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금의 적정선

by 페르소나

업데이트 된 카톡 프로필을 보다 우연히 예전 직장 동료의 결혼 소식을 알게 되었다. 나는 퇴사를 앞두고 있었고, 바로 후임으로 들어 올 그 친구에게 인수인계를 해줘야 하는 상황.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친구는 "대리님~"하면서 나를 많이 따르고 좋아했다. 부담감이 없진 않았다. 좋아하는 감정을 이렇게나 표현하는 사람을 직장에서 만나 본 건 처음이었으니까. 내 뒤에 올 친구는 나만큼 힘들게 일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진심이었으니 그 마음을 알아봐 준 거라 생각했다. 고마운 마음에 더 잘해줬다. 퇴사 후 밖에서 밥 한 번 먹고 카톡을 몇 번 주고받은 후로 연락이 끊긴 지 2년이 되어간다. 그때가 그 친구가 남자 소개 받고 연애를 막 시작할 때였는데 그 사람과 결혼을 하는 모양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연락을 하고 싶은 마음 한 편으로 그 친구와의 심리적 거리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친구와 함께 보낸 시간, 연락을 안 한 2년이라는 기간. 2월에 있을 결혼식에 나는 과연 참석할 수 있는지. 아니, 참석 가능 여부를 떠나 참석해서 축하해 주고 싶은지 아니면 축의금으로 마음만 전하고 싶은지. 요즘 결혼식 축의금은 어느 정도인지. 그 친구도 나도 부담스럽지 않은 축의금의 적정선은 어디인지. 축의금이라는 명목 하에 머릿 속에서 계산기를 두들겼다.


결혼식에 참석하여 축하하는 건 부담스럽고 마음은 전하고 싶다는 게 내 결론이다. 돌려받지 않아도 좋다. 그것까지 계산에 넣으면 복잡해진다. 결혼이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던가. 그렇게 계산기를 돌려 내린 나의 축의금의 적정선은 7만원.


나는 내 나이 또래에 비해 경조사비 지출이 크지 않다. 친구나 지인이 많지 않기도 하고, 유유상종이라고 가까운 친구들은 결혼에 대해 크게 생각이 없기도 하지만, 오랜만에 연락해서는 청첩장 먼저 돌릴 싹(?)을 가진 친구였다면 애초에 사귀지도 않는다. 몇 년 전 결혼한 고등학교 친구에게도 내가 먼저 연락해서 축의금을 보냈는데, 친구는 연락해줘서 고맙다며 연락을 안 한지 오래돼서 먼저 청첩장을 보내기 미안했다고 했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갔다. 나였어도 그랬을 테니.


친구는 결혼식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밥을 사줬다. 예전부터 이렇게 감사할 줄 아는 친구였으니 나도 자연스레 축하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 후로도 자주 연락하며 지내는 사이는 아니지만 얼마 전 아기가 태어난 사진을 프로필로 해두었길래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이제는 예전만큼 가깝지는 않지만 한때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의 앞날을 이렇게라도 응원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축의금 보다는 오히려 부의금이 쉽다. 상대방과의 거리감을 생각할 필요도, 머릿속에 계산기를 두들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해본 적이 거의 없지만 올 해는 두 번 했다. 한 번은 왕래가 거의 끊긴 큰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고, 다른 한 번은 친구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다. 이제는 서먹해진 친가 식구들을 만나는 자리가 불편하긴 했지만, 장례식장이 가까운 거리였고 편찮으실 때 한 번도 찾아뵙지 못한 죄송스러운 마음에 꼭 가야만 했다. 의외로 친가 식구들이 와줘서 고맙다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피했다면 어쩌면 평생 후회했을지 모른다.


어릴 땐 친구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부의금은 커녕 위로를 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20대 초반 외할버지의 장례를 겪은 후에야 알게 됐다. 괜찮냐는 문자 하나 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는 걸. 어른들이 흔히 하는 말 중 경사는 몰라도 조사는 꼭 챙기라는 말의 의미를 그때 처음 생각해 본 거 같다. 처음 겪어보는 장례식이라 많이 슬펐는데 생각도 못한 대학 동기의 문자 하나로 위로를 크게 받은 나는 다짐했다. 앞으로 누군가의 슬픔이나 어려움은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고.


세월이 흘러 부조금을 카카오페이로 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이번 친구네 할아버지의 부의금을 카카오페이로 하게 됐는데 우연히 통화를 하다 알게 된 소식에 계좌번호를 물어볼 겨를도 없었다. 너무 멀어 직접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친구에게 계좌번호를 받는 게 맞는지 아님 카카오페이로 보내는 게 맞는지 두 가지 갈림길에서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마침 카카오페이에 부의금 봉투가 있기도 했고.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카카오의 상술(?)에 넘어간 거 같다.


축의금이든 부의금이든 그 적정선과 전달방식에 대한 고민으로 많은 에너지를 쏟을 수밖에 없지만 기꺼이 시간을 내어 고민하고 결국 마음을 표현해 주는 사람들 덕에 일생의 큰 경조사를 무사히 치를 수 있게 되는 거 같다. 그 잠깐의 시간과 에너지로 가까운 인연이든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든 그 누군가에게 응원과 위로를 줄 수 있다면 언제든 내어주겠다. 상대방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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