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가서 당당하게 말하기 부끄러운 실력이지만 나름 개발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되었다. 예술 기획사에서 일을 하던 나는 퇴사 후 C언어 공부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개발자로서의 삶을 준비했다. 한창 개발자 연봉이 치솟기 시작하던 때였다. 국가에서는 개발자를 양성하기 위한 많은 투자를 하였고, 그로 인해 부트 캠프라는 이름으로 많은 교육 프로그램들과 6개월 정도의 개발 교육을 받은 소위 비전공자 출신 개발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고액 연봉을 받고자 이 길을 선택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시류에 편승한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3년 차 직장인이 한창 퇴사와 이직을 고민하고 있던 그때 개발자라는 직업이 눈에 띈 건 절대 우연이 아니므로.
개발이라는 쉽지 않은 분야를 6개월 공부해서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꿈을 꾸지 않았다. 재능이 있는 누군가에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그만한 능력도 욕심도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길에 뛰어든 건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이 든 이상 해보고 후회하는 게 안 해보는 것보단 훨씬 낫다는 판단에서다. 그중에서도 남들이 잘 가지 않는 임베디드나 C/C++ 개발을 선택한 건 나름의 전략이었다. 물론 가장 흥미가 생긴 분야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가늘고 길게 갈 수 있는 분야라는 게 내 결정의 가장 큰 이유였다. 남들이 잘 가지 않는 이유는 분명히 있겠지만 덕분에 나는 실력에 비해 만족스러운 조건으로 어렵지 않게 취업할 수 있었다.
꼰대라는 말을 유난히 듣기 싫어하는 상사 중 한 분은 야근을 밥 먹듯 하는 나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빨리 퇴근해요. 뭘 그렇게 열심히 해. 적지 않은 나이의 신입 ‘여자’가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모습을 보는 그들의 시선. 주로 여자 직원으로 구성된 경영팀이 정시에 퇴근하는 가운데 묵묵히 야근을 이어가는 모습이 조용한 비교의 대상이 된다. 그런 시선 속에서 말로 설명하기 힘든 어떤 감정의 결을 느끼지만, 그것이 어떤 마음에서 나온 것이든 달갑진 않다.
친하게 지내는 상사로부터 고군분투하는 비련의 여주인공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회사에서의 나의 행동은 누군가에겐 그렇게 해석되는 모양이다. 가령 4050 아저씨들의 회식자리에 빠지지 않는다거나, 큰 불평 없이 철야도 마지않는다거나 하는. 그런 모습들이 절박해 보이거나 조급해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그들의 예상과 달리 나는 생각보다 그리 열심히 하고 있지 않다. 잘해서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심도 없다. 그저 오늘 하루의 내 몫을, 일 인분은 하고 싶다는 마음. 더 이상 야근이나 철야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실력만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다. 남에게 민폐 끼치는 것을 강박적으로 싫어하는 내가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건 팀플레이어로서 짐이 되지 않는 것뿐이다.
이제 막 1년 차가 된 나는 일하다가 울어보기도 했고, 나보다 더 프로그래밍을 잘하는 것 같은 GPT를 보며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원치 않았던 승진은 오히려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주말도 반납해야 했던 올해 초엔 금융치료조차 무의미해질 만큼 매일같이 퇴사만 생각했다. 나의 2025년 1월과 2월은 온전히 회사의 것이었다. 물론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다. 개발을 시작하면서 각오한 일이었다. 일하다 울기도 할 것이고, 나의 선택을 의심하고 후회하게 될 날도 분명 올 것이라고. GPT가 개발자를 대체할 날이 예상보다 빠르게 올 지도 모른다고. 그럼에도 이 일을 시작하겠냐고 하는 나의 물음에 과거의 나는 Yes로 답한 것이다. 그런 과거의 내가 있었기에 오늘의 나는 묵묵히 개발자로 살아낸다. 그저 하루하루 개발자로 살아내는 나의 노력이 내가 꿈꾸던 코딩하는 흰머리 할머니로 만들어줄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