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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치버 Nov 06. 2022

내 꿈은 어디에 上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

"어제 선생님이 장래희망에 대해 생각해오라고 얘기했지?”

“네~!”

“오늘 수업 끝날 때까지 칠판 옆에 있는 종이에 자기 장래희망을 적고 집에 가면 돼. 반장 로운이가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교무실로 가져와.”

“네, 선생님.”

모든 반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 보이니, 반장인 내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난 아직도 장래희망을 무엇으로 정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어떻게 하루 만에 평생 함께해야 할 직업, 나의 하나밖에 없는 꿈을 정할 수 있을까. 그런데 나만 빼고 모든 친구들이 장래희망을 다 정한 것 같다. 난 정말 조금도 감이 잡히질 않는데….

“희원아, 넌 장래희망 정했어?”

“응, 난 패션 디자이너! 유튜브에서 패션 디자이너 인터뷰하는 거 봤는데, 나한테 딱인 거 같아. 우리 엄마가 옷도 많고, 옷 입는 거 좋아하시거든. 나도 그 피를 물려받았나 봐.”

짝꿍 희원이의 해맑은 미소를 보니 부럽기만 하다. 희원이의 미소 뒤로 패션 디자이너가 될 모습이 생생히 그려진다. 나는 내 모습을 거울로 아무리 쳐다봐도 어떤 어른이 될지 조금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영원히 학교에서 졸업하지 않고, 학생으로만 살고 싶다. 그러면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될 텐데…

“아… 부럽다. 난 아직 장래희망 못 정했어. 어떡하지….”

“뭐가 되고 싶은데?”

뭐가 되고 싶냐는 희원이의 질문에 말문이 막힌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 같다. 난 꼭 무엇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직업만이 장래희망인 걸까.

“되고 싶은 건 아직 모르겠는데… 장래희망에는 꼭 직업을 적어야 하는 거지? 사실 작년에 엄마한테 물어보고, 엄마가 추천해줘서 변호사라고 적었는데, 직업은 정말 잘 모르겠어. 그냥 좋아하는 걸 적으면 안 되나….”

“장래희망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적어야 할걸? 모범생 반장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줄 몰랐는데, 음… 선생님하고 상의해보는 건 어때?”

“응….”

수업이 끝나고 나만 못 쓴 장래희망이 적힌 종이를 들고 교무실에 갔다. 항상 수업시간에 궁금한 것을 물어보러 오던 편안한 곳이었는데, 교무실 문이 오늘따라 성의 대문같이 거대하게 느껴진다. 평소에는 경쾌하게 선생님 책상 앞으로 걸어갔는데, 감옥에 갇혀 두 발이 묶인 죄수가 된 것처럼 발걸음이 무겁다. 항상 나를 예뻐해 주시고, 자랑스러워하던 선생님인데 장래희망 없는 나에게 실망하시겠지.

“응, 로운아. 장래희망 기록지 가져왔구나. 근데 표정이 왜 이렇게 안 좋아?”

“선생님… 저 사실… 못 썼어요.”

“음, 그러네? 로운이만 안 썼구나. 장래희망 아직 못 정했니?”

“네… 제가 뭐가 되고 싶은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맞아, 장래희망을 정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야. 부모님하고 상의해봤어?”

“어제 엄마하고 얘기했는데, 엄마는 작년처럼 변호사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어요. 제가 정한 직업이 없어 알겠다고는 했지만,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은 언제부터 선생님이 하고 싶으셨어요?”

“사실 선생님 장래희망은 선생님이 아니었어.”

“네?”

나는 선생님의 답변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생님의 꿈이 선생님이 아니었다니.

“선생님은 사실 선생님 엄마도 선생님이시거든. 나의 꿈이었다기보다는 선생님 엄마의 꿈이라고 할까. 선생님도 로운이처럼 학교 다닐 때 딱히 꿈이 없었어. 하지만 로운이는 로운이만의 꿈을 찾아보면 좋을 것 같아. 선생님은 아직도 꿈을 찾고 있거든.”

평소 나에게 따뜻한 선생님이지만, 지금 전해지는 선생님의 따뜻함은 땀이 날 정도로 더운 뜨거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왠지 선생님의 눈이 슬퍼 보인다.

“제가… 꿈을 찾을 수 있을까요? 선생님도 꿈을 못 찾았는데….”

“꼭 직업을 적어야 되는 건 아니야. 로운이가 일상생활에서 잘하고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봐. 로운이가 잘하는 것이 너무 많아서 고민되나 보다. 무엇이든지 잘하잖아, 우리 로운이는.”

“사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건 해야 하니까 하는 거고요. 제가 좋아하는 건… 딱히… 뭐 굳이 있다면 분리수거 정도… 인 것 같아요.”

“분리수거?”

“네,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수거할 때 제일 행복하고 시간도 빨리 가요. 베란다에 쌓였던 플라스틱, 캔, 종이들을 분리해서 버리면 지구가 깨끗해지는 것 같고, 제 마음도 뿌듯해져서 즐거워요. 음… 그럼 저는 환경미화원이 되면 되겠네요!”

“응? 꼭 환경미화원이 아니어도 환경과 관련된 직업을 살펴봐도 좋겠는데? 폐기물을 처리하는데 필요한 ‘폐기물 처리기술전문가’라는 직업도 있고, 친환경 소재로 옷을 만드는 ‘에코 패션 디자이너’라는 직업도 있어. 그것 말고도 ‘환경공학자’, ‘환경 전문 변호사’ 등등 분야별로 환경 관련된 직업이 정말 많아. 로운이에게 딱 맞는 장래희망을 찾아낼 수 있을 거야.”

“아… 그렇군요. 그런데 조금 어려운 것 같아요. 그리고 엄마하고도 얘기해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 집에 가서 어머니와 상의해보렴.”

학교에서 장래희망 얘기가 나온 뒤로 마음 편한 날이 하루도 없었는데, 모처럼 발걸음 가볍게 집으로 간다. 분리수거를 평생 하는 직업이라면 매일매일 행복하겠는걸.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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