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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해부기록] 지옥에서 온 컨셉충

by 엔트로피


과몰입 폭죽으로 지옥에서 온 컨셉충,

그게 바로 나지. ADHD의 뇌가 과몰입한다는 건, 오늘도 열심히 일하는 개미도 알 테니 내가 굳이 말해야 하나 싶지만, 글 쓸 때 주어 빼먹고 맥락 날아가는 게 당연시되는 게 나의 세계라 현실 눈치 보며 굳이 적어본다.


요즘 어딜 가도 ADHD나 심리 관련 콘텐츠를 보면 다 눈물 파티라서, 단일 감정인 감정 직사광선에 기겁하는 나 같은 회피 인간은 설 자리가 없다. 자비 없는 감정 직사광선에 대응하고자 나는 슬프지 않다, 나는 진짜를 보여줄 것이다 외치며 진심에 과몰입하다 보니, 진심이 컨셉이 되는 기현상이 지금 나의 현재다.


사실 이런 기현상은 내가 이 세상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신호다. 스마트폰 안에 넘쳐흐르는 정보를 빠르게 판단하고 분류하려면 당연히 깊게 고민하기보다 0.5초 만에 즉각적으로 판단하고 스크롤 내려야 하는데, 혼돈의 진심이 이 세상에 살아남으려면 컨셉화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나의 머릿속에는 정말 다양하고 복잡한 생각, 아이디어, 감정들이 두통 올 정도로 폭죽 터트리고 있다. 이 폭죽을 표현할 때 주제에 안 맞는 건 버리고 주제에 맞는 불꽃만 남겨야 하는데, 전부를 표현할 수 없어 가장 화려한 불꽃만 남기니 나 스스로 '이건 컨셉이다'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진심을 버리지 않았다. 그냥 잘 포장했을 뿐이다.

순간적인 과몰입으로 맥락과 논리가 다 박살 난 나의 뇌 상태를 표현하려면 뇌가 정지되지 않게 방어 기제가 필요하고, 나에게는 컨셉이 뽁뽁이 같은 완충제 역할을 하는 셈이다.


나는 진심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무리는 포기했다. 마무리라는 단어만 들어도 "이 컨셉은 완벽하지 않은 것 같은데, 차라리 지금 끝내지 말고 나중에 마무리할까?"라는 생각이 자동으로 든다.

그럼 마무리 안 하는 컨셉 추가하면 되지!

이제 끝! 아닌 진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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