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딧불

by 페르소나

오랜만에 멜론차트를 보다 익숙한 노래 제목이 눈에 띄었다. 황가람의 나는 반딧불. 원곡은 중식이라는 가수가 불렀다. 가수 이름이 특이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얼마 전 내가 마음을 고백한 그 친구 때문에 알게 된 노래라 더 기억에 남는다. 요즘 유행하는 노랜가? 생각하는 찰나 손가락은 이미 재생 버튼을 눌렀고 재생과 동시에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그때를 떠올렸다. 불과 몇 개월 안 된 그때를 추억이라 하기 애매하지만 왜인지 오래전 일인 것 같아 추억을 꺼내보는 마음으로 노래를 끝까지 들었다.


그 친구가 선물로 줬던 매일 쓰는 텀블러를 보면서도, 함께 만들었던 기계식 키보드를 매일 쓰고 있으면서도 아무 생각이 없던 나는, 노래 하나로 그 친구를 떠올리며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노래는 정말 힘이 강하다는 생각을 새삼 다시 하게 된다. 일에 치여 지쳐있던 내가 그 짧은 몇 분으로 금세 기분이 좋아지는 걸 보면. 어쩌면 그때부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연히 누르게 된 카톡 프로필의 노래를 듣고 큭큭 대던 그때부터 그 친구에게 특별한 감정이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유방암 진단을 받아 올 초 1차 수술을 마친 엄마는 6개월 후인 7월에 2차 검진과 추가 수술이 필요했다. 엄마는 큰 수술도 아니니 굳이 병원까지 올 필요 없다고 만류했지만 나는 연차를 내고 엄마와 함께 병원 입원실에 있기로 했다. 병원이라는 환경이 주는 왠지 모를 긴장감으로 책을 읽어도 집중이 잘 되지 않았던 나는 핸드폰에 있는 어플을 이것저것 그저 아무 의미 없이 눌러보고 있었다. 언제 받았는지도 모르는 어플을 삭제하거나, 평소 잘 들어가지 않는 어플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카카오톡 목록에 있는 친구들의 프로필을 보며 근황을 살펴보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평소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프로필 뮤직이 왜 그날은 유독 눈에 띄었을까.


멜론과 카톡을 연동해 두지 않아 프로필 음악은 1분 미리 듣기만 할 수 있었는데, 그 친구가 올려 둔 중식이의 나는 반딧불 앞소절을 듣자마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떤 조롱이나 비웃음이 아닌 말 그대로 순수한 웃음 그 자체가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것이다.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나는 눈부시니까


노래 가사로만 본다면 사실 웃음이 터져 나올 만한 부분이 없다. 나도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웃음이 났는지 모르겠다. 그 친구의 평소 태도나 행동이, 그 친구가 말해 준 사수한테 느끼는 감정 등이 노래가사랑 너무나 잘 맞아서, 더구나 평소 상남자 포지션을 추구하는 그 친구가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를 프로필 뮤직으로 해뒀다는 사실이 나를 웃게 한 게 아닐지. 뭐랄까. 연예인 유승호가 영화 집으로로 한창 인기를 누리던 어린 시절, 일명 씽씽이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친구들한테 '싸인해 줄까?'를 외치고 다녔던 에피소드를 들었을 때의 감정과 비슷하다고 할까. 1분 동안 노래를 듣던 그 짧은 순간에 그 친구의 통통한 볼살을 떠올리며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그 친구가 알게 되면 경악을 하겠지만.


그때 마침 그 친구한테 연락이 왔었는지, 아니면 내가 먼저 연락을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쨌든 통화를 잠깐 했는데, 친구가 말했다. 몇 개월 전 고시원 생활을 하며 힘들었던 때 들었던 노래라고. 그 얘기를 듣고 왜인지 미안해져 사과를 했다. 짧은 통화를 끝내고 카톡을 이어갔는데 별 의미 없는 얘기를 주고받았다. 늦은 시간이라 병실 내 불은 다 꺼져있고 나는 자려고 간병인 침대에 누웠다. 깜깜하고 고요해진 병실 안. 그 친구와 카톡을 주고받으면서 숨죽이며 큭큭대던 게 생각난다. 그 친구에게는 병원에 있다고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때 뭐가 나를 웃게 했을까. 그 친구에 대한 마음이 좋아하는 감정으로 발전한 게 그때부터였을 거라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그 친구와의 에피소드는 노래 한 번 듣는 것으로 흘러 보낼 잔잔한 추억으로 남게 됐다. 좋아하는 감정을 조금씩 정리해 가고 있지만 어쩐지 미안한 감정은 쉬이 정리되지 않는다. 어릴 때 동네 언니 오빠들과 했던, 일명 벨튀를 하며 느꼈던 죄책감이 든다. 남의 집 벨을 누르고 "누구세요?"라는 소리가 벨 너머로 들리면 튀는, 어릴 때 흔히 했던 놀이처럼 나는 그 친구의 마음을 건드려 놓고 도망쳤다. 무려 세 번이나. 물론 내 마음이 장난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관계에 서툰 성숙하지 못한 내 행동으로 그 친구에게 상처를 줬다.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사과를 하고 싶지만 이 마저도 내 마음 편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만 포기하게 된다. 어쩌면 진짜 그 친구를 위하는 일은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미안함과 죄책감의 감정은 오롯이 내 몫이다. 내 감정의 배설로 상처 주는 일은 세 번이면 되었다.


그저 조용히 그 친구의 안녕을 빌어본다. 2025년에도 2026년에도 그리고 그다음 해 그 그다음 해에도, 개똥벌레여도 좋으니 스스로를 부정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별이 되지 않아도 좋으니 늘 스스로 빛날 수 있는 당당함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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