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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nudge 이넛지 May 10. 2023

무엇이든 써보라고

생각의 회오리에서 빠져나오려면

최근 누군가 물었다.

회사에서 자신이 성장하는 것 같지 않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마음이 맞는 것도 아닌데, 막상 회사를 나서려니 기회가 닿지도 않고. 내게 어떻게 그렇게 오랜 시간 회사를 다녔냐고.




회사를 다니다보면 고비의 순간이 찾아온다. 내가 이 일에 맞는 것인가, 안 맞는 사람과 어떻게 일해야하나, 언제쯤 제대로된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등등. 고비의 순간을 그냥 넘기면 그저 그런 직장인이 될까 두려운 순간들. 나 역시 그랬다.


한 업무를 오래해서 성장의 한계에 막혔다고 생각했던 시점에, 회사를 휴직하고 대학원을 갔다. 일을 하다 공부를 하면 얼마나 꿀맛이던지. 회사로 돌아와 새로운 일을 시작했을 때에는 일에 욕심이 났고 하고 싶은 일도 생겼다. 하지만 좀처럼 기회는 닿지 않았고, 나는 부서 이동을 선택했다. 그리고 우연인듯 필연인듯, 나에게 맞는 업무를 발견했다.


신사업 추진, 새로운 동력을 발굴하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직장에서 일한지 10년만에 깨달은 것이다.


10년.

누군가는 전문가가 되고도 남을 시간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내게는 나라는 사람이 회사형 인간인지, 내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시간으로 그만큼 보냈다.


수많은 자격증을 취득하고 공부했으나, 그것은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한 공부였음을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대학원마저도 충전이 필요해서,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한 필요조건이라 생각해서 간 것인지 모른다.


만약 나 자신을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면, 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을까.



누군가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이렇게 기나긴 생각의 통로를 거쳐 내가 한 한마디는.

"점을 봐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는데 점을 보라니!


"자기 스스로 생각할수록 생각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한 발자국 떨어져서 봐야하는데, 이게 쉽지 않지. 그럴 때 운세를 봐바. 그냥 이게 스쳐가는 바람이겠거니 생각하며, 나를 모르는 제3자가 말해주면 좀 더 객관적으로 나를 볼 수 있더라."


객관적인 조언, 나를 모르는 사람, 데이터 통계. 그것이 내가 점을 보라고 한 이유였다. 마음의 강한 회오리바람을 잡기 위해서는, 그 바람에 휩쓸리는 나 자신을 부여잡고 있으면 계속 휘둘릴 뿐이니까.


점은 주관이 없어서 보는 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그저 하나의 전략적이고도 선택적인
행위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 삶의 주인은 '나'지만
그런 내 삶을 이루는 건 나뿐만 아니라
환경과 운과 타인과 시대 상황 등
수많은 다른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 이석원, <순간을 믿어요>, 을유문화사, 2023




그게 도움이 되는 말인가.

나 자신을 잘 들여다보라고, 네가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내라고 말해야하는게 아닐까.

그런데 그런 대답은 누군들 못하나 싶었다. 정작 중요한 "어떻게"에 대해 답을 갖지 못하면, 내내 생각의 회오리에 휘둘리다 다시 주저앉고 말텐데.


아니 그래도 그렇지. 점을 보라니. 내가 너무 무책임했나. 집에 오는 내내 생각했다.


그녀는 어쩌면 자신이 지금 잘 살고 있는지, 내게 확인받고 싶었는지 모른다.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인정받을 곳은 없고 지지부진한 상황이라, 내게 그런 말을 한게 아닐까.


다독임이 필요한 순간, 낯선 이가 아니라 나를 잘 아는 이의 '잘 하고 있어' 한 마디가 필요한 순간. 용기를 북돋아줄 다정다감 한 스푼이 필요한 아이에게 난 엉뚱하게 점을 보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오답은 정정하면 되니까. 

일주일간 책을 뒤적였다. "어떻게"에 대한 답을 혹시 줄 수 있을까.

마침 내가 고른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거창한 예술 작품만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매일 보는 것이 나를 만든다.
- 김혜원, <나를 리뷰하는 법>, 유영, 2023




오랜 시간 회사를 다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 핏에 맞는 일을 찾는 것이다. 그래야 나를 잃지 않으며 오래 일할 수 있다. 그러려면 나를 들여다봐야한다.


만약 나 자신을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면, 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을까.


나 자신을 돌아보며 생각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이제서야 발견한 것 같았다. 주위를 관찰하고 사소한 무엇이든 기록하면, 자세히 알 수 있다. 나의 생각과 마음을. 성장이 멈추어있는 것 같아 불안했던 시절, 목표도 없이 방황했던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내게 말해줄 것이다. 무엇이든 써보라고.


그녀에게 다시 말해야겠다.

기록을 한 번 해보라고. 마음을 들여다보는건 무서운 일이지만 한 번 해보라고. 나는 그 때 못했지만 너는 할 수 있을 거라고. 텍스트화되었을 때 비로소 명확하게 보이는게 있을 거라고. 나도 이제서야 깨달았다고.


"마음을 들여다보세요" 강사는 수업시간에 그렇게 말하곤 했다. 글을 쓰기 위해선 마음을 들여다봐야한다고. 하지만 마음을 들여다보는 건 너무 무서운 일이지, 너무 무서워.
- 백수린, <아주 환한 날들>, 문학동네, 2022



덧붙임.

고마워. 내게 질문을 해주어서. 

나이불문, 경력불문. 우리는 그렇게 성장하는 것 같다. 

누군가의 고민에 머리를 맞대다보면, 나 역시 깨닫는다. 

하루하루 배워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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