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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nudge 이넛지 Jul 08. 2023

세컨드 라이프

앙리 마티스와 박웅현

토요일 오후, 아이들과 함께 <앙리 마티스 특별전>에 갔다. 유모차를 끌고 갔던 몇년 전에 비하면, 아이들이 조금 컸으니 어쩌면 아이와 함께 전시를 즐길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앙리 마티스, 그는 1869년에 태어나 1954년 생을 마감했다. 85세 나이에 숨을 거뒀으니, 작품이 얼마나 많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도슨트를 들으며 내가 매료된 건, 그의 '세컨드 라이프'였다. 


70대에 십이지장암 수술을 받은 그는 색채마술사로서 강한 색채를 선보였던 유화를 더이상 그리지 못하고, 색종이 콜라쥬 등 기법을 전혀 바꾸어 작품활동을 했다. 1941년부터 그의 세컨드 라이프가 시작되었다고 도슨트는 설명했다.  


수술을 받은 이후 더 이상 붓을 들 수 없어서, 타히티섬에 갔고 거기서 영감을 받았다는 앙리 마티스. 그리고 <이카루스>와 같은 색종이 콜라쥬를 멋지게 작품으로 남겼다. 이보다 멋진 할아버지가 있을까. 


큰 기대없이 갔던 전시회에서 나는 '세컨드 라이프'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은퇴 후 삶, 나는 그것을 세컨드 라이프로 생각했다. 40대가 되고 친구들과 늘 은퇴 후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누구도 목표를 가진 이는 없었다. 회사에서는 팀장 직급이 되어 한창 일할 시기이고, 집에서는 육아 및 한창 아이와 놀아주는 시기에 처한 때라, 누구도 그 다음은 여유가 없을 수 밖에.


그러나 사실은 자신이 그렇게 마음을 쏟을 '무언가'가 없어서가 아닐까. 바쁨에 대한 것은 모두 핑계 아닐까. 아직 이 나이에도 그 무언가를 찾지 못해서가 아닐까 싶었다. 현재 삶의 치열함을 이유로, 제2의 삶에 대한 질문에 소홀한게 아닐까. 


젊은 날에 치열하게 살아서 이제 좀 편안해지나 했는데 40, 50대가 되어서도 불안해야 하는 건가 싶을 겁니다. 하지만 젊은 날에는 젊은 날의 불안이 있지 않았나요? 불안은 인생에서 시기마다 다른 옷을 입고 찾아오는 것이죠. 죽고 나서야 불안과 헤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또한 살면서 답하지 않아도 되는 때는 없습니다. 인생은 매 순간 질문 속에 던져지고, 그 질문에 온몸으로 답해야 합니다. 
- 박웅현, <책과 삶에 관한 짧은 문답>


박웅현님은 중년은 더 치열하게 자기의 경쟁력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회사에서 내 자리에 충실하려고 위에서 떨어지는 일만 하다보면, 결국 누군가도 할 수 있는 대체자가 되는 것이라고. 일과 관심사를 연결해서 새로운 것을 해보라고. 


나에게 새로운 것은 글쓰기였다. 남들은 책을 읽다가 글을 쓰고 싶어진다는데. 나는 거꾸로였다. 강의를 처음 해보고, 나에 대한 정체성을 찾고 싶었다. 그것을 계기로 글을 쓰게 되었다. 글을 쓰다보니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미쳤고, 그렇게 책을 진심으로 읽게 되었다. 순서가 어떻든, 그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일을 하면서, 매일 책을 읽고 가끔 글을 쓰는 삶. 예전에는 퇴근 후 음주에도 진심이었는데, 이제는 그 시간을 줄였다. 한정된 시간 속에 나 스스로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앙리 마티스 말년의 작품을 보면서, 붓을 들지 못하는 역경에도 자신이 사랑하는 그림에 대한 열정이 다른 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에 꽤나 가슴이 뭉클했다. 만약 내가 그렇게 열정을 가진 '무언가'가 있다면, 나 역시 새롭게 내 삶을 쓸 수 있을까. 나만의 경쟁력이었던 것을 버리고, 70대에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할 용기가 있을까. 


아직 한참 나만의 경쟁력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는 지금, 멋진 앙리 마티스의 작품을 보며 생각하게 된 '세컨드 라이프'. "인생은 새로 고침의 반복"이라는 박웅현님의 말씀이 와닿는 날이다. 


인생은 새로 고침의 반복입니다. 30대에도 40대에도 60, 70대에도 다시 새로 고침을 하고 거기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새로 고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세요. 
- 박웅현, <책과 삶에 관한 짧은 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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