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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 Jan 15. 2024

육아와 가사는 의리게임이야

#1

“아니 집에서 왜 이렇게 맛있는 냄새가 나?”

“왔어?”

“우리 자기가 진수성찬을 차려놨네.”

“오버하긴...”


남편의 말에 머쓱함과 미안함이 교차했다.


“아냐, 똘이 센터 다녀오고 애 셋 보느라 얼마나 힘든지 아는데 이렇게 요리를 많이 해주다니 정말 고마워.”


남편은 날 꼭 안아주고 양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그날 저녁 메뉴는 닭갈비와 어묵탕이었다. 언뜻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상은 이랬다. 남편이 네이버에서 특가로 구매한 포장 닭갈비를 뜯어서 야채 몇 가지 추가하여 굽고, 로켓프레쉬로 구매한 꼬치어묵을 멸치육수와 함께 끓였을 뿐이다. 평소의 식단과 조금 달라진 점이라곤 닭갈비 옆에 상추와 깻잎쌈이 추가된 점과 늘 먹던 사각 어묵으로 끓인 어묵탕이 아니라 꼬치어묵으로 끓인 어묵탕이라는 것 정도다.


그래도 남편은 엄지 척을 하며 나를 한껏 칭찬해 줬다.

별것 아니라는 것을 본인도 아마 알고 있음에도 나를 추켜 세워줬다.


원래 칭찬에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다. 말로 점수를 까먹지 않는 사람이다.


이렇게 작은 것에도 감사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인데...

난 이 사람을 위해선 대체 뭘 해주고 있나.


남편이 나에게, 아이들에게 해주는 모든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아빠니까 가장이니까 돈을 벌어오는 것도, 그 돈을 가족들만을 위해 쓰는 것도, 애가 셋이니 회식이나 밤 외출을 삼가는 것도. 주말을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도.


당연하다 하더라도 당연히 여기지는 말자.


남편에게도 그만의 꿈과 욕망이 있을 것이다. 가족들을 위해 그것을 참아주고 자신의 자리를 지켜주는 것을 당연히 여기지 말자.


남편이 나에게 그러하듯, 나도 사소한 것 하나부터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2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특히 똘이를 치료하기 위해 하루의 대부분의 에너지를 쓰고 있다. 정작 그 모든 비용을 혼자 버느라 분투하고 있는 남편과의 관계를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저렇게 작은 것에도 고맙다고 말해주는 사람인데... 남편은 어른이니까 괜찮겠지. 가장이니까 어쩔 수 없지. 나도 내 에너지가 다 고갈되었으니 별 수 없지... 늘 이렇게 생각하고 남편을 배려하는 건 뒷전이었던 건 아닌지.


머리로는 늘 남편과의 관계가 제일 중요하다고, 부부가 화목하면 자식들은 저절로 잘 클 수 있다고 생각한다지만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긴 쉽지 않다. 아이들은 나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대상이고, 남편은 나의 짐을 함께 짊어져야 하는 사람이기에.



#3

늘 느끼는 거지만 육아와 가사 문제는 남편과의 의리게임이다. 누군가가 덜하면 남은 누군가가 그 몫을 대신해내야만 한다. 언제나 시간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허덕이는 나다. 그래서인지 남편을 대할 때, 내가 더 배려하고 챙겨주려 하기보다 나의 힘듦을 좀 덜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자꾸 갖게 된다.


바꿔 생각하면 남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육아 휴직 중인 나 대신 혼자 돈을 벌어오고 있다. 매일 왕복 2시간의 거리를 출퇴근한다. 재테크도 남편이 전담한다. 재테크라고 해봤자, 똘이 치료비가 너무 많이 들어 매달 마이너스다. 그래도 안 할 수는 없으니 한다. 내가 아이 셋을 재우러 가고 나면 홀로 9시부터 12시까지 기술사 시험공부를 한다.


나는 남편이 힘든 것을 알고 또 그것이 안쓰럽다. 하지만 남편을 배려하기엔 나부터가 너무 힘들다. 아마 남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남편은 퇴근 후 7시쯤 집에 도착해 가족들과 저녁을 먹는다. 그 뒤 첫째와 둘째를 씻기고, 간단히 거실의 장난감을 정리한다.(그 외에도 아이들이 자러 가기 전까지 내가 요청하는 자잘한 뒤치다꺼리를 한다.) 그렇다면 내 몫은 무엇이냐. 남편이 하는 일을 제외한 세 아이(중 하나는 느린 아이, 하나는 돌쟁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모든 일이다. 남편이 맡은 역할은 내가 저녁시간에 해내야 하는 노동의 총량에 비해서는 너무 적은 양이지만, 먼 길로 출근하여 긴 시간 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는 그마저도 버거운 일임을 안다. 그래도 감사한 점은 남편은 아무리 힘들어도 최소한의 자기 몫을 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란 점이다.


 가끔(혹은 종종) 남편도 나도 너무 지쳐있을 때면 서로의 힘듦을 주장하다가 결국 싸우고 만다. 우리는 분명 서로를 사랑하고 걱정하고 또 이해하는데, 왜 감정싸움을 하며 서로를 상처 내게 되는 걸까.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 해도,

자신의 육체적 고됨이 한계에 다다르면

우리는 결국 타인임을 깨닫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서로의 삶에 '가장 중요한 일부'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그 정도면 됐다.



#4

결국 우리가 가진 에너지에 비해 우리가 해내야 하는 노동의 양이 너무 많은 탓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돈으로 전부는 아니어도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 우리의 경제사정이 빡빡하니 결국은 너 아니면 내가 해내야만 한다는 문제가 되고 만다.


그래도 우린 누구 하나 “난 더 이상은 못 하겠다, 너 알아서 해라.”라고 하지 않고 지금껏 열심히 해왔다. 내 남편은 “힘들지?”라고 물으면 “맞아, 나 힘들어 죽겠어.”라고 응수하기보다 “당신이 더 힘들지.”라고 말해주는 사람이다.


남편과 감정싸움을 하고 마음이 힘든 날이면 늘 다시금 다짐하는 것이 있다.


좋은 부모가 되려면 일단 좋은 부부가 되어야 한다. 집이 더러워도, 요리를 못해도, 좀 부족한 엄마여도 아이들은 건강하게 큰다. 엄마아빠가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랄 수 있다면.


똘이를 케어하고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가족은 똘이와 나, 둘이 아니라 다섯이다. 남편도 있고 첫째도 있고 셋째도 있다.


어렵지만 균형점을 잘 찾아보아야겠다.




#부부관계, #결혼, #육아, #느린아이키우기, #다자녀육아, #다자녀가정, #의리게임,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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