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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 Jan 24. 2024

후회를 잔뜩 짊어진 나지만...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 리뷰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래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할 수 있을 텐데......


절박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돌이키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렇기에 ‘타임슬립’은 후회가 숙명인 우리 인간의 영원한 판타지다.


단 한 번이라도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망설임 없이 그 시절 그때로 돌아가 잘못을 바로잡을 텐데.



시간을 달리는 소녀

감독 호소다 마모루, 2006     




그런데 우연히 타임슬립의 기회를 얻은 17세 소녀 마코는 그 귀한 능력을 물 쓰듯 쓴다. 달려가다 힘차게 점프를 하면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그녀. 그래서 그녀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다. 마코토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동생이 뺏어먹은 푸딩을 되찾고 노래방 사용 시간을 늘리며, 쪽지시험에서 100점을 맞는다.


엄청난 능력을 사소한 데 쓰며 키득키득 즐거워하는 마코토, “그 따위로 쓸 거면 차라리 나한테 넘겨!”라고 외치고 싶다.



철없고 순수한 그녀의 모습이 조금은 얄밉게 느껴졌던 건 단순히 ‘그녀가 내겐 없는 능력을 지녀서’가 아니다. 그녀에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떤 희생을 감내하고서라도 돌이키고 싶은 순간’이 아직 없다는 것. 그것이 부러웠다.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기에, 그것으로 인해 자신을 미워할 만큼 후회한 적이 없기에 타임슬립 능력을 소소한 일에 쓰면서 행복할 수 있는 그녀.


그녀가 자신의 타임슬립 능력을 인지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어제 못 먹은 푸딩이란 사실은, 지금껏 그녀의 삶이 얼마나 평온했었는지를 반증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아니,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는 10대니까.

평범한 10대 소녀에게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란, 엄마가 맛있는 전골을 만들어주신 날이거나, 쪽지시험을 망치기 전이거나, 언제까지나 친구이고 싶었던 남자아이의 고백을 듣기 전 일수도 있는 것이다.


 마코토 나이 즈음의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10대였다면, 나 역시도 그녀처럼 사소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일이나 곤란한 상황에서 달아나는 일에 타임슬립 능력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사소한 실수가 나의 혹은 누군가의 인생을 뜻밖의 방향으로 비틀어버리는 일, 그리고 후회는 오롯이 나의 몫이며, 스스로를 미워하게 된다 해도 나는 여전히 나로 살아가야 한다는 무서운 사실. 그것을 알기 전과 후, 내 삶도 삶을 보는 눈도 바뀌었다.




지금의 나는 ‘단짝친구의 사랑고백을 듣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10대 소녀’가 아닌 ‘인생의 실수를 바로잡고 싶은 어른’이다. 지금 이곳은 판타지가 아닌 현실세계이며, 내가 가진 힘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긍정하며 살아가기 위한 저력’ 뿐이다.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다는 불변의 진리다. 무수한 후회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후회하는 것도 나, 과거의 나를 짊어져야 하는 것도 나, 내일을 살아가야 하는 것도 나.


그러니까 지나간 순간을 후회하며 나를 괴롭히지 말고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과거는 바꿀 수 없어도 미래는 바꿀 수 있으니까. 어제를 너무 쉽게 용서하지 않되 그래도 내일은 밝을 거라 믿어주자. 인생은 끝까지 현재진행형이니까.


“미래에서 기다릴게” “응, 금방 갈게. 달려갈게!”<시간을 달리는 소녀>中



미래의 나를 기다리는 존재가 내게도 있을까.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무언가가 혹은 누군가가 날 기다리고 있다면... 그렇다면 나도 기꺼이 미래를 향해 외치고 싶다.


“응, 금방 갈게. 후회를 잔뜩 짊어진 나지만, 그래도 달려갈게! 노력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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