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t Apr 20. 2017

지극히 주관적인 스타트업 회고록

서울프라이스와 함께한 2016년 - 4편, 겨울

#먹고사니즘

가을의 수많은 비즈니스모델 찾기 시도와 피벗팅에도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우리는 보다 근본적으로 아예 다른 산업군으로 사업 방향을 변경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가을을 마쳤다. 우리는 그간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풀타임 전일제로 우리와 함께할 팀원을 추렸고, 오슬기 군, 백영준 군, 민영기 군이 합류하여 5명의 팀이 되었다. 하지만 장기화된 성장의 정체와 수익흐름의 부재는 졸업한 사회초년생으로서 회사로 서울프라이스를 다니는 이원준 군에게 부담이었고, 내부적으로 스타트업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생존 문제가 고민되기 시작했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코딩 과외라도 해야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계절처럼 우리 팀에게도 겨울이 오고 있었다.


#피벗

로컬 비즈니스와 자영업자 대상 비즈니스의 한계를 느낀 우리는, 보다 수익성이 보장되어 있는 산업군을 물색했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냈다. 그 중 하나로 시작한 프로젝트 ‘써머리'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skimm의 카피캣으로 메일로 뉴스레터 형식으로 신문을 요약해서 보내주는 서비스였다. 지금까지 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산업의 비즈니스를 시도하면서 우리는 비관련 분야의 신사업은 첫 사업과 똑같이 어렵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지속할 만한 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처음의 비전이나 열정 없이 수익성을 기준으로 아이템을 찾는 방법으로는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이디에이션

이렇게 저렇게 해보는 건 어때? 그건 이런 저런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 벤처경영학과에서 흔히 이루어지는 지난한 아이디에이션의 과정이 이어졌다. 사실 문제와 리스크가 없는 사업은 절대 없을 것이다. 다만 누군가가 '그건 저래서 안돼’라고 했을 때 원작자가 더 밀어붙이지 않고 수긍한다면, 거기까지인 것이다. 아이디어의 수명이 다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디어는 힘이 없다. 무언가를 지속하는 힘은 좋은 아이디어만으로 나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돈 안되는 서비스를 여러 개 가볍게 찍어내 볼 수도 있었고, 당장 돈 되는 무언가를 해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그 중간 지점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 취미 생활이나 좋은 경험을 하는 건 좋지만 그 뿐이다. 회사를 만드는 것은 좋은 경험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겨울잠

사업은 조용히 정리가 된다. 결국 이원준 군은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고, 4명 팀이 되었다. 스스로 burn out되었다고 많이 느꼈던 나는, 나 또한 정리하고 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서비스에 대한 아쉬운 마음과 좋은 팀원이 남아있고, 사무실이 있고, 돈이 있고, 시간이 있었기에 조금 더 시도해보기로 했다. 그 결과 커머스 관련 아이템이 2개 나오게 되었는데 서울프라이스와 느낌이 많이 달랐다. 가슴뛰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만큼도 리더 역할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팀원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여 결국 팀을 정리하게 되었다. 한동안은 그간 해왔던 사업을 정리한다는 것의 마음아픔과 매몰비용의 고려, 사회적인 시선에 대한 부끄러움 등 때문에 이성적으로 판단을 하지 못하고 붙들고 있었다. 하지만 확신 없이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쓰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느꼈고, 나 자신의 마음에 질문을 했을 때의 답을 따르기로 했다. 서비스는 당장 접지 않고 유지하기로 했다. 앞으로 어떤 기회가 생길지는 모르지만 겨울잠을 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100층짜리탑

하나의 기업을 일으켜 세우기란 높은 탑을 짓는 것 같다. 3층짜리 탑을 짓기 위해선 1층이 부실해도 괜찮지만, 100층짜리 탑을 짓기 위해서는 1층부터 순차적으로 아주 탄탄하게 지어져야 한다. 우리는 너무 조급했고, 그 시기에 해야할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을 빠른 실행력이라는 미명하에 타협했다. 그 중 가장 중요하지만 부실했던 1층은 왜 이 사업인가에 대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왜 스타트업인가. 왜 이 문제인가. 왜 이 솔루션인가. 왜 나여야 하는가. 사업을 구상하려면 시장을 공부하지말고 나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당연한 사실들을 우리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무너지고 나서야 배웠다. 


#미움받을용기

1년간 서울프라이스가 인생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사업과 나를 동일시하다보니, 사업이 잘 안되는게 내 인생이 잘 안되는 것 같아 많이 괴로웠다. 이유가 뭘까 고민을 많이 해봐도 마냥 외부의 환경적 요인을 탓할 수는 없었고, 내부에서 원인은 무조건 있기 마련이었다. 바꿀 수 없는 것은 없고, 모든 게 의사결정자의 몫이다. 그 말은 즉, 모든 잘못된 결과와 실패도 의사결정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지금 돌이켜봐도 정말이지 막막하고 어려운 숙제였다. 그리고 그걸 못 풀었다는게 너무 자괴감들고 괴로웠다. 혹독하리만큼 차가운 이 땅에 다시 뿌리 내릴 수 있을까. 그러다 미움받을용기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과거의 경험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현재와 미래가 완전히 달라진다고 했다. 똑같이 실패를 하더라도 나는 안될 놈이야...하는 사람과 정말 많은 걸 배웠다!하는 사람은 천지 차이라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은 팩트보다는 마인드셋이 결정한다는 생각이 내 마음을 강하게 흔들었고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나를 가장 신랄하게 비난하는 사람은 그저 나였던 것이다.


#그 후

어쨌든 쉬고 싶었다. 세상과 산업을 더 넓게 보고 싶었다. 사업을 하는 동안에는 너무 내 사업에 매몰되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월 19일. 정확히 1년 전 교환학생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다양한 선택을 두고 방황하던 그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미뤄둔 책도 읽고, 베트남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한량처럼 여기저기 알고 지내던 스타트업에 놀러 다녔다. 소중한 사람들도 양껏 만나고 부모님과 얘기도 자주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더 많이 생각했다. 운동도 하고, 5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있기도 했다. 급한 일을 처리하느라 신경쓰지 못했던 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들을 많이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쉬고 싶다고 징징댔을 때는 언제고, 쉴 시간이 넉넉히 주어지니 내가 쉬는 법을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다시 열심히 살기로 했다.

작가의 이전글 지극히 주관적인 스타트업 회고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