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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t Apr 16. 2017

지극히 주관적인 스타트업 회고록

서울프라이스와 함께한 2016년 - 2편, 여름

#신촌으로 가자

좋은 일만 가득했던 봄을 뒤로하고, 더운 여름처럼 우리의 피는 점점 더 끓어올랐다. 이때는 사업에 대한 성장하는 지표와 여기저기서 발표하고 다니는 비전으로 자기확신이 너무 강해져서 심지어 일기장에 ‘마크 주커버그가 하지말라고 해도 나는 이 사업을 할 것이다’라고 적기도 했다. 그래서 이미 비슷한 것 실패했어요, 그거 아무나 하는게 아니에요 등의 파괴적인 피드백은 가볍게 무시했다. 서울대 지역에서 데이터 수집을 90% 이상 완료하였고, 월 방문자 1만을 코앞에 둔 우리는 기로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테스팅보드로서의 서울대 지역에서 벗어나 전략적으로도, 시장 크기로도 매우 중요한 두 번째 지역인 신촌으로 확장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잘못 판단했던 것은 우리의 홈그라운드인 서울대 지역과 신촌 지역의 특성의 큰 차이를 가볍게 봤다는 것이다. 신촌은 훨씬 크고, 영업에 더 보수적이고, 멀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정식 팀원 간의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고 불화가 보다 자주 생기기도 했다.


#신촌어벤저스

고심끝에 신촌으로 가야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우리는 지원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역시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심윤허 군에게 방학 동안의 도움을 요청했다. 심윤허군은 개인적으로 나의 고등학교-대학교-동아리 직속 후배이며, 이전 프로젝트인 책임에서 개발을 도와주었기에 흔쾌히 응해주었고, 심지어 자신과 친한 김인겸 군, 김형우 군, 서광일 군, 이태헌 군, 박성환 군, 정주현 양, 김미경 양을 데려왔고, 나도 문영지 양을 데려왔다.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많아진 인력에 우리는 오티를 준비하고 사업과 해야할 일을 알려주었다. 직접적으로 우리가 알던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함부로 무급으로 쓸 수는 없었고 보상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대부분은 적은 금전적 보상보다는 경험과 사람, 배울 수 있는 것을 원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노는 것에 있어서 물적 지원과 술자리/MT, 코딩 교육 등을 제공해주기로 했다.


#한계점

이때까지는 사람이 자산이라고만 생각하고 비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은 냉정하게 얘기하면 자산이면서 비용이기도 하다. 다들 사업이 처음이고, 가격 수집이 처음이고, 가격 입력이 처음이고, 풀타임 전일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훈련 비용, 교육 비용, 관리 비용 등이 끊임없이 들어갔다. 정말 열심히 해주는 친구들도 있었고, 노가다성 업무에 지쳐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누구든 성장할 수 있고, 고급 인력이 하기 적당한 일을 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런 일들은 우리 수준의 조직에선 한 사람이 하기에도 족하고도 남았다. 개발이나 마케팅을 가르쳐서 실무에 투입하기에는 훈련 시간이 부족했고, 그러다보니 대부분 데이터 수집과 입력 일을 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중도 이탈도 발생했고, 모티베이션과 친목을 위한 술자리나 엠티도 잦아졌다. 당시에는 즐겼지만 마음 속으로는 조급함과 걱정도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신촌에서 수집 진척도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7월에 수집/가공을 완료하고 8월에 영업을 진행하고 싶었지만, 8월 초에 이대, 서강대 상권을 제외한 일부만 오픈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를 매니징하는 입장에서 속도에 아쉬움이 많아져 성숙하지 못하게 대응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런칭

지금 돌아보면 아쉬운 부분과 잘 못했던 부분도 많지만 여름 방학 역시 즐거움과 취함의 연속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았고, 사기가 드높았다. 몸이 지쳐도 마음은 즐거웠고, 맥주 한 잔으로 달래며 수집을 이어나갔고, 8월 2일 드디어 신촌프라이스를 런칭하게 되었다. 스누프라이스를 런칭할 때와 또 다른 기분이었다. 이 프로덕트를 위해 많은 동생들이 고생했고, 이제 서울대생만이 쓸 수 있는 학생 프로덕트가 아닌 진짜 사회로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신촌에서라면 영업 제휴 200개도 가능할 것 같았고, 월 천 만원의 수익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이 날 잠을 못이뤘다.


#개발과 디자인 외주

가격 수집이 메인이긴 했지만, 프로덕트 역시 업그레이드 할 필요성이 매우 컸다. 망고플레이트나 포잉 등을 보다가 우리 제품을 보면 한숨이 나왔다. 속도, 안정성, 디자인 측면에서 모두 개선이 필요했고, 내 역량으로 모든 걸 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외주 작업을 맡기는 결정을 하였다. 평소에 알고지내던 피로그래밍 출신의 프리랜서 개발자 정우철형과 옆 팀 김재두형의 지인으로 김은혜양을 소개받게 되었다. 두 분 다 전문적인 역량이 있지만 일시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고, 우리의 취지를 좋게 봐주신 덕에 시장 가격보다는 저렴한 가격에 기꺼이 외주 계약에 동의하였다. 그렇게 기존 개발/디자인을 맡고있던 나를 포함하여 프로덕트 팀이 3명으로 구성되었다. 우선 개발과 디자인 두 영역에서 내가 어쩌다 이렇게 만들게 되었는지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개선하고 싶은 점들을 문서화하였다. 가장 먼저 서버가 늘 갑자기 터져버려 나에게 암을 유발했던 호스팅 서버 php스쿨에서 디지털오션으로 옮겼다. 개발 단에서는 위치기반 API를 이용하기 위해 필수적인 https 작업이 이루어졌고, 지역별로 새로운 앱을 간단하게 만들 수 있도록 리팩토링을 하고, 미들웨어 개념을 장착하였다. 디자인 단에서는 기존 아이콘 UI를 직관적이고 아름답게 개선시키는 작업과 리스트 화면, 스토어 상세 페이지 등에서의 불편한 UX를 개선하였다. 자식같은 프로덕트가 개선되어가는 과정을 보며 매우 흐뭇했고, 내 실력의 하찮음을 돌아볼 계기도 되었다. 개발자적으로 사고하는 개발자와 디자인적으로 사고하는 디자이너와 일하는 것 자체도 너무나도 좋은 경험이었고, 이 둘의 trade-off를 조율하는 과정 역시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마케톤과 광고동아리

방학은 역시 혈기왕성한 대학생들이 넘쳐나는 시기이다. 나는 원래 알고 있던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연구원님에게 좋은 행사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고, 마케터를 위한 해커톤을 기업으로서 참가하게 되었다. 서울 4대 광고동아리들이 스타트업의 서비스를 어떻게 잘 마케팅할 수 있을 지에 대해 고민하고 발표하는 자리였는데, 더 좋았던 것은 우수팀은 실제로 실행해볼 수 있게 지원해준다는 것이었다. 서울프라이스의 경우 3팀이나 우수팀으로 선정되어 광고동아리들과 협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다. 이들은 약 2주간 실행했는데 어떤 곳은 굉장히 잘했고, 어떤 곳은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재미있었던 것은 같은 학생인데도 서비스 제공자와 수혜자 관계이다보니 본의아니게 갑을 관계스러운 느낌이 있었고, 이 사회에서 얼마나 을 파트가 고생할지가 훤히 보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떤 곳은 우리의 의견이나 허가를 구하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우리의 홍보물을 모든 대학 커뮤니티에 올려 당황스럽게도 했고, 어떤 곳은 우리가 제시하는 조건에 끌려 성실하게 사무실을 오다가 우리의 눈높이가 너무 높다고 중도에 이탈하기도 했다. 창의적인 대학생들과 유능한 디자이너들이 우리를 위해 밤을 새가며 영상과 홍보물,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은 정말 미안하고 고마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우리와 끝까지 함께 했던 광고 동아리 애드플래쉬는 매우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내주셨고, 그 대회에서 결국 수상했다.


#PR과제휴

언론 홍보를 하면 사용자는 아무도 안보는데 경쟁사, 다른 언론, 잠재적 파트너, 투자자가 본다는 말이 있다. 서울대 뉴스, 대학신문, 관악스타트업 등에 나오면서 우리에게 제휴 기회가 찾아오기도 했다. 유명 IT대기업에서 우리가 보유한 상권 데이터에 관심을 가져 수 차례 만남을 가지기도 했고, 유사한 서비스를 중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선배격의 스타트업 티엔디엔과 술을 진창 마시기도 했다. 신촌에서 홍보를 하던 중에 우리처럼 학생대상 쿠폰 사업을 하는 루덴스하우스라는 팀을 만나기도 했다. 우리만 하는 줄 알았던 고민을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해왔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고는 안정감과 무상감을 함께 느끼기도 했다.


#투자와 정부지원사업

pre A단계에서 투자를 받을 기회도 꽤나 있었다. 하지만 돈을 어떻게 써야할 지 계획이 없다, 프로덕트에 집중하고 싶다 등의 이유로 이리저리 돌려 거절하였는데, 처음에는 조금 더 가치를 키워서 더 높은 금액을 받고 싶은 욕심이었고, 나중에는 투자도 결국 빚이 아닌가 싶어 조금 더 확신이 생기길 기다렸던 것 같다. 대신 공짜돈이라고 착각했던 정부지원사업을 엄청 써댔는데, 우리는 무수히 많이 떨어졌다. 어떤 때는 서류에서, 어떤 때는 최종에서 떨어지며 우리는 다만 정부사업의 입맛에 맞지 않을뿐이라고 생각하며 위안삼았다.


#전략

무더운 여름이 끝나갈 무렵, 잘나가는 중견 스타트업인 B사에 다니고 있는 친구 김소연 양이 휴가를 내고 1주일 간 우리 회사를 관찰했다. 관찰하며 HR, 비용 구조, 고객 반응 등에 대해 상담을 해주었고, 외부적 시선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사실 비슷한 말을 다른 사람에게 들었을 수도 있지만 존중하고 믿는 사람의 피드백은 더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되는 것 같았다. 김소연 양의 관점에서 우리는 비즈니스모델이 명확하지 않았고, 점주 리텐션이 낮았고, 고객이 왜 쓰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또한 마케팅 파워 덕에 우리가 제공하는 가치에 비해 유저가 많았고, 영업력 덕에 유저에 비해 수익흐름이 좋았다. 이러한 지적들을 통해 우리는 잠시 논쟁과 앞만 보고 달리기를 멈추고 지금까지의 상황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삼위일체

이렇게 가격 수집 모듈은 김건영 군이 전담하고, 프로덕트 모듈은 내가 관리했다면, 마케팅 모듈은 이원준 군이 관리했다. 그러면서 최종의사결정 권한을 각 영역 책임자에게 위임하고, 더 빠른 의사결정과 행동을 위해 각 영역에선 논의없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을 배정하기도 했다. 이렇게 세 가지 역할로 나뉘어진 것이 효율적인 면도 있었지만 아쉬운 것은 방향성이 흔들리는 계기가 된 것 같기도하고,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기도 하다는 점이다. 최종 의사결정을 할 누군가는 결국 필요하다는 점을 간과했었다. 리더십을 의사결정과 실행력, 피플 스킬로 본다면 나는 실행력은 좋은 편이었지만 의사결정을 잘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또한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들에게는 잘 해주었지만 정작 우리 내부 사람들끼리는 많이 싸우고 배려해주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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