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딩 Jun 19. 2024

자폐아이를 받아줄 어린이집을 찾아서 #1

7 똘이의 현 담임선생님은 우리 가족의 은인이시다.


 똘이는 3살 때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다. 똘이의 선생님들은 대부분 좋은 분이셨다. 그중에서도 현재 똘이의 담임선생님은 똘이뿐 아니라 나에게도 인생의 은인이라 여겨질 정도로 좋은 분이시다. 이 선생님을 만나기까지의 과정은 꽤나 험난했는데... 지금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똘이는 6세 때 갑작스럽게 어린이집을 옮기게 되었다. 기존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하나 둘 유치원으로 빠져나가 유아반이 공중분해 되었기 때문이다. 원장님은, 이 인원으로는 인건비가 나오지 않아 유아반을 유지할 수 없다고 양해해달라셨다. 지금이라도 얼른 유치원을 알아보라고 하셨다.


나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병설유치원 특수학급 모집이 끝난 이후의 일이었다.


 “원장님.... 상황은 이해하지만, 그런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저한테 미리 귀띔이라도 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똘이는 일반 유치원에 갈 수 없다는 거 아시잖아요... 특수학급이 있는 유치원은 이미 정원이 다 찼어요.”


 “죄송하게 되었어요. 어머님. 저도 결정을 내릴 때 똘이가 제일 마음에 걸렸어요. 어릴 때부터 저희들이 돌봐왔던 아이인데... 똘이의 성장과정을 아는 저희가 학교 갈 때까지 맡아서 돌봐드리고 싶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 저희도 안타깝습니다.”



 특수교육대상자인 똘이는 병설유치원 특수학급 입학 자격이 되었지만 기존 어린이집에 남기 위해 특수학급에 지원하지 않았었다. 특수교사의 소수케어를 받을 수 있는 특수학급이 탐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불안도가 높아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두려워하는 똘이의 특성상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보다, 정들고 익숙한 어린이집에서 보육을 받으며 개별 치료에 집중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특수학급 모집은 이미 끝나버렸고 기존 어린이집에 남을 수도 없게 되었다. 차로 30분 이내로 갈 수 있는 거리엔 장애 전담 어린이집도, 장애 통합 어린이집도 없었다. 티오가 없는 것도 아니라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니! 새삼 우리나라 장애 아이들이 처한 현실이 개탄스러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똘이는 일반유치원에서 20명이 넘는 아이들과 무탈하게 생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새로운 어린이집을 찾아간다고 해도 문제였다. 어린이집 유아반의 경우 대부분 영아반 시절부터 함께해 온 아이들일 텐데, 낯도 많이 가리고 말썽도 잦은 데다 장애까지 가진 똘이가 ‘굴러온 돌’이 되어 새로운 어린이집에 들어가서 천덕꾸러기, 말썽꾸러기 취급을 받지는 않을지...


 나는 그때부터 머리를 쥐어뜯으며 맘카페에서 ‘어린이집 유아반’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맘카페에서 평이 좋은 어린이집 중 유아반 자리가 있는 곳을 재빨리 추려 우선순위를 정하고 입소상담을 예약했다.


 잠이 오질 않았다.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었다. 똘이에겐 입학 전 6~7세의 시기가 너무나 중요했다. 언어도 끌어올려야 하고, 또래와 상호작용하는 연습도 해야 하고 착석, 지시수행, 규칙준수 부분도 연습이 필요했다.

편두통과 심장병이 동시에 생길 것 같은 시간이었다. 심호흡을 하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스렸다.



 똘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똘이의 상황을 솔직히 말씀드리고 그래도 품어주겠다는 곳을 찾자. 쉽지 않겠지만, 돌아가는 길일지도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이 똘이를 위하는 길일 것이다.





 첫 번째 어린이집에 전화를 걸어 유아반 자리가 있냐고 묻자 반색을 하며 마침 딱 한자리가 비었다며, 입소하고 싶으면 얼른 상담부터 오라고 했다.


 “저... 조금 느린 아이입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손이 많이 갈 것 같은데...”

 “아유, 요즘에 조금 늦된 게 무슨 문제가 되나요? 저희 선생님들 다 정말 유능하시고 훌륭하시답니다. 걱정 마시고 상담 오세요~”


 똘이에 대해 조금 더 언질을 드리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만나서 얘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면 상담 당일..


 “경하지만 자폐스펙트럼이 있고, adhd도 있습니다. 불안과 강박이 심하고 감정 기복도 큰 아이라 충동적 행동이 나오기도 합니다. 또래를 고의로 괴롭히진 않지만, 인지왜곡이 있어 자신이 불안할 때 주변으로 친구가 다가오면 밀치기도 합니다. 지금 행동치료를 받으며 수정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대소변은 잘 가립니다. 예전 어린이집에서도 자리 이탈은 없어서 현장체험 학습에는 무리 없이 참여했습니다. 언어가 또래보다 2년 정도 느리고 사회성도 많이 부족합니다. 했던 말을 반복하거나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한자리를 빙글빙글 돌기도 합니다.”


 어린이집 문 앞으로 나와 슬리퍼를 꺼내주시고 차도 내어주시며 반갑게 맞아주었던 원장님은 내가 이야기를 이어가면 이어갈수록 표정이 어두워지셨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님, 저.. 죄송하지만..”


 원장님은 내 말을 조심스레 끊으셨다. 무례한 태도는 아녔지만 ‘더 들어볼 것도 없다’는 의지가 명확하게 읽혔다.



 “저희 어린이집은 힘들 것 같습니다.”


 “아... 네, 그런가요...”


 “어머님, 오해하지 마시고 들으세요. 저희는 지금 데리고 있는 아이들을 정말 잘 돌보고 싶어요. 저희는 어린이집 치고는 원아도 많은 편이고 큰 행사도 많은 편이라...... 좀.. 곤란하네요.”



 원장님은 더 이상 말씀이 없으셨다. 이제 내가 나가야 하는 타이밍이라는 걸 알았다.  


 “네, 알겠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좀... 안 될까요? 최소한 아이를 보시고서 판단해 주시면 안 될까요? 우리 똘이... 사실은... 제가 얘기한 것보다 사실은 좀 더 괜찮은 아이인데...... 예전에 똘이를 맡았던 담임선생님들도.. 손이 많이 가긴 하지만 일반 어린이집에서 지내지 못할 아이는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불쌍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발걸음을 돌렸다. 알량한 자존심이었다.


 거절당하더라도 상처받지 말자고 여러 번 마음을 다잡고 갔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문득, 나는 거절당해 본 경험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절당한다는 건 참 아픈 것이구나. 나는 지금껏 참 운 좋게도 그런 걸 모르고 살았구나.


똘이의 입학을 거절당한 거지 똘이의 존재가 부정당한 것도 아닌데, 똘이가 세상으로부터 거절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몹시 서러웠다.  




 두 번째 어린이집 역시나 거절이었다.


 “좀 곤란하네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또다시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다. 이런 건 익숙해지지가 않나 보다.



 그 순간, 내가 지금껏 담임교사를 하며 맡아왔던 느린 아이들이 여럿 생각났다. 그들의 어머니도 함께 떠올랐다. 상담만 오시면 오열을 하시는 분도 있었고, 내가 아무리 대화의 물꼬를 터보려 해도 아이에 대해 그 어떤 것도 오픈하지 않는 분도 있었다. 나는 그들을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대했던가...


 그 아이들의 어머니도 이런 거절의 경험들을 숱하게 겪으며 살아왔을 것이다. 나도 혹시 그들을 거절한, 혹은 그들에게 곁을 내어주지 않은 또 하나의 타인은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세 번째 어린이집 원장님은 나의 설명을 다 들으시더니,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니 저희도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입소시키시겠다면 저희가 말릴 방법은 없는데... 내년에 6세 반 담임 예정이신 선생님이 특수교육에 대해 무지하시고 경험도 부족하신 편이라 똘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좀 더 전문적인 기관을 찾아보시는 게 어떤가요?”


 “근처에 특수학급이 있는 병설유치원은 이미 티오가 찼습니다. 저희 아이는 장애 정도도 경한 편이고 언어도 점점 올라오고 있고 또래모방을 시작했기 때문에 특수학교는 적절하지 않다고, 현재 재원 중이신 어린이집에서 말씀해 주셨어요. 저희 아이를 한번 보시고 판단해 주시는 건 어떤가요?”


 “아... 저희가 상담이 밀려있고, 제가 또 오후 출장도 있어서...”


 “네, 알겠습니다.”


 내가 입소를 포기하려는 뉘앙스를 풍기자 원장님은 안심하시는 눈치였다. 그 마음이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모르고 받으면 몰라도 이미 다 알고서 골칫덩이 아이를 받고 싶은 원장이 어디 있겠는가. 원장님은 ‘양해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나를 문 앞까지 배웅해 주겠다고 했다.


 나에게 ‘희망을 잃지 말고 힘내서 아이를 키우시라’는 말도 덧붙였다. 아마도 진심이셨을 테지만 내겐 위선같이 느껴졌다. “그럼 우리 아이를 받아주시던가요!”하고 쏘아붙이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원장님은 잘못이 없다. 그는 어린이집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자신의 역할을 했을 뿐이다. 원장님은 신발장에서 친히 내 운동화를 꺼내어 내가 신기 편한 방향으로 놓아주셨다. 신기 편한 방향으로 놓아주신 것뿐인데, 그 순간은 밖으로 나가는 방향으로 운동화를 내려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장님이 바닥에 내려놓으신 내 낡은 운동화는 흙먼지도 묻어있는 데다, 발꿈치 쪽 천이 뜯겨 있었다. 그 순간 그것이 너무 수치스러웠다. ‘집에서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올 걸. 화장이라도 하고 올 걸...’ 아무도 나를 무시하지 않았는데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내가 바보짓을 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똘이의 정보를 오픈하는 것이 과연 맞는 걸까... 학급을 맡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객관적으로 똘이보다 더 힘든 아이를 사전정보 없이 맡은 적도 많았다. 학기말까지 학부모로부터 아이에 대한 아무 정보도 듣지 못한 적도 있었다. 똘이에 대한 별다른 언급 없이 일단은 평 좋은 어린이집에 입학시킨 뒤, 3월 초에 아이의 상태에 대해 설명드리는 방법이 현명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건 최악을 면하는 방법은 될지 모르나 최선의 방법은 결코 아닐 것이다. ‘입소’가 목적이 아니라 똘이를 마음으로 받아줄 어린이집을 찾는 것이 목적이다.



 세상에 똘이를 받아줄 곳이 한 곳도 없을 리가 없다.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 최선을 다하는 과정을 포기할 순 없다.


 세 번의 거절을 당한 뒤, 비로소 지금의 어린이집을 만났다.

작가의 이전글 남의 불행을 위안 삼으면 남의 행복 앞에선 불행해지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