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 생태계가 어려워지고 있다. 앱 설치 광고비는 올라가고, 사람들은 점점 더 쓰는 앱만 쓴다. 앱 상위 차트를 보면 견고한 층이 있다. 사람들이 폰을 바꾸는 만큼 메신저, 포털 등 ’필수 앱’들이 다운받아지고, 카메라, 보정 앱들은 사진 찍는 것이 일상이 된 10대들 덕에 높은 다운로드 수를 기록한다. 게임과 중국 앱들이 한결같이 돈으로 인스톨을 만들어내고, 한마디로 새로운 앱이 차트를 기록하는 일은 거의 없다.
국내 및 글로벌 IT대기업이 판치는 10위권을 넘어가면 토스, 배민 등 유니콘이 되어버린 스타트업과 지그재그, 오늘의 집 등 카테고리 킬러들이 나온다. 트래픽만 모으면 돈은 어떻게든 벌리는 시대는 일찌감치 지났고, 유입되는 고객 당 매출을 내는 모델이 있는 곳들이 조용히 성장하고 있다.
플랫폼 집중화 경향이 심해지면서 플랫폼과 정면 경쟁을 하지 않고 그 위에서 사업하는 모델들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페이스북 기반으로 사업을 했던 피키캐스트, 딩고, 그리드잇이나 MCN, 광고 에이전시 들이 컨텐츠-광고 업계에 머물렀다면, 한 발 더 나아간 블랭크와 같은 미디어 커머스 회사가 많이 생겨났고, 공팔리터, 에이블리 등 플랫폼 기반의 사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테크에 들어갔을 역량을 더 후킹되는 컨텐츠를 만들고, 더 잘 팔리는 커머스 구조를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다.
IT 서비스들이 전반적으로 어려워지면서, 눈을 밖으로 돌리는 사업가도 많아지고 있다.
프리미엄 독서실, 1:1 PT, 독서모임 등 비요식 자영업의 오프라인 경험을 혁신하는 모델들이 나오는가 하면, 공유 사무실을 필두로, 코리빙, 공유키친, 공유 스튜디오 등 공간 비즈니스도 생겨난다. 야망있는 창업가들이 기존의 소프트웨어 중심의 스타트업 업계에서 비 IT업계로 눈을 돌리고 있고, 기술은 수단일 뿐이며 기술 없이도 돈을 잘 벌 수 있다는 걸 증명해나가고 있는 셈이다.
이 모든 것들이 어떻게 가능해졌을지 생각해보면 이는 value chain이 나눠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90년대에는 사무실에 서버 컴퓨터 정도 있어야 웹서비스를 만들 수 있었다면, 이제는 클라우드 서비스로 모든 걸 만들 수 있게 된 것 처럼 오프라인, 컨텐츠, 커머스 업계도 내가 모든 걸 다 구축해야하는 구조에서 탈피하고 있다.
공유 키친과 배달대행 앱은 요식업계 창업자가 음식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는 크리에이터가 컨텐츠 창작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고, 사입 대행 서비스와 쇼핑몰 구축 솔루션, 스마트스토어 등은 커머스 사업을 시작하기 전례없이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한마디로 내가 잘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사업 환경이 좋아지고 있다.
비 IT 업계에서도 IT 출신들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 있다. 하나는 최적화 기반의 사고를 한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인 애자일이 팀 운영에 쓰이게 된 것처럼, 주요 숫자를 측정하고, 끊임없이 개선하고, 관찰해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비 IT업계에서도 마진과 매출은 극대화되고, 비효율은 극소화된다. 그로쓰해킹이 모든 산업에 적용될 것이다.
또 하나의 이점은 확장가능성(scalability)에 대한 고려이다. 확장가능하지 않다고 여겨졌던 사업들도 어떻게 접근하냐에 따라 조 단위 비즈니스가 될 수도 있다. 실리콘밸리의 Juu이 전자담배를 혁신한 것처럼 넥스트 유니콘은 생각지도 못했던 영역에서 나오지 않을까 싶다. 혁신의 대상이 스마트폰 밖으로 넓어지고 있고, 창업가들이 할 일이 많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