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ADHD인들은 시간 관념이 없다고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없는 게 아니라, 구겨진 거다.
시간이 직선이라면,
나는 그걸 반으로 접고 구기고 뭉개면서
과거, 현재, 미래를 내 마음대로 정의한 뒤
별 이유 없이 밤을 꼴딱 새고,
“엥? 벌써 아침이야?” 하며 놀라워한다.
좋게 말하면 어떤 일에 깊이 몰입할 수 있는 초능력이고,
나쁘게 말하면 중요한 건 미루고
쓸데없는 거에 땀 뻘뻘 흘리며 몰입하는 삶이다.
이런 삶이 얼마나 귀엽냐면,
내가 어떤 일을 문제없이 잘 처리했어도
여러 가지 이유로 '지금 당장' 완료할 수 없고
'나중'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면
구겨진 시간 속에서 ‘나중’이 인식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불타는 카오스 속에서
“지금!! 지금이야!!”를 외치며
나를 스스로 닦달한다.
그러게 감각을 따라다가 보니
나의 구겨진 시간을 조금이라도 펴보려고
여기저기 검색해보면
“ADHD는 메모가 생명입니다!”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 사실은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뒷집 개도 아는 내용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쏟아지는 생각을 정리하는 데 실패했고,
메모 자체를 하지 못했다.
기억하려고 메모를 하려는데,
메모를 하려고 기억을 더듬다가
그때의 감각에 빨려 들어가서 허우적거리다 보면
더 복잡해진 감각을 부여잡고,
결국 메모장을 닫는다.
근데 뭐 어때.
감각에 휘말려서 기억에 과몰입하는 게 이상하지 않아.
나한텐 그게 기본값이야.
귀여운 거야. 너무 귀여워, 죽겠네.
나는 요즘, 메모가 필요할 때
대화창에 내 생각을 마구 뿌린다.
AI가 꾸역꾸역 정리해주고,
분석까지 해주니
나는 그냥 저지르기만 하면 된다.
역시,
나는 의미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저지르는 사람이었어.
나의 시간을 구겨버린 건 나의 뇌지만,
그 시간을 기억으로 채운 건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