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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 Oct 06. 2023

입주 산후도우미 이모님과의 추억

feat 역류방지쿠션

갓 태어난 셋째는 잠귀가 너무 밝아서 옆에서 누가 토닥이지 않으면 잠시도 눈을 붙이지 않았다. 부엌에서 그릇 달그락 하는 소리만 나도 화들짝 놀라며 깨곤 했다. 자고 있는 와중에도 바깥세상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 같았다. 잠과 깸 사이 경계를 오가며 10분에 한 번씩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자는 시간에 깊이 자지 못하니, 깨있는 시간에도 컨디션이 안 좋아 계속 안아달라고 보챘다. 가슴팍에 안아 재우면 겨우 겨우 한 시간 잘까 말까였다.


첫째, 둘째 때와 달리 셋째를 낳고서는 산후조리에 제법 많은 돈을 투자했다. 산후조리원+산후도우미 조합으로 이어지는 산후조리 기간이 끝나고 나면 그 뒤에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앞선 두 번의 출산으로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임신을 확인한 순간부터 남편에게 셋째 출산 후에는 산후조리원에서 나온 뒤 한 달간 입주 산후 도우미를 쓰겠노라고 선언했다. 남편은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다. 세돌 들어서야 통잠을 잔 첫째와 만 5세가 다 되어가도 통잠을 못 자는 똘이를 키우며 내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알기 때문이다.


출산 몇 달 전부터 산후도우미 후기를 검색하고 정보를 모았지만, 입주 도우미의 정보는 많이 없었다. 맘카페에 올라온 몇몇 정보는 광고인지 실제 후기인지 구분이 안 갔다. 고르고 골라 업체를 선정했으나 어떤 분이 오실지 알 수 없으니 이래저래 복불복인 건 마찬가지였다.


셋째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입소한 나의 가장 큰 걱정이 ‘입주 산후 도우미 이모님이 이상한 분이면 어쩌지?’였을 정도다.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이상하면(?) 돈도 쓰고 맘도 고생하고 몸도 편치 않다는 걸 똘이 때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똘이 산후조리 때 오셨던 산후도우미님은 잔소리와 투덜거림을 입에 달고 사시면서 정작 일은 제대로 안 하셨다. 3끼 내내 콩나물, 콩자반에 미역국만 내어주시면서 밥을 남기는 나에게 “산모가 입이 짧네. 그러니 애도 예민하지.”라고 말씀하셨다. 기분이 상한 일이 있으시면 설거지할 때 우당탕탕 소리가 났다. 행여나 아기에게 소홀하게 대할까 안절부절못하며 그분의 비위를 맞추려 노력했었다. ‘내 돈 내고 내가 왜 이런 감정노동을 감수해야 하나’ 싶었던 기억이 난다. 제발 그때와는 다르길... 제발 좋은 분이길.


아직은 성함 밖에 모르는 셋째 산후 도우미님이 제발, 제발 좋은 분이길 간절히 바랐다.


조리원 퇴소 후 우리 집에 배정되어 오신 도우미 이모님은 인정 많은 시골 할머니 같은 느낌이었다.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에 작은 체구를 지니신 분이었다.


업체의 상담실장은 '입주도우미는 노동강도가 매우 세다. 고로   아침은 차려줄 수 없지만,  아침식사를 미리 준비해 줄 순 있고(?), 요리는 어렵지만(?) 밑반찬은 해줄 수 있고, 8시 이후부터는 아기만 보는 시간이므로 산후도우미에게 다른 부탁을 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8시 이전까지는 산후도우미에게 다른 부탁(?)을 해도 된다는 소린가? 난 ‘다른 부탁’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헷갈렸다. 도우미님이 일하시는 범위 밖의 것을 요청하는 무례를 범하기 싫어서 어디까지가 내가 요청해도 되는 영역인지를 명확하게 알고 싶었다.


업체에서는 ‘거실, 부엌, 아기방을 간단하게 정리해 주실 것이고 간단한 집안일 정도는 해주실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또 그 ‘간단한 집안일’의 범위가 궁금했다. 집안일을 산후도우미가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내가 산후도우미에게 기대할 수 있는 영역이어지느정도인지를 명확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디까지가 산후도우미의 역할이고 어디서부터가 아닌 건지 감이 잘 오지 않았던 나는, 이모님이 ‘나는 이러이러한 일을 해주겠고, 이러이러한 일은 규정상 하지 않는다.’라고 명확히 말씀해 주시길 바랐다.


“제가 설명 들어야 할 게 혹시 있나요?”

내 말이 너무 두루뭉술했는지 이모님은 잠깐 갸우뚱하시더니

“그런 거 없어요.”라고 말씀하셨다.


“이모님이 어떤 일을 도와주실 수 있고 어떤 일은 해주지 않으시는 건지 궁금해서요.”

“딱히 그런 건 없어요. 여유되면 뭐든 해주고 여유가 안 되면 못하지요. 아기의 상황에 따라 달라요. 그렇지만 아기는 내가 책임지고 케어해 줄 테니 걱정 말아요.”


그렇지... 산후도우미님의 본업은 아기를 케어하는 일이니, 아기가 도와주지 않으면 집안일은 못 하는 게 맞다. 맞는 말인데... 나의 궁금증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그래서 뭐는 해주고 뭐는 안 해줄 건데요ㅠㅠ?’


만약

“아기방, 거실, 부엌은 이틀에 한번씩 청소기 돌릴게요. 국은 미역국을 한 번에 3~4일 치 끓여놓을 거고, 생선이나 고기 먹고픈 거 사다 놓으면 구워줄게요. 굽는 정도는 할 수 있지만 찜 요리는 힘들어요. 설거지는 내가 해줄 수 있지만, 식기 정리나 빨래, 화장실 청소 같은 건 산모님이 직접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고 딱 잘라 말씀해 주셨다면 난 아마 나의 경계를 정확히 지켰을 것이다. 또 이모님께 맡긴 부분은 마음 편히 맡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모님은 ‘그런 걸 어떻게 무 자르듯 뚝 자르나?’라는 표정이셨다. 똘이 때의 부정적인 경험 때문에 걱정 반 의심 반이었지만, 그래도 인상 좋은 이모님을 믿어보기로 했다.



초반 일주일간... 이모님은 거의 집안일은 해주질 못하셨다. 집안일이나 밑반찬을 해주시려 해도 셋째가 혼자 누워서는 조금도 낮잠을 자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 번의 연이은 출산과 육아로 손목과 무릎이 이미 너덜너덜했던 나는 아기를 몇 시간씩 안고 있을 힘도, 집안일을 할 체력도 없었다. 하루 종일 피곤하고 졸리기만 했다. 마치 몸이 본능적으로 지금이 아니면 당분간 잠을 잘 수 없으리라는 걸 알고 배터리를 최대한 채워두려는 것 같았다. 산후조리 기간에는 정말로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다. 그런데 셋째가 잠시도 낮잠을 안 자고 누군가에게 안겨 자려하니, 내가 아기를 보거나 집안일을 하거나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50일쯤 돼서 쓰려고 사 두었던 역류방지쿠션을 꺼내드렸다.(역류방지쿠션이란, 아직 장이 짧은 아기가 먹은 걸 토하지 않도록 상체를 약간 세워주는 푹신한 쿠션인데 아기들의 꿀잠 쿠션으로 유명하다.) 50일이 지나서 쓰려고 했던 이유는 쿠션에 아기를 눕혔을 때 허리와 엉덩이 부분이 아래로 푹 꺼지는 느낌이라 아기 허리에 안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모님 덜 힘드시라고 드린 것이 아니라 아가가 조금이라도 누워 자야 이모님이 그 시간에 집안일을 해주실 거라는 내 편의 위주의 생각으로 드린 거였다.


‘낮에도 30분 이상은 눕히지 말고, 밤잠은 꼭 바닥에 누워 자게 해 달라’고 당부를 한 후 역류방지쿠션을 꺼내드렸다. 예상대로 셋째는 역류방지 쿠션 위에서는 그나마 30분 이상을 누워 잤다. 이모님은 그 짧은 시간 동안 반찬도 해주시고 바닥도 밀대걸레로 밀어주시는 등 여러모로 애써주셨다. 업체에서 산후도우미의 청소 범위가 아니라고 했던 화장실도 물로 한번 닦아 주시고, 이불이 눅눅하다며 햇볕에 이불도 말려주셨다. 잠깐이라도 아기가 누워 잘 때면, 조금이라도 등을 붙이고 싶으셨을 텐데 항상 무언가를 해주려 하셨다.


조금씩 나의 마음이 열렸다.


‘아.. 여력이 되면 해주시겠다는 게 이런 의미구나. 지금까지는 정말로 여력이 없으셨던 거구나. 할 일, 안 할 일을 굳이 나누지 않으셨던 건, 최대한 많은 것을 해주겠다는 의미셨구나.’



셋째는 밤에는 분유수유를 했기 때문에 이모님이 아기를 데리고 주무셨다.


밤에 문득 자다가 깨면 셋째의 울음소리가 들리곤 했다. 두어 시간 간격으로 셋째가 울었고 그때마다 이모님이 자장가를 부르시는 소리가 들렸다. 이모님이 많이 피곤하실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연세도 많으신 분이 너무 힘든 일을 하시는 것 같아 안쓰럽고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모님이 피로에 못 이겨 아기를 역류방지쿠션에 눕혀 재우진 않으실까 걱정되었다. 아기가 우는 소리가 날 때는 이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가 아기 칭얼거림이 잦아들면 혹시 아기가 역류방지쿠션에 누워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참 우스웠다. 이모님에게 집안일을 시키려고 역류방지쿠션을 꺼내드려 놓고 이제는 이모님이 아이를 거기에 오래 눕혀놓으실까 봐 걱정하다니. 그래도 내 맘이 그런 걸 어쩌겠는가.


낮에는 주로 내가 깨 있으니 아이가 역류방지쿠션에 누웠는지 아닌지 알 수 있었지만, 밤에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슬금슬금 걱정이 되었다. 이모님이 본인 편하게 주무시려고 아기를 밤새도록 역류방지쿠션에 재우시면 어쩌지? 아직 허리가 무른 아기인데.....



다음날 나는 재차 “이모님, 셋째가 토끼잠을 자서 많이 힘드시죠.. 그래도 역류방지쿠션은 30분 이내로만 써주시고 밤에는 쓰지 말아 주세요.”라고 말씀드렸다.


이모님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시며 그러겠다고 걱정 말라고 하셨다. 나는 그럼에도 그 말이 믿음이 안 가서 자꾸 신경이 쓰였다. 왜냐면 나부터가 그랬기 때문이다. 이모님이 퇴근하신 주말, 내가 셋째를 데리고 잘 때면 나부터가 아이를 역류방지쿠션에 눕혀서 몇 시간이라도 편하게 자고 싶은 생각이 들곤 했던 것이다.


엄마인 나도 그런데.. 생판 남인 산후도우미는 얼마나 더 그러고 싶을까.

나는 두 번이나 당부드린 걸 못 참고 이모님께 또 말씀을 드리고 말았다. 내심 민망해하면서...


“이모님... 역류방지쿠션은 밤에는 쓰지 말아 주세요.”

이모님은 다시 한번 “그럴게, 걱정 마요.”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모님을 못 믿고 세 번이나 같은 말을 한 것이 미안했고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저녁이 되어 아기를 재울 때쯤 이모님은 역류방지쿠션을 거실로 꺼내 놓고 아기와 함께 방으로 들어가셨다. 이모님의 섬세한 배려에 감동했다.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알았다니까, 몇 번을 말해요.”라고 역정 내실 수도 있었을 텐데 이모님은 쿠션을 아예 밖에 꺼내어 두는 방법으로 나를 안심시켜 주셨다. 그 후로도 이모님은 매일 낮에 아기를 재운 후 역류방지 쿠션에 잠깐 눕혀두시고 이런저런 밑반찬을 만들어 놓으셨다. 그리고 밤이 되면 아기와 함께 아기 방에 들어가시기 전에 어김없이 역류방지쿠션을 거실에 꺼내어 놓으시는 거였다.


이모님의 그 행동에, 나는 불안했던 마음을 풀고 이모님께 셋째를 온전히 맡기고 마음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다. 그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이모님의 깊은 배려와 마음 씀씀이가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걱정되지 않았다. 오직 내 몸 회복에만 집중하여 편히 쉬었다.


그분은 돈 낸 만큼의 몫을 꼭 해내 주어야 하는 ‘일꾼’이 아닌, 마음으로 나와 내 아기를 돌봐주는 ‘은인’이 되었다.



입주 산후도우미의 일과는 정말로 고되다. 일단 남의 집에서 갓난 신생아를 돌봐야 하고, 산후 여파로 몸도 마음도 온전치 않은 산모의 비위를 맞춰야 함은 물론, 간단하게나마 집 청소도 해야 하고, 산모와 가족들이 먹을 음식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밤에는 2시간마다 깨서 울어대는 신생아를 데리고 자며 밤중수유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하고 이모님이 받으시는 일당은 고작 17~18만 원 정도였다.



“이모님, 너무 고되시겠어요. 괜찮으세요?”

“그래도 배운 것 없고 전문 기술 없는 여자의 몸으로 어디 가서 이렇게 돈을 벌겠어요.”

“그래도 이모님이 너무 고생하시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파요.”


“그래서 요즘엔 입주 도우미들이 점점 없어지는 추세예요. 젊은 사람들은 이렇게 힘든 일 안 하려고 하지. ㅇㅇ이네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야. 엄마도 순하고, 아가도 이만하면 착하지.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나 이 일 처음 시작했을 때, 정말 힘들었던 어떤 여름날에, 에어컨도 없는 작은 방에서 아주 살짝 바람 들 만큼만 문을 열어놓고 밤새 보채는 아기를 달래는데... 방문 밖에 신발장이 보이고 거기에 내 신발이 있는 거야. 아기고 뭐고 다 버리고 신발 신고 달아나서 집에 가서 잠이나 자고 싶었지. 그래도 그럴 수 있나. 꾹 참고 버티면 아침이 오고, 또 다음날 아침이 오고 그랬어.


내가 이 일을 10년 넘게 했는데.. 무수히도 많은 아기와 산모를 만났지. 근데 난 사람이 생겨먹은 게.. 아무리 오래되어도 약아지지가 않아. 적당히 몸 사리고 이게 잘 안돼서.. 늘 산후조리 끝나고 집에 가면 며칠을 앓아누워요.”


"대단하세요. 긴 세월을 어찌 그렇게 한결같이 진심을 다 해오셨어요...."


"남의 돈 받아놓고 허투루 일하면 쓰나."


"저 편하자고 이모님 힘들게 해 드리는 것 같아 죄송해요"


"아유 ㅇㅇ엄마 그런 말 말아요. 나 있을 때 안 쉬면 언제 쉬어. 나 있을 동안은 아무것도 걱정 말고 잘 쉬고 잘 먹고 잘자면 돼요. 그게 날 도와주는 거야"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을 한 집에서 동고동락하면서, 나는 이모님에게 깊이 의지했다. 아무리 돈을 준다지만 생판 남이 나와 내 아이를 이렇게 살뜰히 보살펴 준다는 것이 정말로 고마웠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하디 귀한 마음을 받았다.



“이모님, 저 돈만 많으면 이모님이랑 쭉 같이 살고 싶어요.”


“나도 ㅇㅇ이네 집에 계속 있어주고 싶네. 그런데 뭐 사람 일이 맘대로 되나? 나 다음 아기엄마도 좋은 사람이길 빌어줘요.”


“이모님이 덜 고생하시고 편하게 일하시면 좋겠어요.”


“편하려고 하면 이 일 못하지. 그래도 내가 이 나라 일꾼 많이 키웠어. 자부심 갖고 있어요.”


“이모님 정말 대단하세요. 이모님 정말 멋진 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희 아기는 기억 못 해도 저는 안 잊고 기억할게요. 정말 귀하고 대단한 일 하고 계세요. 이모님 덕분에 산후조리 기간 동안 정말 편안히 푹 쉬었어요. 힘내서 아기 잘 키울게요.

언제나 건강하시고 이모님을 귀하게 대접해 주시는 좋은 분들 만나시고 언제나 행복하세요.”


“그런 말은 처음 듣네. 고마워요. 나도 고생한 보람이 느껴지네요. ㅇㅇ엄마도 아기 잘 키워요. 나도 행복을 빌게.”



마지막으로 이모님을 꼭 안아드리는데, 익숙하고 그리운, 돌아가신 외할머니 냄새가 났다. 닿기만 해도 말캉함이 느껴지는 할머니의 처진 살, 할머니 옷에서 나던 냄새, 피부 보다 살가죽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부들부들하고 거무죽죽한 피부, 무엇보다 할머니 품이 주던 포근한 온기. 그런 것들이 화악 내 안으로 밀려들며 눈물이 왈칵 났다. 타인을 이렇게 꼭 안아 본 게 얼마 만이었던가. 나와 앞으로 다시는 인연 닿을 일이 없는 사람인지도 모르지만 그때만큼은 진심으로 그분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다.



이모님, 탯줄 자른 흔적이 남아 새까맣던 배꼽, 세게 안으면 부러질 듯 얇은 팔다리, 붉다 못해 시뻘겋던 얼굴일 때 이모님께서 손가락 하나하나 벌려가며 살뜰히 씻기고 닦이고 먹여서 키워주신 핏덩이는, 이제 살이 올라 배와 허벅지 사이사이에 때도 끼고 팔 접힌 부분에선 땀띠도 올라오는, 그런 오동통한 아기가 되었답니다.


감사해요. 좋은 삶 사시는 만큼 복 많이 받으시길 바라요.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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