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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 May 30. 2024

자폐스펙트럼 아이의 운동회 3

대망의 운동회 날이다.


실내 구민운동장에 들어서자마자 마이크 테스트 소리, 선생님들이 흩어지려는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 학부모들의 수다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똘이는 아니나 다를까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똘이는 안 가고 싶어.”


입구에서부터 엉덩이를 뒤로 빼고 내 팔을 잡아당기는 똘이.

아이의 얼굴을 보니 ‘저긴 불안하고 시끄럽고 낯설어서 싫어.’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똘이야, 선생님이랑 친구들이랑 다 같이 운동회 연습했던 것 기억나지? 오늘 똘이가 즐겁게 참여하기 위해서 연습했던 거야. 저 안에 들어가면 똘이반 친구들과 선생님이 모두 똘이를 기다리고 있어. 똘이가 꼭 함께 해야 해.”


“안 하면 똘이가 아프게 돼?”


“아니. 아프게 되는 건 아니야. 하지만 똘이가 안 가면 같이 연습한 다른 친구들이 속상하게 돼. 똘이는 OO 이에게 바통을 받아서 ㅁㅁ이 손에 전달해 주기로 했잖아. 그렇지?”


“그런데 똘이는 던지면 돼? 안 돼?”


“던지면 안 되지. 똘이가 어제도 안 던지고 친구 손에 잘 전해줬잖아.”


“똘이는 월요일에는 던졌어? 안 던졌어?”


“월요일에는 실수로 던졌지. 하지만 그 뒤에는 열심히 연습해서 안 던지고 손에 줄 수 있게 되었잖아. 오늘이 진짜로 하는 날이야. 어제 까지는 연습이고.”


“똘이는 오늘은 던져? 안 던져?”


“안 던지고 잘할 수 있어. 선생님이 도와주실 거야. 그리고 다른 재미있는 경기들도 할 거야. 그러려면 일단 저 안에 들어가야 해.”


“똘이는 무서워서 못 가겠어.”


“그럼 엄마 손 꼭 잡고 들어가자. 무서우면 안아줄게.”


“똘이는 엄마랑 계속 같이 있을 거야.”


“그럴 순 없어. 엄마가 선생님한테까지 데려다주고 그다음엔 선생님이랑 있는 거야.”


“똘이가 엄마 보고 싶으면?”


“엄마는 멀리서 보고 있을 거야. 엄마가 어디에서 보고 있는지 알려줄게. 걱정 안 해도 돼. 똘이 끝날 때까지 안 가고 있을 거야.”



그렇게 어르고 달래어 들여보냈건만.



아니나 다를까.



똘이는 식순 2번인 준비운동을 채 마치지 못하고 엄마를 찾고 울기 시작했다. 지켜보는 내 속도 까맣게 탔다.

불안함을 견디지 못한 똘이는 결국 담임선생님의 손을 잡고 대열에서 나와 응원석 쪽으로 울며 걸어왔다.


“어머님, 똘이가 마음이 너무 불안한지 계속 제 손을 놓지 않고 울고만 있어요.”


“제가 잘 이야기해 볼게요.”


눈과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똘이는 엄마에게 안기려 내 품으로 몸을 밀어 넣었지만 나는 똘이를 바로 세우고 양팔을 잡았다.



“으허어어어엉~ 엄마~ 으아아아앙.”


“똘이야. 울기만 하면 엄마가 네 마음을 알 수가 없어. 속상한 일이 있으면 엄마한테 말을 해야 해.”


“똘이 힘들어요.”


“어떤 점이 힘들어?”


“잘 모르겠어.”


“시끄럽고 처음 와보는 곳에서 줄 서있기가 힘들어?”


“네...”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어. 오늘은 똘이와 친구들 모두가 운동회를 하는 날이야. 똘이 혼자 안 할 수는 없어. 어떻게 도와주면 똘이가 잘할 수 있겠어?”


“똘이는 집에 가고 싶어.”


“그럴 순 없어. 집에 가면 편안하고 안전하겠지만 그러면 똘이는 영영 운동회에 대해 배울 수 없게 돼. 오늘은 친구들과 운동회를 하는 날이야. 꼭 함께 해야 해..”


“그러면 엄마랑 같이 할래...”



 똘이는 결국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나와 함께 줄을 서게 되었다.


 준비운동도 엄마와 함께 하고, 대열 이동도 함께 했다. 속상한 마음이 전혀 없다곤 못하겠지만 그렇게라도 참여해 주는 아이가 고마웠다. 똘이 나름대로 불편하고 어려운 상황을 열심히 견뎌보려 하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단체 활동이 끝나고 개인 달리기 시간이었다. 함께 뛰어줄 수도 있었지만 이것은 똘이 스스로 하게 하고 싶었다.



“똘이야, 다른 건 엄마가 함께 해 줄 수 있지만 친구들과 하는 게임은 똘이가 스스로 해야 해. 지금은 달리기 시간인데, 달리기는 엄마랑 같이 할 수 없어. 대신 엄마는 똘이가 도착하는 곳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똘이가 달려오면 똘이를 꼭 안아줄게. 그러려면 엄마는 저기 저 멀리서 똘이를 기다려야 해. 알겠지?”


“싫은데...”


“아니야. 잘할 수 있어. 똘이가 달리기를 마치면 엄마가 꼭 안아줄게. 잘할 수 있어. 끝나고 또 같이 있자.”



내 손을 떠난 똘이는 불안하고 불편해 보였지만 처음처럼 울지는 않았다.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친구들과 함께 똘이가 달려왔다.


똘이는 꼴등이었다.


난 똘이가 자신이 꼴등이라는 걸 알아차리기 전에 아이를 번쩍 들어 안아 들었다.


“똘이가 친구들과 함께 달리기를 해냈구나!! 정말 대단하다. 엄마는 똘이가 정말 자랑스러워!”


선생님은 다행히도(?) 모든 아이에게 1등 도장을 찍어주셨다.


1등 도장을 받은 똘이는 자기가 정말로 1등인 줄 알고 매우 기뻐했다.


“똘이야, 1등 도장받은 거 너무 축하해. 그런데 엄마는 똘이가 2등이어도 좋고 3등이어도 좋고 4등이어도 좋아. 친구들이랑 같이 달리기에 참여한 게 가장 좋은 일이야.”



똘이는 자신감을 얻었는지 조금씩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카드 뒤집기나 대형 주머니 터뜨리기 게임에도 소극적이지만 즐겁게 참여했다.



 그날의 똘이는 누가 봐도 사회성 발달이나 언어발달에 있어서 같은 반 아이들 중 가장 뒤지는 아이였다. 똘이가 또래보다 2~3살 정도 어린것 같다고 느꼈다.

하지만 난 똘이의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기뻤다.

작년보다 많이 성장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달리기에서 꼴등을 하든, 어리바리하게 반대방향으로 달리든, 중간중간에 다음 과업이 무엇인지 까먹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작년의 똘이는 운동회의 시작부터 끝까지 상황인지를 하지 못했다.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자기가 왜 여기 있는지 몰랐다. 왜 뛰라고 하는지 모르지만 엄마가 뛰라니 뛰고, 왜 손뼉 치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이 치라니 치는 아이였다.



 하지만 올해의 똘이는 달랐다. 낯설어서 울고 불안해서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했지만 똘이는 ‘운동회’라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어떤 활동이 끊임없이 요구되고 있으며, 이 날을 위해 며칠간 연습을 했으며, 지금이 실전의 순간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것이 너무 기쁘고 기특했다.






“운동회의 꽃! 릴레이 경기가 시작됩니다. 선수들 나와서 준비해 주세요!!”


12명 중 8명이 뛰는 경기였지만 어쨌거나 똘이도 반대표였다.


담임 선생님께서 똘이의 어깨를 잡고 눈을 마주치시며 무언가를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마음속으로 똘이에게 끊임없이 신호를 보냈다.


‘달려서 친구 손에 주는 거야! 던지지 않고 친구 손에 주는 거야!’


어린이집 강당에선 여러 번 연습했지만, 운동회장에서 하는 경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똘이의 등번호는 18번.  출발 신호와 함께 4세 아이들이 바통을 들고 달리기인지 경보인지 헷갈리는 귀여운 경주를 시작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릴까. 이게 뭐라고 이렇게 마음이 벅찰까.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똘이를 보기만 해도 자꾸 눈물이 차올랐다. 어느덧 17번 아이가 달리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다시 한번 똘이에게 무어라고 속삭이셨다. 나는 똘이의 바통터치 지점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가서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똘이의 출발을 기다렸다.



 똘이가 바통을 넘겨받았다. 똘이는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자신의 행로를 찾아 달리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똘이가 방향을 헷갈리지 않도록 트랙 안쪽에서 담임선생님이 함께 달려주셨다.



짧은 질주가 끝나고 똘이는 드디어, 마침내, 결국!



친구의 손에 바통을 내려놓았다!!



우리 아이가 해냈구나. 그렇게 열심히 연습했는데... 결국 해냈구나. 똘이도 얼마나 긴장했을까. 얼마나 불안했을까. 충동을 참느라 힘들었을 거야. 그래도 그걸 다 이겨내고 해냈구나.



 똘이는 자신의 경기를 마치자마자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기 시작했다. 엄마를 발견한 똘이는 마치, 자신이 프리미어 리그에서 결승골이라도 터뜨린 선수 마냥 행복하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나에게 달려왔다.

 똘이가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달려오는 모습이 슬로 모션 같았다.  



 똘이를 꼭 안고 무수한 사랑의 말을 쏟아주었다.


“똘이야, 너무 잘했어. 걱정되고 힘들었을 텐데 똘이가 결국 해냈구나. 열심히 연습하니까 똘이도 잘할 수 있었어. 그렇지? 엄마는 똘이가 너무 자랑스러워. 똘이가 친구들과 함께 해 주어서 엄마가 너무 행복해. 똘이 고마워. 정말 잘했어. 그리고 똘이야. 엄마는 똘이가 성공해서 기쁜 게 아니고 똘이가 도전해 주어서 기쁜 거야. 똘이가 성공하든 실수하든 엄마는 똘이가 정말 자랑스러웠을 거야.”


“똘이는 던졌어? 안 던졌어?”


“우리 똘이는 안 던졌지. 엄마랑 약속한 대로 친구 손에 주고 왔어.”


“던지면 돼? 안 돼?”


“던지면 안 되지. 똘이는 정말 잘했어.”


“맞아! 똘이는 안 던지고 잘했어!!”



 똘이는 자신의 성공이 마냥 기쁘기만 한데, 엄마는 주책스럽게도 콸콸콸 짱구눈물이 흘렀다.



 내 주변에서 경기를 구경하던 학부모들은 저 아줌마가 왜 릴레이 경주 한 번에 저렇게 오열을 하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유난스러운 엄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럼 좀 어떤가.


 내 옆에는 울고 있는 나를 한없이 쓰다듬어주는 남편이 있고, 함께 똘이를 응원해 준 첫째가 있고, 자신이 성공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기뻐하는 똘이가 있는데.





 “선생님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사실 생각도 못했는데... 똘이에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얼마나 신경 써주시고 애써주셨을지 알아요.”


 “어머니, 저도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우리 똘이가 또 한걸음 성장했어요.”


 “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정말 감사드려요.”






그 어떤 씁쓸함도, 서글픔도 없이 행복하고 또 행복한 날이었다.



친구들과 같은 속도가 아니면 좀 어떤가.

달팽이 걸음일지언정,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지언정

우리 똘이는 자라고 있는데.



달팽이의 한 걸음이 치타에겐 우습지만

땅에 붙들린 민들레에겐 기적인 것을.



넘어야 할 산이 많겠지만,

매 순간 힘든 과업들이 똘이를 기다리겠지만

아마 앞으로는 성공의 경험보다 실패의 경험이 더 많겠지만

그래도 너무 먼 미래는 생각하지 않으련다.



외면하고 싶지만 안다.

똘이의 인생은 힘들 것이다.

세상으로 나가면

똘이는 칭찬받기도 인정받기도 힘들 것이다.

불편도 고난도 좌절도 남들보다 몇배, 몇십배 많을 것이다.

그러니

나마저 ‘아이의 미래를 비관하거나 예단하는' 또 한명이 될 수는 없다.

나는, 최소한 나는 아이의 잠재력을 믿어주고 격려해주고 기다려주는 존재가 될 것이다.



기뻐할 수 있을 때는 온전히 기뻐만 하련다.


느려도 조금씩 앞으로 가는 거다.

앞으로도 많은 일들이 기다릴 것이다.

그 과정에서의 고통과 좌절은 결국은 똘이 인생의 몫이지만

그 짐을 내가 함께 이고 가는 거다.



제발, 앞으로 펼쳐질 시간들이

내 아이에게 실패와 좌절만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고 사회 속에 섞이게 해 줄 마중물이 되어 주길.


엄마는 그날을 기다리며 열심히 펌프질을 할게,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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