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기능 중에 잘 사용하고 있는 기능 중 하나. 집중모드를 사용하여 내 시간을 방해받지 않는 것이다. 잠을 잘 자지 못하면 날카로워지는 나는 적정한 수면시간을 지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데 대략 8시간 정도 자면 그날은 컨디션이 굉장히 좋은 상태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회사생활을 하면서 내가 원하는 만큼의 수면시간을 지키기란 힘든 일이라 스스로와 7시간으로 합의를 봤다. 그마저도 지켜지지 않는 날이 대부분이지만. 어쨌든 내 휴대폰은 10시 반 이후로는 알림이 울리지 않는다.
그날은 유독 피곤한 하루였다. 휴대폰이 수면모드로 바뀌는 시간인 10시 반이 되기도 전에 눈이 감긴 그날, 2024년 대한민국에서 과연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싶은 일이 발생했다. 민주공화국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한 나라의 원수라는 사람 입에서 과연 나오리라고 상상도 못 한 그 말이 세상에 널리 퍼지고 있는 동안 나는 꿈도 꾸지 않고 자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 보니 메시지가 수백 통. 계엄이라는 말을 메시지를 통해 알게 된 나는 그게 사실이라면 재난문자가 울려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 알림을 살펴봤다. 아무리 봐도 자고 있는 사이 재난 알림은 울리지 않은 거 같았다. 일한다는 핑계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관심을 두지 않던 나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내가 모르는 사이 큰일이 벌어지고 있었나, 전쟁이 터졌나, 아니면 혹시 좀비나 괴생물체(?)가..?!
유튜브로 뉴스를 틀었다. 밤새 비상계엄이 내려졌고 국회 의결을 통해 해제까지 된 상황.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은 밤사이 많은 일이 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자 아찔해졌다. 자고 일어나 보니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어버린 그 상황에서 겪을 혼란스러움을 상상했다. 만약 계엄 해제가 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는 거였을까. 내 의식에 자리 잡은 비상계엄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광주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들. 그때의 일들이 반복되는 것일까. 그래도 그때와 지금은 다른데 설마 그런 일들이 벌어질까 싶은 생각이 드는 찰나 머릿속에 물음표가 생겼다.
도대체 왜?
전시 상황도 아니고 좀비나 괴생물체(?)가 나타난 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왜 비상계엄이란 말을 들어야 하나. 그가 TV앞에서 발표한 내용을 찾아봤다. 그가 말하는 앞부분의 요지는 결국 요즘 국회의 견제 때문에 힘들다는 것이었다. 직장인들이 회사생활에서 힘들게 하는 직장상사나 동료를 욕하듯 정치인들이 뉴스에 나와 으레 하는 그런 평범한 징징거림(?)이었다. 내가 보고 있는 이 영상이 지난밤 사이 비상계엄을 알린 그 영상이 맞나 의심이 드는 찰나 그의 결론을 듣게 되었다. 징징거림의 결론이 비상계엄이라니. 제정신인가.
TV도 없고, 계정만 있는 SNS를 잘 열어보지도 않고, 신문이나 뉴스를 챙겨보지도 않는 나는 요즘 국회가 그에게 어떻게 했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긴급한 상황이라며 발표한 그 내용만 보더라도 명백히 잘못되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국회의 견제가 힘들다는 이유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불리하다는 이유로 비상계엄을 국민들에게 선포해서는 안된다는 건 정치에 큰 관심이 없는 나조차도 알 수 있는 거였다. 헌법에 명시된 비상계엄은 제 목적대로 선포된 적이 없었다. 권력자의 탐욕을 채우고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도구로 악용되었을 뿐.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 흘리고 아파해야 했는지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다. 그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 그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해서는 안되었다.
많은 사람이 그의 대통령의 자격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넘어 직무 정지를 외치고 있다. 12.3 사태 이후 휴대폰의 알람 기능을 다시 켜고 피곤함도 무릅쓰고 뉴스를 찾아보게 된 나 또한 이번에는 분명 목소리를 내어야 했다. 국회 앞에 가서 사람들과 외쳤다. 이런 상황에서도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정치적 이해관계만 생각하여 표결 자체도 거부했던 의원들에게 외쳤다. 아직도 자신이 무슨 일을 벌였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은 대통령에게 외쳤다. 우리 여기 이렇게 살아있다고. 당신들이 가진 그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보라고.
민주주의라는, 교과서에서나 자주 접했던 그 단어가 숨 쉬듯 당연해서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게 얼마나 많은 사람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잊고 있었다. 어렵게 얻은 그것을 자칫하면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걸 간과했다. 어쩌면 비상계엄이 선포되자마자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 덕분에 내가 지금 여전히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걸지도 모른다. 내가 집에서 편안하게 자고 있는 동안 싸워준 그들 덕분에 이렇게 그때의 일을 글감 삼아 글을 쓸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일도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연애도 해야 하는데 내 소중한 주말을 더 이상 국회나 광화문에서 보내고 싶지 않다. 10시 반 이후가 되면 알림 기능이 작동하지 않도록 휴대폰의 수면모드를 다시 켜고 싶다. 어떤 비상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는 두려움 때문에 알림 기능을 모두 켜 둔 채 잠들고 싶지 않다. 뉴스를 매일 보지 않아도 괜찮은 일상을 보내고 싶다. 자고 일어났더니 다른 세상이 된 상황을 겪고 싶지 않다. 이제 한 고비 넘었으니 다음 고비를 넘을 준비를 해본다. 그렇게 한 고비씩 넘다 보면 내 일상을 다시 찾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