 없다는 점과, 어렴풋이 생각하면 너무 힘들고 미치지 않고서야 못할 일이라는 사실이 우릴 가슴뛰게 했다. 나는 원래 휴학을 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러 외국에 취업을 할 생각이었고, 다른 둘도 학교를 졸업해야 하거나, 학회를 마무리해야 되었기 때문에 좋은 아이템이지만 나중에 다시 만나야 겠다는 생각으로 3월 5일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3월 5일 초밥좋은날에서 이원준 군과 김건영 군이 휴학하고 올인해볼 생각이라는 말을 들었고 나도 대안을 포기했다. 그렇게 팀이 시작되었다.


#봄, 카페

신기하게도 우리의 사업 상황 그래프는 계절의 특성과 너무나 맞닿아있었다. 봄은 설렘과 새로움의 기분 좋음을 안겨주었다. 모든 것이 새로운 시작이었다. 정말 사무실을 구하러 다니고, 일을 도와줄 친구를 찾고, 베타테스터를 모집하고, 우리를 홍보하면서 그 새로움은 기대감과 흥분으로 다가왔다. 우선 처음에는 카페를 전전했다. 돈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했던 우리는 카페가 결코 싸지 않다라는 걸 금세 깨달았다. 1인 1주문이 매너인 서울대입구 카페에서 우리는 각 아침 1잔, 오후 1잔, 저녁 1잔을 마셔야 했고, 아무리 싸게 마셔도 일 3만원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커피값만 한 달에 90만원을 쓸 거라는 계산을 쉽게 할 수 있었다.


#사무실

마침 그러던 차에 서울대 기술지주회사의 정신적 지주인 최 모 변리사님이 기술지주회사를 나와서 벤처캐피탈과 코워킹 스페이스를 차린다는 소식을 전해오셨고, 술자리를 가지며 사업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로 했다. 서울대입구 스틸에서 우리는 사업을 소개드리고, 사무실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다. 처음에는 아이템에 글쎄하며 의심하던 변리사님은 바퀴벌레 같이 화장실에서라도 하겠다라는 우리 팀의 마음가짐과 김건영 군의 도발적인 한 수로 좋은 조건으로 사무실을 임대할 수 있게 해주셨다. 우선 낙성대 운차빌딩에 위치하게 될 스프링캠프 1호점이 완공되기 전까지는 서울대 내 비더로켓 진행 공간 중 유휴 공간을 마련해주시기로 하셨다. 이 날 한 달치 도파민을 받았던 것 같다.


#가격 수집

사무실이 생긴 우리는 바로 프로토타이핑에 들어갔다. 나는 스토어별 가격 리스트를 보여주고 가격 비교를 보여줄 웹 사이트 개발을 하고, 다른 둘은 가격을 수집하고 다녔다. 둘 보다는 셋이 낫다고, 나도 운동도 하고 한 사이클을 경험도 할 겸 같이 수집하기도 했다. 패기 넘치게 1주일이면 다 모을 것 같다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서울대입구 상권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컸고, 메뉴판을 찍는 것에 불쾌감을 표하는 상인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점차 작업이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맛집 지도 제작 중이다, 블로그에 올리려 한다 등 다양한 핑계로 메뉴와 가격을 수집했고, 2-3주 만에 대략적인 서울대입구의 모든 가격을 모을 수 있었다. 이 작업에 있어서 또 한명의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는데, 나와 중국에서 룸메이트로 살며 군 입대를 위해 한국에서 체류중이었던 윤상윤 군이다. 윤상윤 군은 발로 뛰는 일에 강한 면모를 보였고, 이후 긍정적인 마인드와 거침없는 속도로 큰 힘이 되어주었다.


#개발과 베타테스트

그렇게 금세 첫 개발 작업이 완성이 되었고, 디자인은 형편 없었지만 우리가 하려는 것을 최소 기능으로 보여줄 수 있는 MVP(Minimal Viable Product)를 만들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벤처경영 3년을 한 나는 린 스타트업(애쉬 모리아)에서 보았던 것을 적용시켜보기로 했고, 현장 클로즈 베타테스트를 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리스트로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것을 우선순위로 보여줄 지 어떤 키워드를 검색하면 어떤 화면을 보여줄 지에 대한 알고리즘이 필요했고, 이에 대해 꽤 다양한 시나리오를 고려하며 초기 알고리즘을 구성하였다. 최소 개발이 완료된 후, 우리는 지인들 위주로 도움을 요청하여 약 80명의 베타테스트를 15분 간격으로 초대하여 웹을 써보게 하였다. 이 때 꼭 자신의 기기를 쓰게 했으며, 먼저 질문하지 않는 한 아무 말이나 가이드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행동을 관찰하고 wow point, pain point, 길을 잃게 만드는 사용자 경험 등을 중점적으로 정리하였다. 이때 수집한 정성적 피드백은 추후에 점차적으로 반영했고, 퀄리티의 중요성/지도 API/카테고리의 혼재 등 굉장히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것들을 미루지 않고 더 잘 반영하고, 충성고객군을 만들기 위해 단순히 테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닌 소통하는 서비스가 되기 위해 사전 허가를 받고 베타테스터 방을 카카오 오픈채팅방으로 만들었고, 우리가 업데이트한 것들을 실시간으로 공지하며 린한 운영을 해나갔다. 유저들은 점점 자신의 피드백이 반영되어 가는 것을 보며 서비스에 애정이 생겨나고 추후 마케팅, 이벤트나 리뷰 작성 독려 등에 있어서도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출시와 온라인 마케팅

그리고 4월 11일 우리는 오픈베타 버전을 출시하게 되었다. 중간고사 기간이 지나면 너무 늦어질 것 같다는 판단하에 다소 이르고 급하게 서비스를 출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마케팅 비용과 관련하여 팀 내 갈등이 있었지만, 우선 최소한의 비용으로 출시를 하기로 했다. 우리는 돈을 아끼기 위해 페이스북 등 SNS에 컨텐츠로 마케팅을 했고, 일부 컨텐츠는 시의적절하고 재미있게 만들어져 당시 상황으로선 크게 바이럴 효과를 누리기도 하였다. 이를테면 시험기간을 저격한 24시간 카페 best 7 컨텐츠 등은 오늘의 꿀팁 등 유명 페이스북 페이지를 카피한 것이었는데, 서울대입구 카페에 대한 정보가 부재하다보니 공유가 100회 이상되기도 했다. 또한 9x9 맛집 지도 컨텐츠 역시 100회 이상 공유되며 결정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유용한 가이드라인이 되어주었다.


#오프라인 홍보

오프라인 홍보 역시 진행했는데, T모 기업에서 했던 화장실 스티커 마케팅이 저비용으로 고효율이라는 판단하에 진행했지만, 학내 시설에 상업적 홍보에 민감한 학생들에게 질타를 받기도 했다. 현수막 역시 싸게 구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직접 걸러다니며 홍보를 했고, 포스터를 붙이고, 명함 형태의 전단지를 버스 줄에서 나눠 주는 등 발로 뛰는 노가다 마케팅은 거의 다 해본 것 같다. 처음에는 낯선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나눠주고 하는 것에 쭈뼛쭈뼛했지만 우리의 제품을 더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고등학교 앞과 셔틀 줄 등 온갖 곳에서 발로 뛰었다.


#지표

출시 한 달 후 우리는 월 5000명의 방문자를 확보했었고, 이는 우리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사실 지금 돌아보면 5천 명이 큰 숫자는 아니지만, 그래프 상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는 것을 보고 우리는 우리가 로켓임을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숫자는 단순한 지표지만, 우리는 지역 단위로 진행을 하다보니 학부생이 2만 명이 안되는 곳에서 상당히 높은 비율의 유저의 유입이 있었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지표 달성이 우리의 도파민을 마구마구 분비시켜주었다. 금세 스누프라이스라고 하면 직간접적으로 들어보거나 홍보물을 본 학생들이 많아졌다. 낙성대 사무실이 완공되며 우리는 이사를 갔고 더 본격적으로 사업이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력의 유입과 이탈

이렇게 마케팅을 하는 동시에도 가격 수집은 계속 되었고, 우리가 미처 모으지 못했던 서울대 내부, 낙성대, 고시촌의 가격 수집이 순차적으로 이루어 졌다. 이 과정에서 외대에 다니다 군 휴학을 한 도준석 군이 합류했지만 건강 상의 이유로 금방 다시 그만두게 되었다. 또한 개발이 아닌 대표 역할에 집중하고 싶었던 나는 집토스 이재윤 대표의 소개로 공주에서 상경한 컴퓨터공학도 김효진 군을 만나게 되는데, 무턱대고 개발을 하겠다고 올라온 패기에 감동했으나 생각보다 부진한 진척과 생활을 위한 월급을 받아야한다는 필요가 서로에게 이중 부담으로 겹쳐 이탈하게 되었다. 친한 동생인 조 모군 역시 파트타임으로 개발도 배우고 수집도 도와주기로 했는데 3개월 정도 함께 하다 하고 있던 일이 점점 바빠지면서 이별하게 되었다. 사실 대부분 친한 사람들을 많이 데리고 오며 돈을 주지 않았는데 이러한 것들을 여러모로 잘못된 것 같다. 친한 사람보다 능력과 열정있는 사람을, 많이보다는 소수정예를, 보상은 줄 수 있는 대로 주는게 깔끔하고 좋은 것 같다. 우리가 이 사업을 하며 얼마나 많은 보이지 않는 빚을 졌는지 모른다.


#수익의 발생

우리는 그간 유저만 생각했는데 자영업자들은 정작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했던 우리는 자영업자 상대 경험이 상대적으로 많은 김건영 군을 파견하여 자영업자 대상 고객 인터뷰를 실시하게 되었는데, 그 날 김건영 군은 3곳에서 돈을 받아오게 된다. 돈을 벌러간 것도 아닌데 돈을 벌어왔다는 사실과 첫 날 매출이 3건이나 발생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우리는 유사 업체 들의 광고비를 비교하고 월 5만원을 적절한 가격으로 설정하게 되었고, 월 15만원의 매출로 시작하였다. 그때는 막연하게 유저가 모이니까 돈이 되는구나라고 생각했고, 정밀한 비즈니스모델에 대한 진단 없이 실행력만 강조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실행력 하나는 기가 막힌 팀으로서 우리의 영업왕인 김 군은 한 달 내에 약 20 곳과 계약을 맺기에 이른다. 모든 것이 더욱 바빠졌다. 가격도 수집/갱신하고, 개발과 마케팅도 진행하는 와중에 영업이 진행되며 우리는 사업자 등록, 인감, 세금계산서 발행, 계약서 등의 페이퍼워크와 제휴점 스티커, 제휴점 앞 입간판 등 디자인 업무가 늘어났고, 이를 포토샵 편집 능력과 서류 작성 능력이 탁월한 이원준군이 전담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월 매출 150만원을 굉장히 급하게 달성하게 되었다.


#창업경진대회

이렇게 2달 안에 서비스, 유저, 매출 3박자를 갖춘 우리는 학내 외에서 열리는 창업경진대회 등에 참가하였는데 대학생 스타트업 다수가 아이디어만 있는 경우가 많기에, 우리는 많은 곳에서 선전하게 되었다. SK비상경진대회와 청년창업유망팀u300 등에서 각각 대상과 최종 3팀 본선 진출 등의 영광을 누리며 상금 매출만 1000만원이 넘게 되었다. 우리가 창업경진대회에 너무 매몰되지 않도록 최 변리사님이 많은 피드백을 주셨지만, 창조경제의 일환으로 발생한 많은 지원금과 상금은 우리를 더 열광하게 했다. 정말이지 이렇게 좋은 일만 가득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의아한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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