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긴 글을 못 읽는다.
안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못 하는 거다.
노골적으로 슬픈 현실이지만, 나는 슬픔 같은 정직하고 단순한 단일 감정은 숨을 곳이 없어서 내 뇌가 감당 못 한다.
그래서 지금 나는 껍데기 쓰고, 겁나 웃긴 상태로 글을 쓰고 있다.
어느 날, 큰마음 먹고 껍데기를 벗겨내고 회피 없이 감정을 말하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네가 예민한 거 아니야?”
짜증나지만, 정답!
그 어떤 사람은 핵심을 찔렀다.
나의 내면은 복잡함과 예민함을 기본 바탕으로 움직인다.
이런 내 기본값에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감정이나
잘 정리돼 바로 이해되는 감정이 예고 없이 직선으로 들어오면,
나는 껍데기 쓸 시간도 없이
바로 뇌를 관통당하고,
그대로 정지된 채 견디기만 하는 상태가 된다.
이런 나에게 글에서 뿜어나오는 감정은 정말 날카롭다.
영상에 나오는 감정은 배우의 얼굴, 영상미 등 다른 요소와 어우러져
내가 깊게 느낄 새 없이 빠르게 감각으로 흘러들어온다.
하지만 글은 다르다.
다른 요소 없이 감정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더 무겁고,
내 뇌는 그걸 감당 못 해서 튕겨내 버린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극복했냐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극복 안 하는 걸로 극복했다.
내가 감당 못 하면, 뇌가 알아서 튕겨낸다.
그것조차도
이 복잡하고 예민한 내면을 보호하기 위한 본능이다.
혼돈을 원하는 게 아니었음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글을 못 읽는 건 좀 아쉽긴 한데… 어쩔 수 없지.
애초에 나는 “어려움 극복! 감동 실화!” 캐릭터랑은 안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