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식어버린 코인판... 왜 떴을까
1) coin market 관점
요즘 직장인 익명 SNS 블라인드에 올라오는 글이나, 카페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심지어 대학가에서도 어렵지 않게 어깨너머로 코인 얘기를 들을 수 있다. 빗썸 하루 거래액이 코스닥 거래액을 돌파하는가 하면 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는 거래소 업비트의 하루 이용자가 100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어떻게 작년만 해도 별 인기가 없던 가상화폐가 이렇게 까지 주목을 받을 수 있게 되었을까?
#낮은 진입 장벽
거래 접근성 측면에서는 장의 마감이 없고 24시간 돌아간다는 점을 제외하면 주식과 비슷하다. 하지만 코인은 시작하기가 무척 쉬운데, 투자하기 까지 길어야 5분 안에 모든 절차를 마칠 수 있는 것 같다. 주식 매매를 하기 위해서 증권사를 방문해야 하고, 여러 위험도 평가 검사와 주식 투자를 위한 공인인증서 발급을 해야하는 등의 절차가 없다. 비대면으로 언제 어디서나 간단한 인증을 통해 가입하고, 입금도 너무나 쉽다. 심지어 토스에서 바로 간편 구매를 할 수도 있다.
#낮은 러닝커브
주식만큼 공부할 게 많지 않은 코인 투자
정보 접근성 측면에서도 주식이 정보가 더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다. 공시 사이트에서 재무상태표 등을 볼 수 있기도 하고, 증권사에서 발행하는 애널리스트 리포트나, 주식 커뮤니티나 칼럼 등에서도 여러 의견을 볼 수 있다. 반대로 코인은 그 재단에서 발행한 백서(Whitepaper)와 SNS, 차트 외에는 더 깊은 정보를 구할길이 마땅치 않은데, 역설적이게도 이 점이 알아야 할 것이 많지 않은 점으로 작용해 투자를 쉽게 만든다.
#변동성
많은 분들이 코인판의 변동성에 놀라워한다. 비트코인 캐쉬가 하루만에 250% 오르기도 하고, 최근에는 리플이나 퀀텀이 2-3배씩 뛰면서, Fear of Missing Out(놓치는 것을 두려워 함)의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런데 높은 변동성은 코인만의 특징은 아니다. 파생상품 시장, 그리고 원유 옵션 등의 시장에서는 이미 이보다도 높은 변동성이 많이 일어난다. 물론 이러한 시장들은 개인들이 접근하기 훨씬 어렵다.
#잠재력
코인 열혈 지지자들은 비트코인 및 알트코인들이 기존에는 없던 잠재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한 점에서 알트코인들의 ICO는 스타트업의 IPO와도 닮아있다. 하지만 IPO와의 가장 큰 차이는, IPO는 Series A, Series B, Series C 단계를 거쳐 힘들게 힘들게 매출과 안정성, 성장성 등이 충분히 검증된 기업들이 몇 개월간의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법적으로 진행되는 반면, ICO는 아직 프로덕트도 나오지 않은 프로젝트들이 십 수장의 백서(Whitepaper)와 홈페이지, 업계 출신 팀과 유명한 자문단만으로 수 천억에서 수 조원까지의 크라우드펀딩을 수 일 안에 진행한다. 물론 잠재력이 있는건 맞지만, 인터넷 서비스들이 이미 하고 있는 서비스를 블록체인으로 대체하는 것 만으로도 크게 모금을 하는 것을 보면, 닷컴 버블과 유사해보이긴 한다.
2) 경제 관점
#한강의 기적, 지금의 한강은...
한국은 못 사는 나라였다. 이제야 인구 5천만이 된 자원빈국은, 한 나라의 경제를 결정 짓는 노동력, 시장, 자원 등 요인이 아주 열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우연히’도 세계를 가장 격렬하게 양분하는 두 이념이 한반도에서 부딪히고, 공산주의를 틀어막기 위한 미국의 원조를 독재 정권이 아주 자연스럽게 수출지향형 공업에 토스하면서, 중공업으로 나라 경제가 성장하게 되었다. 이게 90년도 정도까지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누구나 다 알듯이, 중국이 조선/철강/전자/부품 등에서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5년 전 쯤에는 우리가 일본/미국 등의 높은 퀄리티 제품과 중국의 저가 제품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껴있다는 말이 나왔고 우리가 한동안은 가성비로 승부했는데, 요즘은 중국이 vivo, haier, xiaomi 등 가성비마저 우리를 제치고 있다. (조선은 이미 무너졌다) 뭐 아무튼 삼성(전자제품), LG(전자제품), SK(내수=석유/통신사), 현대(=자동차), 포스코(=철강), 두산(=중공업) 등이 다같이 사이좋게 위기에 처해있는 상황이라, 기업에 다닌다면 사원부터 임원까지 불안해하지 않는 직장인이 없다.
#헬이 되어가는 경제
경제가 불안하니 기업은 겨울을 대비해 비용 구조 유연화한다고 정규직을 축소하고 채용을 줄이고, 있는 사람들도 권고사직하니 그간 유연하지 않았던 노동시장의 노동인구들은 배운게 오래 다닌 회사 내의 일이어서 퇴직 후의 계획을 세우기 아주아주 불안하다. 퇴직 후 제 2의 삶을 준비하기 위해 직장 다니는 동안 자기계발이나 퇴사 준비, 창업 계획, 부업 등을 했으면 좋았겠지만 2명이 할 일을 1명에게 야근 시키는 문화의 한국 기업에서 그럴 여유는 없고, 결국 노동 수익보다 임대 수익, 자본 수익 등을 노리게 된다.
#고위험자산의 성장성 악화
직장인들 사이에선 재테크는 항상 뜨거운 감자인데, 자본 수익은 결국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high risk, high return이라 자신의 위험 감수성향에 맞게 포트폴리오를 짜게 된다. 안전하게 예금자 보호되는 범위의 적금만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고위험 군에 투자하는 수요도 분명 많이 존재하는데, 지금까지 그러한 고 위험군 자산이 주식이었다. 그런데 주식들이 위험한 건 똑같은데 수익이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그래서 갈 곳 잃은 고위험군 자산이 해외투자 등으로 눈을 돌리던 찰나에 코인 시장이 혜성처럼 떠올랐다.
#중금리 부실화로 갈곳잃은 돈
꼭 고위험군에 투자하던 사람들이나 돈이 아니더라도, 전반적으로 돈은 갈 곳을 잃었는데,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은행에 돈을 넣어두는 건 정말 의미가 없어졌다. 그렇다고 주식하기는 공부할 여력이 없고, 펀드하기는 무섭고 수수료도 너무 세니까 어떡하지… 하는 돈들을 받아먹는 중금리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8퍼센트, 어니스트펀드, 렌딧 같은 P2P대출과, 와디즈, 크라우디 등의 덕투일치 크라우드펀딩, 테라펀딩 같은 부동산 담보부 P2P 대출과 쿼터백, 파운트, 에임 등 로보어드바이저도 등장했다. 하지만 P2P 대출은 시장이 커지면서 채권 부실화 경향이 심해졌고, 여러 채권 중 하나라도 부도가 나면 마이너스 수익률이 되어 많은 분노를 샀다. 크라우드 펀딩은 아직 성공사례가 미미하고 얼리어답터를 위한 신기한 제품 쇼핑몰화 되어가고, 로보어드바이저는 글로벌 인덱스 펀드에 투자한다는 점에서 글로벌 인덱스 펀드 대비 엄청난 매력을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결국 중금리 시장에서도 돈들은 갈 곳을 잃었다.
아파트나 임대형 부동산을 사기에는 적은, 하지만 은행에 넣어놓기에는 아쉬운 이 다수의 쌈짓돈-여유 자금들이 17년도에 길을 헤매고 있었다. 그러다 들어가기 쉽고, 배우기 쉽고, (지금까지는) 수익률이 높은 코인 시장을 만나게 되면서 엄청난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3) 인구 관점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식들
지금의 사회초년생~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미생들은 대부분 8x-9x년생이다. 이 세대는 X세대, N세대 등 여러 별명으로 불렸지만 한가지 확실한 특징은 대중문화의 부흥기에 자랐고, 부모세대가 베이비부머 세대인 덕에 유난히 인구가 많았던 세대라는 점이다.
#무한경쟁사회
수능 본 인구가 70만 명이 넘는 우리 세대에는 뭐든 경쟁이 치열했다. 어린 시절에는 영재 교육/유학 경쟁, 고등학교 입시에는 특목고 경쟁, 대입에는 입시 경쟁, 대학에 들어와서는 스펙 경쟁, 취업할 때는 취업 경쟁이 있었다. 우원재 시차의 가사에 보면 ‘뭐든 경쟁하라 배웠으니’라는 말이 나오는 데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경쟁은 효율화를 위해서는 좋은 수단이지만, 다양한 사고를 멸종시키고, 다수의 메인스트림을 따라가게 하는데, 그래서 우리는 수치화할 수 있는 성적, 연봉 뿐 아니라 행복, 인간관계, 여가의 질, 사랑 등 다양한 것을 점수 매기고, 남과 끊임 없이 비교한다. 그래서 어릴 적엔 누가누가 공부 잘하나 였다면, 취준생 때는 누가누가 좋은 직장에 가나 이고 이젠 누가누가 돈 많이 버나로 경쟁하는 것이다.
#분위기
많은 이야기들로 코인판을 설명했지만 사실 가장 주된 이유는 이러한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이다. 내 친구가 코인으로 1억을 벌었다. 내 주변에 코인으로 돈 번 사람이 많다. 라고 했을 때 최소 혹하거나 들어나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특히 헬조선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남 얘기, 특히 돈을 많이 번 남 얘기에 많이 영향을 받는다. 삼인성호라고 세 명만 호랑이가 온다고 해도, 믿는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은 주변에 30명 이상이 코인의 가치를 믿기 때문에 회의론이 기를 펴기 어렵다.
#게임과 함께 자라온 세대
또한 우리 세대는 사행성에도 익숙하다. 메이플스토리의 주문서, 마비노기의 인챈트, 리니지의 집행검과 믹스마스터의 조합 등 온라인 게임의 확률성 아이템과 함께 자라오며, 간접 도박에 울고 웃고 했던 것이다. 성인이되어서는 로또, 스포츠토토, 행운상자 등 사행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들이 망한 것을 거의 못 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