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투자를 받을 것인가
VC들은 참 이상하다. 유저 중심으로 생각하라고 강조하면서 브이씨들의 유저인 창업자 중심으로 생각 안 하는 하우스들이 참 많다.
스타트업이 신규 유저 모객에만 집중하고 기존 유저 리텐션은 챙기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라고 나무란다. 하지만 정작 브이씨들도 물 붓는 격인 발굴에는 많은 에너지를 쏟지만, 사후관리에는 소홀한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결국 이렇게 되는 것은 보상 구조와도 연관이 높은 것 같다. VC업계에선 일반적으로 관리를 잘한다고 관리 보수가 팍팍 올라가지는 않는다. 대부분 관리에 대한 성과급이 따로 있지도 않다. 그렇다 보니 관리에 에너지를 쏟는 건 비합리적인 행동이고, 투심에 하나라도 많이 올리는 게 스타 VC가 될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다.
*그럼 어쩌라는 것인지?
'원래 다 그렇다'라는 말에 대한 경계가 시작일 것 같다. 스프링캠프 초기에 대표님과 술을 마시던 중, '스프링캠프도 스타트업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VC도 좋은 시장을 타깃 하는 펀드를 만들고, 좋은 전략으로, 좋은 팀으로 투자하면 넘사벽이 되는 것 같다. 더 나아가서 린하게 실험도 많이 하고, 차별화도 하고, NPS도 돌리고 그로쓰 해킹도 하면서 반복 개선해나가면 누구든 초기 투자계의 깡패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돈 주는 입장에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돈이 몰리면서 초기 VC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보통의 스타트업이라면 vc가 갑이고 앉아서 고르면 되는 문제겠지만, 잠재력이 큰 스타트업에 잠재력이 큰 시점에 넣으려면 결국 경쟁해야 하고 선택받아야 한다.
자금을 대는 financial investment만이 줄 수 있는 유일한 가치라면, 정부지원금, 자생, 개인엔젤조합, 신보/기보 대출과 얼마나 높은 밸류로 돈을 얼마나 빨리 넣을 수 있는가로 싸워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결국 펀드 큰 네임드 민간 VC가 다 해 먹는 구조가 될 것이다.
또한 꼭 그 이후의 신규 투자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함이 아니라, 후속관리를 잘해줄 때, 창업자들도 더 시간을 아끼고 성공률을 높일 수 있고, 생각보다 적은 노력으로도 창업가들에게 큰 가치를 줄 수 있는 것들이 많은 것 같다.
*구체적으로 뭘 줄 수 있을지?
#커뮤니케이션
-인사이트
창업가 출신 하우스들이 강한 영역이다. 프라이머나 본엔젤스 같은 곳들이 대표적일 것 같다. 하지만 그때의 인사이트가 지금의 시대 역시 동일하게 통할 까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도 있다. 내가 하면 인사이트지만 남이 들으면 간섭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한끝 차이로 조언이 꼰대질이 되기도 한다. 어떤 대표님은 간섭하지 않는 투자자가 좋다고 했는데, 좋은 의도로 한 조언이 간섭으로 느껴졌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밸류 애드가 적고 공감이 되지 않으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 인사이트를 주는 것의 한계인 것 같다.
-경청
문제 해결이 아니라 공감을 해달라고!라는 말처럼 때로는 백 마디 조언보다 가만히 들어주는 게 힘이 될 때도 있다. 어깨너머로 들리는 소문으로 창업자의 마음을 잘 이해하기로 유명한 심사역분들이 있다. 이런 분들은 젠체하지 않고도 스타트업에게 잘 대해주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리스펙을 받으시는 것 같다. 이건 뭔가 노력해서 이루는 영역보다는 스타트업을 돈으로 보지 않고, 그들이 보는 꿈과 바치는 노력에 진심으로 리스펙을 하고, 진심으로 애정이 있어야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분들은 차가운 사막 같은 IR 자리에서 따뜻한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되어준다. 반대로 이 업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스타트업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유식함을 과시하거나 비생산적인 질문으로 창업자를 공격하는 것은 가장 지양해야 할 행동일 것이다.
#HR
-채용
돈을 당기면 뭘 하나? 좋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 대부분의 IT 서비스는 농사나 공장이 아니기 때문에 큰돈이 들어갈 일은 많지 않고, 거의 사람과 마케팅에 투자한다. 마케팅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좋은 사람을 뽑는 것이 스타트업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역시나 똑똑한 대표 들일수록 좋은 사람을 데려오는 일에 많은 시간을 쏟는다. 상대적으로 회사 경험과 네트워크가 부족한 팀일수록 더 성장할 조직에 맞는 인재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한참 헤매는데, 이 부분을 도와줄 수 있는 프로그램 같은 게 있으면 정말 도움이 될 것 같다. 보통 정부 프로그램 등에서 인턴이나 학생들, 대졸 신입들을 뽑도록 장려하고 자리도 만들어주는데, 진짜 필요하고 중요한 포지션들은 거의 c-level급과 개발자들인 것 같다.
-교육
스타트업에서 직원으로 일하면 불안감이 엄습할 때도 많은 것 같다. 가지 않은 길이 후회가 되진 않을지, 사수가 없는 시스템에서 내가 잘하고 있긴 한 건지 불안하기도 하다. 그럴 때에 포폴사들의 실무자들을 교육하거나 서로 만날 수 있는 자리를 어레인지하는 것도 직원의 성장을 돕고, 결과적으로 스타트업이 보다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돕는 길일 것 같다. 전에 SK청년 비상 프로그램에서 다른 스타트업의 디자이너끼리 밥을 먹고, 개발자끼리 밥을 먹는 등 입주기업의 실무자 간 네트워킹을 주도해줬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
#PR
-네임밸류
투자를 받았다는 사실이 유저의 만족을 높이는 일과는 큰 상관은 없지만, 좋은 곳에서 받은 투자는 PR, 브랜딩, 채용에 유의미한 도움을 준다. 그래서 네임밸류가 있는 브이씨가 같은 조건일 때 훨씬 유리하다. 하지만 네임밸류라는 것은 결국 얼마나 빅딜을 들고 있었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배달의 민족이나 하이퍼커넥트 같은 딜을 일찌감치 넣는 것 외에는 따로 쌓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재무
-공간
공유사무실을 운영하며 저렴하게 공간을 제공해주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창업했을 때를 떠올려보면, 돈이 너무 없고 사무실비는 아까워서 카페 전전하던 우리에게 스프링캠프에서 사무실을 저렴하게 쓸 수 있게 손을 내밀어주신 것이 기억에 남는다. 잘 나갈 때 손을 내밀어주는 것은 기억에 안 남는다. 정말 춥고 배고플 때 단칸방이라도 준 사람은 잊지 못하는 것 같다.
-후속투자
첫 구매가 초기투자리면, 재구매에 해당하는 것이 후속투자겠다. 초기 투자 하우스더라도 펀드 규모가 충분히 큰 하우스라면, 지분을 희석시키지 않기 위한 팔로업 투자를 한다. 팔로업 투자는 보통 이미 정기적으로 주요 지표에 대한 보고를 받는 기존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미 다 아는 상황이기에 별도의 까다로운 IR 없이도 빠른 속도로 넣는다. 또 기존 투자가 팔로업을 들어오는 것은 망설이는 다음 라운드 투자자에게도 긍정적이게 작용한다. 피가 마르는 IR을 단축시켜줄 수 있다는 점에서 후속투자는 초기 투자자가 가질 수 있는 좋은 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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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모든 것을 갖춘 '완벽한' VC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완벽한 VC가 되기 위해서, 한 장의 패라도 더 쥐기 위해서 노력하고 창업가를 진정으로 위하는 VC는 아름답다. 스타트업들이 투자받고 싶어 하는 좋은 VC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