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딩 Jun 19. 2024

자폐아이를 받아줄 어린이집을 찾아서 #2

 세 번째 어린이집에서 입소를 거절당하고 네 번째 어린이집으로 향하던 무렵이었다. 이제 선택지는 두 곳 밖에 남지 않았다. 마음이 초조했다. 후보로 추렸던 모든 곳에서 똘이를 거절한다면 어쩌지?


 상담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잔뜩 쪼그라 붙어 있었다. 아무도 나를 기죽이지 않았는데 스스로 기가 죽었다. 책 잡히지 않으려고 운동화 바닥의 먼지까지 탈탈 털고 깨끗한 양말을 꺼내신고 머리도 단정하게 빗질한 후 네 번째 어린이집에 상담을 갔다.



 첫째 아이의 유치원을 고르러 다닐 때가 생각났다. 아무런 걱정 없이 설렘만 가득했던 그 발걸음이 기억난다. 아이 성향이 어떤지 조심스레 물어보시는 원장님께 “별 다른 특이사항은 없고 친구들과도 무탈하게 잘 지냅니다.”라고, 편하게 내뱉었던 나, 그게 자신감 있는 모습이라는 인식조차 못하고,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1%도 없는 채로 ‘더 우리 아이에게 좋은 교육을 해줄’ 유치원을 골라내려 노력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들이 왜 그토록 움츠러져 있는지, 혹은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있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거절당할 걱정이 없는 사람은 움츠러들 필요도 가시를 세우며 자신을 방어할 필요도 없는 거였다.



“우리 똘이는 자폐 스펙트럼이 있고요... adhd도 있고요... 불안과 강박도 있습니다. 지능도 경계선으로 나왔습니다. 불안이 오르면 충동성도 같이 올라옵니다. 장난감을 던지거나 친구를 미는 경우가 있어 고치려고 가족 모두 노력 중입니다. 말이 많이 늦어 감정표현을 울음이나 떼쓰기로 표현하기도 하고, 의미없는 말을 반복적으로 중얼거리기도 하고요. 그래서 일주일에 10시간씩 치료센터를 다니고 있습니다. 특수교육대상자인데... 근처에 입학 가능한 유치원 특수학급이 없습니다. 아이의 상태를 솔직하게 다 말씀드려도 이해해 주고받아주실 어린이집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저희 원 말고 다른 곳도 방문해 보셨나요?”


“네. 이미 여러 곳에서 거절당했습니다.”


“그래도 아이의 상태를 이렇게 다 털어놓으시는 건가요?”


“네. 그럼에도 이 방법이 아이를 위해서도, 원을 위해서도, 담임선생님을 위해서도 낫다고 생각해서요. 똘이의 상황을 다 알고서도 받아주신다면... 다른 건 약속드릴 수 없지만, 혹시라도 똘이로 인해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솔직하게 말씀만 해 주시면, 임의로 판단하거나 확대해석 하지 않고 담임선생님과 원장선생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고 협조하겠다는 건 약속드릴 수 있어요.”



 원장님의 표정을 보는 게 두려워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


“어머님, 그럼 우리 똘이의 장점은 뭔가요?”


“네?”


 난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원장님은 환하게 웃고 계셨다.


“아... 우리 똘이는요. 사실은요.... 엄청 애교도 많고요. 잘 웃어요. 원래는 칭찬이 뭔지도 몰랐는데요. 이제는 칭찬을 인지해서 칭찬받으면 신나서 폴짝폴짝 뛰어요.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해서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웃음을 주고요. 먹는 것도 잘 먹고 자기 물건정리도 잘해요. 흑... 죄송해요. 안 울려고 했는데 눈물이 나네요.”


“아유, 어머님, 괜찮아요.”


원장님은 티슈를 두어 장 뽑아주셨다. 티슈를 받아 드는 내 손이 덜덜 떨렸다.


“규칙을 인지하는 건 어렵지만 한번 인지한 규칙에는 의문을 갖지 않고 따라요. 또래놀이에 끼지는 못해도 친구들과 같은 공간에 있으면 행복해하고요. 체력도 좋고 씩씩해요. 숫자와 문자를 좋아해서 덧셈도 할 줄 알고요. 뜻은 모르지만 한글도 어느 정도 읽어요.... 사실은, 사실은 아주 아주 예쁘고 귀여운 아이인데요......”



 나는 꺼이꺼이 울며 말았다.


 “제가 원래 이렇게 감정적인 사람이 아닌데요... 여기저기서 거절만 당하다 보니 아이의 장점을 설명드릴 기회가 없었거든요. 아이의 문제점을 말할 땐 눈물이 안 났는데요.. 아이의 장점을 말하려니까 눈물이 나요.... 사실 우리 똘이는 자기 만의 속도로 열심히 크고 있는데요.... 저희 가족이 정말로... 흑... 정말로 최선을 다하고 있거든요. 으흑... 그런데요. 아무리 노력해도 또래 아이들이 크는 걸 따라가질 못해요. 그래서 늘 친구가 없어요. 친구가 한 명도 없어요.”


 “어머님 하시고 싶은 말씀 다 하셔요.”


 “똘이가 1년 전에는 언어능력이 하위 0.1%였거든요. 그런데 올해 검사를 하니 하위 1%가 되었어요. 원장님... 하위 0.1%와 하위 1%는 느린 아이의 세계에선 하늘과 바다만큼의 차이예요. 언어 장애 수준인 건 똑같지만 그래도 엄청 큰 성장이었어요. 그 결과를 받아 든 날 온 가족이 케이크에 촛불을 붙이고 축하파티를 했어요. 제가 이런 얘기를 왜 하냐 면요... 우리 똘이도 크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요... 똘이의 현재를 보시기 보다 똘이의 가능성을 봐주시는 어린이집을 찾고 있어요. 아이가 손이 많이 가고 다른 아이들을 불편하게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똘이의 성장을 도와주실 분들을 찾고 있어요.”



 원장님은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잘 찾아오셨어요. 어머님. 우리 같이 해봐요.”


 “네? 정말이요?”


 “아이가 느린 건 얼마든지 괜찮아요. 사실 저희가 힘든 건 뭐냐면요. 아이가 느리고 문제행동이 있는데 부모님이 그걸 인정하지 않으실 때 힘들어요.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아이의 상황을 말씀드리면, 그것을 아이를 밉게 본다고 판단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그러면 저희도 더 이상 아이를 도울 수가 없어요.


 그런데 똘이 부모님은 이미 똘이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계시고 똘이의 성장을 위해 이렇게 까지 노력하고 계시잖아요. 굳이 말씀 안 해도 되는 부분까지 말씀하시면서 어린이집의 협조를 구하고 계시고요.

어머님 얘기를 들으니 저도 믿음이 생겨요. 저희가 똘이를 돌보다가 힘든 점을 말씀드리면 그걸 분명히 좋은 의도로 받아들여 주실 거지요?”


“네, 네... 물론이에요.”


“그거면 돼요. 어머님.”


“저희 아이를 한번 보시고 결정하셔도 돼요. 혹시라도 한번 보시고 안 되겠다 싶으시면...”


“어머님, 괜찮아요. 저는 이미 똘이를 저희 원에서 품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조금 느리고 부족한 아이가 저희 원에서 잘 성장해서 학교로 갈 수 있다면 저희의 큰 보람이고 행복일 거예요.”


 “감사합니다. 원장님...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


 “아, 혹시 다른 어린이집도 같이 고려중이 신 건가요? 생각하실 시간이 필요하신 거면...”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이곳에서 받아주신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입소시킬 생각이긴 한데... 아이를 직접 맡으실 분은 담임선생님이시니까... 혹시라도 담임선생님이 불편해하실까 봐...”


 “내년에 똘이 담임되실 선생님께서 감정코칭을 정말 잘하시는 분이세요. 제가 저희 원에서 가장 신뢰하는 선생님이에요. 똘이를 잘 돌봐주실 뿐 아니라, 똘이가 같은 반 아이들과도 어울릴 수 있게끔 이끌어주실 거예요. 제가 상황 설명 잘하고... 우리가 똘이를 도와주자고 얘기할게요. 믿고 맡겨도 되는 분이세요.”







 그렇게 똘이는 두 돌 무렵부터 다녔던 어린이집을 떠나 새로운 어린이집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입소할 곳을 찾기 까지도 많은 고민과 불안이 있었지만, 3월에 입학하기 직전까지도  3월이 되어 첫 등원을 하고 나서도 불안함은 쉽사리 가시질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똘이는 새 어린이집에 무사히 적응했다.

똘이가 그 해 만난 담임선생님은 똘이 인생에서도 내 인생에서도 은인 같은 분이시다. 선생님으로서 뿐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도 정말로 성숙하고 존경스러운 분이셨다.


그분은 2년째 우리 똘이를 사랑과 헌신으로 '나와 함께' 키워주고 게신다.


 똘이 담임선생님과의 에피소드는 앞으로 천천히 하나씩 풀어갈 기회가 있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